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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김영호 교수의 ‘한국전쟁 원인의 국제정치적 재해석' 비판
(1)김영호 교수의 ‘한국전쟁 원인의 국제정치적 재해석' 비판
  • 이재훈 성균관대
  • 승인 2006.03.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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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논쟁-'해방전후사의 재인식' 해부

▲김영호 교수 ©
▲이재훈 교수 ©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하 ‘재인식’)에 실린 글 한편을 논평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한동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는 아마도 일반의 의도와는 달리 해방공간에서 벌어졌던 좌우의 극렬한 대립양상을 냉전의 논리로 다시금 재생하고 이를 비생산적으로 증폭시키고자 하는 세간의 일부 움직임을 무의식적으로 고무하거나 조장할 수 있다는데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유형의 두려움은 ‘재인식’의 필진들도 역시 동일하게 가지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세련된 전통주의적 견해···스탈린 부각 위해 기존 연구 소홀

연구자의 연구결과는 그 자체로 이미 큰 가치를 가지는 것이다. 스탈린의 롤백전략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사용하여 한국전쟁의 원인을 재구성한 김영호 교수의 논문 역시 소련이 한국전쟁에서 과연 어느 정도의 역할을 했는지를 국제정치적 측면에서 세밀하게 분석하고 재해석한 글이었다는 점에서 당연히 그 가치가 인정된다. 또한 보다 넓게 본다면 그의 논문은 1980년대 이래 진보적 학문의 분위기 속에서 한국전쟁의 연구경향을 지배해왔던 수정주의적 시각에 의문을 갖고 한층 세련된 모습으로 전통주의적 견해를 표방함으로써 한국전쟁에 대한 보다 광범위한 학문적 토론의 장이 형성될 수 있는 가능성을 던져주었다는 점에서도 가치를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논문에서는 한국전쟁의 기원 및 전개과정과 스탈린의 롤백전략을 조응시키는데 있어 몇 가지 점에서 의도적이건 아니건 근본적인 오해가 보이고 있다. 그리고 오해를 바탕으로, 스탈린의 주도면밀한 계획에 따라 전쟁이 발발하고 전개되었다는 이른바 ‘스탈린 주도설’을 결론으로 주장하고 있다.

논문에서 보여 지는 오해의 일단을 살펴보자. 가장 중요한 오해는 한국전쟁의 기원과 관련하여 풍부한 증거자료와 연구성과가 축적되어 있는 여타의 주장들을 뒷받침하는 논거들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스탈린 주도설을 주장하기 위해 그의 주도면밀함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열정이 지나쳐 생겨난 오해일 것이다. 논문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바와 같이 “스탈린이 무력통일을 주장하는 북한 지도자들의 존재와 남북한 사이에 계속된 국경분쟁 등과 같은 한반도 내부의 상황을 이용해 자신의 세계전략적 목적들을 달성하기 위하여 북한의 남침을 승인(동의)하고 지원”한 것이 사실이다.

말하자면 전쟁 상황이 발생하기까지는 스탈린의 의도에 더해 국내외적인 수많은 다른 요인들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많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일어난 전쟁을 스탈린 주도설 혹은 스탈린의 단독 책임론으로 몰고 가는 것은 대단히 무리한 해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논문에서는 1950년 1월 (신)중소동맹조약의 체결과 관련하여 전쟁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여러 상황에 대한 스탈린의 용이주도함을 다시 한번 부각시키고 있다. 하지만 당시의 중소동맹조약은 소련 측의 주도적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중국의 체결 의지와 애치슨 선언 등 미국의 대중접근 움직임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하여 시급하고 비자발적으로 체결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논문에서는 조약의 체결을 전쟁의 발발 및 전개과정에 있어서 스탈린이 궁리한 일종의 대비책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결과적으로 중소동맹이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들에게 상당한 압력으로 작용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결과만이 중시되어 발단을 희석시키는 해석은 상당한 문제를 노정하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전쟁의 기원과 관련한 근간의 연구경향은 논문에서 주장하고 있는 전통주의와 수정주의의 길항관계에 기반을 둔 국제정치사적 접근이나 기원 등에 대한 과도한 강조 등이 이미 극복되고, 그 대신에 국내정치적 접근이나 사회학적 접근, 문화적 접근 등의 보다 다양한 주제들에 대한 심층적 탐구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이는 전쟁이 스탈린의 의도를 포함한 수많은 중요한 요인들이 유기적이고 다층적으로 결합됨으로써 발발하였음을 인정하고, 이제는 단순하게 어느 쪽이 전쟁을 도발하고 어느 쪽이 가해자였는가, 그리고 스탈린과 김일성 중 과연 누구의 책임이 보다 막중한가 등의 소위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는 데만 집착하지는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그 복잡한 역사를 알고 있는 한 수많은 요인이 유기적이고 다층적으로 얽혀져 발생한 전쟁에 대해 어느 한쪽만을 비난하는 어리석음을 더 이상 반복재생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현재의 연구경향에서 보여 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논문에서 주장하고 있는 이른바 스탈린 주도설 역시 역사의 유기성과 다층성이라는 측면에서 다시 한번 재검토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필자는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산하 '세계경제 및 국제관계연구소(IMEMO)'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논저로는 '해방 전후 소련 극동정책을 통해 본 소련의 한국인식과 대한정책', '1949~50년 중국인민해방군 내 조선인부대의 입북에 대한 북중소 3국의 입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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