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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유제
제국의 유제
  • 최승우
  • 승인 2022.09.02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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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엮음) 지음 | 소명출판 | 230쪽

절대적인 지리적 공간이 아닌, 유동적이며 투쟁의 장으로 존재하는 ‘동아시아’

이 책은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2017년부터 수행해 온 인문한국플러스사업(HK+)의 일환으로 기획하여 발간한 책이다.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는 ‘포스트제국의 문화권력과 동아시아’라는 연구 아젠다에 따라 제국일본이 해체된 후에도 ‘앎·지식’, ‘매체·문화’, ‘일상·생활’ 영역에서 문화의 형태를 빌려 존재하는 제국의 유제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그 권력의 작동원리와 동태를 제시함으로써, 동아시아에서 지속되는 갈등의 원인을 규명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이 책을 기획, 발간함에 있어 본 사업단이 제기한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다. 일반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 후 국민국가 체제를 기반으로 세계질서가 재구성되어 흔히 제국주의시대가 끝났다고 인식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인종, 민족, 이성애주의, 전근대성 등을 ‘본질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대고 있었다.

제국 시기 일어난 점령, 지배, 학살과 같은 폭력을 정당화하고, 서구를 ‘발전’의 최고 단계로 상정하는 단선적 사회진화론에 입각한 제국주의적 질서를 확립하고자 했던 욕망은 포스트제국 시기에 와서는 국민국가 체제 속에서 ‘국민,’ ‘시민’이라는 주체성을 기반으로 ‘자유’와 ‘평등’ 이데올로기로 변용되어 재생산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제국 해체 후 부상한 국민국가를 제국주의와 완전히 분리된 정치기구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이 책에서는 포스트제국이라는 틀을 통해서 특히 동아시아에서 전개된 국민국가 재편에 대해 다각적으로 접근하여 제국과 단절시키거나 제국주의를 계승하려 하는 권력의 동태를 조명하고 있다.

더불어 제국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의 대상이 되어 포스트제국 시기에도 여전히 권력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국·조선인 BC급 전범, 오키나와 주민, 아이누, 재일한국·조선인들의 길항의 경험에 주목한다.

이들은 제국과 국민국가의 구조적 권력에 전면적으로 맞서기도 하지만, 그 길항의 경험은 제국주의적 인식이나 가치관을 모방, 전유하면서 의도하지 않는 결과를 수반하기도 한다.

이처럼 제국과 국민국가가 구조화하는 권력과 이에 대응하는 동아시아 사람들 사이의 상호관계를 재검토하여 동아시아의 ‘앎·지식’, ‘매체·문화’, ‘일상·생활’ 영역에서 생성, 작동되는 권력의 역동성을 규명하고자 한다.

세계 석학이자 미국 코넬대학 명예교수인 사카이 나오키(酒井直樹)는 ‘동아시아’라는 상상의 공간이 형성된 배후에 존재하는 제국주의적 욕망과 질서를 비판적으로 고찰하였고, 제국 일본이 아시아에서 저지른 침략과 전쟁, 그리고 그 책임을 묻는 연구와 활동을 이끌어 온 일본 케이센여자대학교 명예교수 우쓰미 아이코는 공식 기록에 드러나지 않는 한국·조선인 BC급 전범들의 기억과 저항의 양상을 제시했다.

더불어 이 두 편의 글을 필두로 오키나와 주민들의 특수한 저항의 방식과 그 의미, 아이누의 말을 마주보지 못한 일본의 제국주의적 의식, 1945년 이후 재일한국·조선인이 펼친 일상의 투쟁에 관한 글을 수록했다.

각 글을 통해 제국의 유제와 이들의 길항 경험이 충돌하는 양상을 엿볼 수 있으며 이는 ‘동아시아’가 절대적인 지리적 공간이 아니라 유동적이며 투쟁의 장으로 존재하는 현실을 재고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나아가 현재도 지속되는 국민국가 체제를 상대화시켜 진정한 탈제국의 가능성과 동아시아 사람들이 스스로 구축하는 화해와 협력, 공존을 모색하는 논의를 제공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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