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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질과 강의
싸이질과 강의
  • 함연진 호서대
  • 승인 2006.03.13 00:00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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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강의시간


함연진 (호서대·영어영문학과)

인문학적 순수함이 거세된 자리에 실용과 기술이 대체된 지 이미 오래다. 2년 전 학부장에다 학과장직을 겸직하게 된 후부터 남의 일처럼 여기던 신입생모집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학교전체 홍보야 입학홍보처에서 알아서 할 터이지만, 원서 마감 후 메일로 날아오는 학(부)과별 경쟁률 도표가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안되겠다 싶어 한 번은 학생간부들을 불러 모아 학과홍보 아이디어를 찾던 중 싸이클럽을 활용하자는 의견이 어느 학생에게서 나왔다. 요즘 십대 청소년들 가운데 싸이 안하는 애가 없다는 것이다. 순진한 애들 꼬시기엔 딱 좋은 공간이란 계산이었다. 옳거니, 너 딱 걸렸다.  오전 수업에 조는 놈들 태반이 밤새워 하는 싸이질 때문이라는 풍문에 귀가 솔깃했던 것이다. 일단 싸이질에 대한 선입견을 애써 접고 애들을 시켜 지난 해 말 학과전용 싸이클럽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요란할 정도의 인테리어에 요즘 젊은 애들이 좋아하는 멋진 음악까지 쫘악 깔아 놓고 손님을 기다렸다. 싸이질에 미니홈피는 필수! 게시판이며 사진첩에 예비 신입생들을 불러 모을 만한 최근 자료들을 상품으로 출시하고 이제나 저제나 손님을 기다렸지만, 기다리는 고3 손님은 오지 않고 재학생들만 북적거리는 것이 아닌가. 그래, 오픈하자마자 문전성시를 이룬다면야 망하는 회사가 어디 있겠냐 싶어 식구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다 보면 지나던 고객들이 가끔 눈길도 주겠지 하며 자위하고는 신나게 노는 사이, 나도 모르게 그만 싸이질에 빠져들고 말았다. 오전 수업에 씨뻘건 토끼눈을 하고 나타나 꾸벅꾸벅 조는 놈들에 대해 동병상련의 애정마저 느껴지기 시작했다. 

사소한 일상에 대한 대화로부터 친분을 쌓아가다 보니, 긴 겨울방학을 끝내고 새 학기를 맞아 강의실에서 만나는 학생들의 모습이 예전처럼 낯설지 않았다. 게다가 이미 방학 중에 미니 홈피를 통해 새 학기 강의 내용을 주고받았고, 싸이클럽을 통해 미리 수업자료를 올려놓은 터라 새로운 과목을 두고 어느 새 학생들과 보이지 않는 교감이 두텁게 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새 학기 들어서도 내 미니 홈피엔 강의 도중 미처 하지 못했던 질문도 자연스럽게 올라오는가 하면, 여자친구 문제로 고민하는 글도 간혹 눈에 띤다.

학과 싸이클럽엔 새 학기를 맞아 신입생들의 가입문의가 빗발치고, 자기소개며 학과 행사소식, 각 교과목 수업자료와 정보들로 벌써 가득하다. 교수와 학생 간에도 굳이 딱딱한 면담시간을 잡아 부자연스럽고 다분히 형식적인 대화를 나누는 대신, 언제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럼없이 서로가 솔직하게 대화의 문을 연다. 진정 내가 가르치고 있는 애들의 고민이 무엇이며 수업에 대해 그들이 바라고 원하는 게 무엇인가도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게 되었다.

생일을 맞은 녀석에게 도토리 5개만 주면 멋진 음악을 선물할 수 있는가 하면, 선물을 받은 학생으로부터 “너무 좋아 기절하셨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한 아름 꽃다발이 답례로 내 미니 홈피에 배달되기도 한다. 한 번은 ‘비밀이야’ 박스에 어느 학생의 눈물어린 사연이 올려져 장학금을 마련하여 전해 주기도 했다. 아마도 그 학생은 그런 사연을 연구실에 근엄하게 앉아 계신 교수님 면전에서는 차마 꺼내지 못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동료 교수들 간의 의사소통에도 싸이의 미니 홈피가 요긴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우리 과에 있는 젊은 후배 교수들은 싸이에 관한 한 이미 선배다. 동료교수로서 소소한 학과 일에서부터 학생지도 문제뿐 아니라, 때론 영화 본 이야기, 부부싸움에 이르기까지 흉허물 없는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이 또한 내 미니 홈피에 내걸린 “충전을 위한 작은 공간”이란 문패가 어색하지 않은 이유가 된다. 요즘은 졸업한 제자들로부터 새내기 직장인으로서의 설렘과 고충이 접수되기도 하고, 멀리 외국에 나가 있는 교환학생들, 파리에 신혼살림을 차린 졸업생의 소식들도 새 학기를 맞는 나에게 있어선 싱그러운 봄소식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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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2006-04-16 19:34:41
싸이를 하는 사람들이 커뮤니티를 방문하는 수는 많지만
리플을 달거나 글을 올리는 사람들은 20:80법칙처럼
20%정도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글에 동의하거나 의견을 리플로 연결되어 관계가 형성될때
커뮤니티의 활성화가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볼거리를 제공하고... 정보성이 좋다면
부담없는 온라인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회원들 홈피에도 방문하시고~ 온라인에서 뿐만아니라
오프라인에서는 더 많은 관심 가져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커뮤니티의 관리에도 체계가 필요합니다.
하루에 몇번, 시간을 정해서 관리하시고...
너무 많은 시간을 뺐기지 않았으면 해요

그대로 그렇게 2006-03-19 19:07:46
계속 그대로 그렇게 ....

.. 2006-03-14 13:19:44
이런것도 좋은 방법이지만..과연...교수에게 얼마나 시간이 돌아올수 있을까...

흠.. 2006-03-14 10:06:10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