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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와 푸코는 니체를 어떻게 오해했나
들뢰즈와 푸코는 니체를 어떻게 오해했나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6.03.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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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학자 레만, '포스트모던적 좌익 니체주의'에서 비판

들뢰즈와 푸코의 니체 이해가 간과할 수 없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박찬국 서울대 교수(철학)가 서울대 인문학연구원이 펴내는 '인문논총' 최근호(제54집)에서 발표한 '들뢰즈와 푸코의 니체 수용에 대한 비판적인 분석'에서 그 실상을 확인할 수 있다.

박 교수의 이 글은 독일의 학자 레만의 2004년 저서 '포스트모던적 좌익 니체주의'에 대한 서평이다. 박 교수는 글의 서두에서 그간의 니체에 대한 평가에 불만을 표시한다. 니체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렸다는 것.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적이자 서양 제국주의와 파시즘의 이데올로그로 간주되었던 그가 이제는 일부 급진좌파에 의해서 관료주의에 대한 저항과 함께 차이와 다원성에 대한 존중을 설파하는 사상가로 간주되고 있다"고 그 표변함을 지적한다.

그러나 반동된 최근의 니체 이해도 레만에 따르면 문제가 많다. 그는 '포스트모던적 좌익 니체주의'에서 엘리트주의적인 사상가인 니체를 다원성과 차이의 존중을 설파하는 철학자로 보는 최근의 니체 이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박 교수는 이러한 비판적 검토는 레만이 이러한 새로운 니체 이해가 주로 들뢰즈와 푸코에 의해서 형성되었다고 보기 때문에 결국 들뢰즈와 푸코의 니체 수용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된다고 보고 있다.

박 교수의 서평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들뢰즈는 그의 '니체와 철학' 등의 책에서 니체 철학에 의거 변증법을 비판해왔다. 그러나 들뢰즈의 변증법 비판에 대해서 레만은 들뢰즈가 헤겔의 사변적인 변증법을 변증법 자체와 동일시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동시에 들뢰즈가 부정, 대립 그리고 모순이라는 변증법의 사변적 원리에 대해서 그에 못지않은 사변적인 원리인 차이의 원리를 제시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대립관계를 단순한 차이로 보는 것은 사회적인 현실에서는 다양한 차이들이 사실상 서로 간의 적대적인 대립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게 레만의 생각. 초기의 니체가 변증법을 비판한 것은, "변증법이 귀족주의적 지배에 대한 민중들의 원한감정의 일종인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었고, 사실 니체는 헤겔의 변증법적 사유방법을 나름대로 수용하고도 있는데 이는 '도덕의 계보' 3부에서 범례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니체를 다원주의자로 보는 들뢰즈의 해석은 후기 니체의 관점주의가 갖는 신분차별적 성격을 무시하고 있다고 레만은 본다. 들뢰즈는 자신의 ‘차이’ 개념을 니체의 ‘거리의 파토스’에서 끄집어내는데, 니체에게는 신분적으로 고귀한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 사이의 간격을 나타내는 이 개념이, 들뢰즈에게 오면 생을 긍정하는 능동적인 힘들을 수동적이고 생을 부정하는 힘들로부터 구별하는 ‘차이’로 변형된다는 관찰이 이어진다. 니체에서는 정치적인 위계질서를 정당화하고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개념이 그러한 정치적 성격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스피노자와 니체 사이에 연속선을 긋는 들뢰즈는 후기 니체가 스피노자에 대해 비판적 자세를 분명히 취했다는 점도 무시한다. 들뢰즈는 과연 니체를 제대로 읽었는가. 레만은 들뢰즈 자신은 물론이고 하버마스와 같은 비판가들마저도 들뢰즈의 해석이 옳다고 본다는 점에 놀라움을 표한다.

그 다음은 푸코다. 레만은 푸코처럼 자신을 권력과 주체에 대한 급진적 비판가로서 이해하는 사상가가 후기의 니체처럼 가장 철저하게 권력과 지배를 긍정하는 사상가를 거듭 원용한다는 것이 이론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라는 문제의식 아래 푸코를 살펴본다. 푸코는 니체사상을 텍스트에 충실하게 해독하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는 게 레만의 기본적 입장.

 
니체는 ‘인류’라는 개념이 초인들의 육성에 방해가 되는 평등을 상정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그것을 거부하는 반면에, 푸코에서는 인간에 대한 니체의 이러한 거부가 마르크스의 소외와 프로이트의 무의식 개념을 극복해야만 하는 반-인간학(Anti-Anthropologie)으로 변용되고 있다. 아울러 푸코에서는 니체의 영원회귀사상이 갖는 종교적 성격도 무시된다. 니체의 ‘초인개념’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함으로써 니체에서 초인이 갖는 정치적 성격, 즉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는 지배자로서의 성격’이 무시되고 있다.

레만은 푸코가 모든 것이 권력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보는 일종의 권력 환원주의에 떨어지게 되며 구체적인 사회적 실천과 투쟁을 고려하지 않게 된다고 보고 있다.

4부에서는 현대사회를 관찰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푸코의 기념비적인 저서인 '감시와 처벌'을 검토하고 있다. 푸코가 주장하는 신-니체주의적인 이론이 푸코가 역사를 파악하는 데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그가 볼 때 푸코는 한편으로 복종과 주체구성의 공간적·시간적 구조들을 분석하는 방향으로 사회사에 대한 연구를 확장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적인 자료들을 지니치게 이념형적으로 구별함으로써 분석의 섬세함에서는 떨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푸코는 경제적인 이익의 획득을 주요한 목표로 삼는 형벌체계들과 교화를 주요한 목표로 삼는 형벌체계들을 구별하지 않고 있으며 민주주의를 통해서 개혁된 감금방식과 나치체제 하에서의 감금방식을 구별하고 있지 않다. 더 나아가 푸코는 감방과 일반적인 규율사회를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니체는 형벌체계의 역사적인 전개를 신체에 대한 직접적으로 물리적인 폭력(고문)에서 주체에 대한 정교하면서도 완화된 지배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보고 있는데, 이러한 시각을 푸코가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푸코가 형벌체계들이 갖는 차이들과 형벌과 일반적인 사회적 규율이 갖는 본질적 차이를 무시함으로써 푸코는 형벌체계를 자본주의 각 시기의 특성과 연관해서 파악하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분석에 입각하여 레만은 포스트모던적 니체주의는 사회에 대한 넓은 의미의 비판이론과 사회과학의 발전이란 측면에서 볼 때 해롭게 작용했다고 본다. 사회를 전복시키겠다는 제스춰만 취할 뿐 그때그때의 사회구조에 대한 어떠한 구체적인 분석도 변혁의 방안도 제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쟁과 전쟁기계라는 들뢰즈 특유의 은유는 들뢰즈의 난해하기 그지없는 秘敎적인 철학적인 담론에 게릴라 전쟁이라는 혁명적인 색채를 부여하고 있다고 레만은 지적한다. 그는 이러한 실속 없는 과격함이 치르는 대가는 "좌익으로도, 우익으로도 기울 수 있는 정치의 모순적 미학화"라고 보고 있다.

 
레만은 포스트모던적인 니체해석이 갖는 문헌학적인 문제성과 이론적인 약점들이 대부분의 이차문헌들에 의해서 무시되거나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한다.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염두에 두고 읽을 때 그들의 생산적 통찰도 살릴 수 있다고 본다.

여기까지가 레만의 주장에서 뼈대를 골라놓은 것이고 서평의 말미에서 박찬국 교수는 레만의 비판에 대해서 논평을 가하고 있다. 우선 "니체 사상의 엘리트주의적이고 반민주적인 성격은 레만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의 후기사상에서만 강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고 니체의 사유도정 전체를 규정하는 것"이라고 동의한다.

 
그러나 박 교수는 "니체는 레만과는 전혀 달리 유토피아를 열망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러한 유토피아에 대한 열정을 비판하고 있다"고 이의를 제기한다. 니체는 인간사회에서 집단들 및 개인들 간의 대립과 갈등 그리고 고통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따라서 니체는 이러한 대립과 갈등을 레만이나 들뢰즈나 푸코처럼 차이에 대한 존중이 지배하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을 통해서 제거하려 하지 않는다. 레만도 니체 자신의 이러한 문제의식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다는 지적에 오면 이 서평이 얼마나 잘 씌어진 것인지에 대해 감탄하게 된다.

아무튼 박 교수는 레만의 비판은 마르크스적인 사회분석을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보는 입장에서 들뢰즈와 푸코의 니체해석에 대해서 가해질 수 있는 비판의 형태를 전형적으로 잘 보여준다고 그 의의를 평가한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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