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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과 버섯구름
성냥과 버섯구름
  • 최승우
  • 승인 2022.08.21 0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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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애리·구정은 지음 | 학고재 | 276쪽

“나를 둘러싼 월드 뉴스, 그 흐름과 맥을 짚어주는 최고의 해설서”

세상의 모든 일에는 이유와 배경이 있다 ▶▶▶ “세계사의 맥락”
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전쟁, 태평양 건너의 홍수와 산불, 지구 반대편의 독재와 시위. 국제 뉴스는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심리적으로도 멀다. 아무래도 남의 나라 이야기인 데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 유럽과 러시아의 대립, 아시아 패권 다툼’ 등등 너무 큰 이야기들이 오가는 탓이다. 게다가 국제 뉴스의 주인공은 늘 대통령, 총리 같은 정치 지도자나 힘 있고 돈 많은 사람들 차지다. 우리의 일상과는 너무 동떨어져 쉽사리 관심사의 뒷전으로 밀리고 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힘’이라는 공통 논리와 ‘돈’이라는 공용어로 하나가 된 세상에서, 오롯이 ‘우리나라 일’ 혹은 ‘내 일’을 구분해 경계를 긋고 살 수는 없는 시대임을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이쯤 되면 어찌된 일인지 더 알고 싶어진다. 뉴스에서 보고 들어 어렴풋이 아는 것 같으면서도, 정작 아느냐고 물어오면 안다고 할 수 없는 것이 세상 일이다. 그런데 ‘흐름’과 ‘맥락’을 안다는 게 결코 만만치가 않다. 토막토막 끊어진 정보들이 분명 서로 연관이 있을 듯한데, 순서도 관계도 아리송하다. 티비에 나오는 넓고 큰 이야기가 어찌된 일인지 글로벌 뉴스의 흐름을 잡아주고, 먼 옛날 이야기부터 바로 어제의 이야기까지 세계사의 맥락을 꿰어주는 해설사가 간절해지는 순간이다.

시공간을 뒤어넘어 이어진 세상 ▶▶▶ “연결고리 세계사”
『성냥과 버섯구름』은 얼핏 무관하게 흩어진 듯 보이는 사건들의 앞뒤를 들여다보고, 한 걸음 나아가 우리의 일상과 연결해보자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가령 한시도 손에서 떠나지 않는 휴대전화와 랩톱 컴퓨터, 무선 이어폰을 충전시키는 습관을 떠올리며 배터리의 기원을 찾아보면 문명의 발상지라 불리는 고대 메소포타미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의 배터리’라는 말도 뜻밖인데 이 유물이 바그다드의 박물관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이야기라면 또 어떨까?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사라진 유물 한 점의 소식은 뉴스에서도 금세 사라지지만, 배터리와 바그다드를 잇는 연결 고리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고대의 문명과 대비되는 현대의 야만을 맞닥뜨리게 된다.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에서 민간인 공격에 쓰인 ‘금지된 무기’, 끔찍하고 잔혹한 백린탄이 탄생한 이야기에서 우리는 동화 속 성냥팔이 소녀와 어린 여공들의 파업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의 뉴스가 역사가 된다 ▶▶▶ “실시간 세계사”
단편적인 뉴스를 입체적인 세계사로 이해하게 해주는 사례가 또 있다. 미국에서 한 흑인 남성이 경찰의 가혹 행위로 목숨을 잃었다. 그런 사건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2020년 일어난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의 여파는 컸다. 흑인 노예를 거래한 노예무역과 식민주의, 인종주의 전체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플로이드의 죽음으로 벨기에에서는 레오폴트 2세의 동상을 끌어내리는 격렬한 항의 시위가 일어났고, 아프리카 국가들이 공개적으로 과거의 노예제와 인종주의를 비판하는 성명을 내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확대된 데는 오래전 제국주의의 역사에서 비롯된 배경이 있다. 1800년대 말 유럽에서 자전거가 대중화되자 콩고 사람들의 손이 잘려나갔다. 벨기에 국왕의 식민지 착취와 만행을 다룬 기록은 많다. 그 가혹한 수탈의 역사에 대해 유럽에서도 반성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지만, 번번이 그저 지나간 과거로 치부되곤 했다. 그런데 그 과거가 현재와 만나 ‘진행형’이 된 것이다.

당신이 겪는 일이 곧 나의 일이 된다 ▶▶▶ “공감과 연대의 세계사”
『성냥과 버섯구름』은 이렇게 ‘현재 진행형 역사’를 펼쳐 보이는 가운데서 ‘남성, 지도자, 영웅’에게만 비추던 조명을 부드럽게 돌려 보인다. 그늘에 머물던 ‘여성, 시민, 소수자’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거대한 사건일수록 그 이면에는 늘 저도 모르는 새 장기판의 말이 되어 남의 손에 삶이 휘둘리는 사람들이 있다.
수영복 종류로 더 유명한 비키니, 태평양 산호초에서 솟아오른 버섯구름. 방사능 못잖게 비키니 섬 사람들을 괴롭힌 것은 미군에 의한 강제 이주였다. 무루로아 환초에서는 프랑스가 비슷한 짓을 했다. 냉전 시절 핵무기는 세계를 얼어붙게 만든 공포의 근원이었다. 그 위협 속에서 집을 잃고 이 섬 저 섬 옮겨다녀야 했던 피해자들은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핵무기와 소수민족, 군사기지와 토착민과 환경 문제는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끊임 없이 문제가 되고 있다. 북유럽 부자 나라 덴마크의 자치 지역인 그린란드 사례에서 보듯 자원과 개발이라는 경제 이슈와 연결되기도 한다. 세계 곳곳의 ‘그들’이 곧 ‘우리’이기도 하다는 점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해준다는 점에서 『성냥과 버섯구름』은 따뜻하고 차분한 ‘공감과 연대의 안내자’ 역할을 한다.

빛도 되고 그늘도 만드는 신기술들 ▶▶▶ “역사의 양면성”
이 책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물건 이야기로 경쾌하게 시작된다. 나사못, 배터리, 커피, 콘돔과 생리대 등 우리가 먹고 마시고 쓰는 사소한 것들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물건은 혁신적인 발명품이다. 인류의 역사를 바꾼 결정적인 순간들, 세계사에 기록된 최초의 순간들에 환호하는 책은 충분히 많다. 그러나 이제는 이 혁신의 등 뒤로 눈길을 돌려보자.
성냥이 대량 생산되면서 사람들의 일상은 크게 편리해졌지만, 유럽과 미국의 성냥 공장 노동자들은 백린의 독성 때문에 턱뼈가 변형되는 장애를 떠안았다. 19세기 후반 유럽의 고무 수요가 늘면서 ‘벨기에의 학살자’ 레오폴트 2세는 콩고에 고무 농장을 세우고 원주민을 강제 노동에 동원했다. 고무 채취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원주민들은 손과 팔이 잘렸고 못 채운 할당량은 그 가족이 채워야 했다.
여성의 몸에 자유를 더해준 생리대는 19세기 말 탄생했는데, 1980년대 세계 대부분 지역에 생리대가 확산됐지만 빈곤층에게는 여전히 사치품인 게 현실이다. 못 쓰는 천, 버리는 신문지 등을 생리대로 쓰는 사람이 여전히 많고, 인도의 무루가난탐은 생리대가 비싸서 쓰지 못하는 아내와 누이들을 위해 직접 면생리대를 만들어 보급하면서 영웅이 됐다. 2016년 우리나라에서도 ‘깔창 생리대’가 문제가 되어 충격을 던진 일이 있으니 남의 일이 아닌 셈이다.
백신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백신은 단시간에 경쟁적으로 개발됐다. 온 세계가 백신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승인부터 배포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말라리아 백신은 어떨까? 치명률 높은 말라리아 원충이 5~10만 년 전부터 존재했고 말라리아가 로마 제국의 쇠퇴에 영향을 줬다는 설도 있지만, 말라리아 백신은 2021년에야 WHO의 승인을 받았다. 유럽의 과학자들이 말라리아 모기와 원충 연구로 노벨 생리학상을 받은 것이 120년 전인데 치료제는 최근에야 만들어진 것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말라리아 백신 개발이 힘든 것도 사실이지만, 결국은 ‘가난한 나라, 빈민들의 질병’이기 때문이다. 기술과 자본을 가진 부자 나라들이 심각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살아 있는 역사, 역사가 될 사람들
손에 잡히는 소재로 단박에 관심을 사로잡아 순식간에 깊이 생각해야 할 과제까지, 유연하게 이 모든 사고를 연결시키는 『성냥과 버섯구름』은 30년간 국제 뉴스를 다루면서 사건의 관계를 촘촘하게 꿰어온 베테랑 기자들의 통찰에서 나온 결과다. 저자들은 신문사에서 일하면서 세계의 소식을 들여다보고 전달하는 일을 해왔다. 시청자 입장에서 한 토막짜리 단신은 그저 ‘점’일 뿐이지만, 오랜 시간 그 점들의 앞뒤 사정을 이어 ‘선’을 만들고 촘촘하게 ‘그물’을 엮어온 두 저자는 가장 가까운 것부터, 가장 쉽고 정확한 말로 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최적의 해설자들이다.
『성냥과 버섯구름』은 의문에 정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우리가 먹고 마시고 쓰는 것들, 뉴스에서 한 번 듣고 스쳐 지나가는 장소들, 흥미로운 화제 정도로 생각했던 사건 속에 숨겨진 의미와 역사를 되짚어보면서 오히려 지금껏 무심했던 것들에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싶다는 바람을 담고 있다. 오애리와 구정은 두 저자는,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일일이 배경부터 설명하지 못하고 눈앞에 벌어진 일을 압축해 전할 수밖에 없었던 보도의 틀에서 벗어나 이제는 그 과정에서 무심하게 생략된 역사, 그리고 그 역사를 살아온,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조명을 돌려주는 데 집중하고 있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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