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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깊은 생각] ‘배부른’ 우울함
[짧은 글 깊은 생각] ‘배부른’ 우울함
  • 교수신문
  • 승인 2000.1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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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1-25 13:30:50
고부응/ 중앙대·영어영문과

한국 사람으로서 영문과의 선생 노릇을 한다는 것은 고달픈 일이다. 소위 인기 학과 중 하나인 영문과 선생이 불평하면 배부른 소리라 할 것이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바로 그 영문과의 인기이다.
영문과 학생들에게 영문과에 왜 지원했냐고 물어보면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영문과에 다니면 영어를 아무래도 많이 읽고 말하게 되어서 영어를 잘하게 될 것 같기도 하다. 세상을 잘 살기 위해서 영어를 잘해야 한다는 뻔한 대답에 나는 우선 착잡해진다. 모든 사람들이 영어를 유창하게 쓴다면 결국 영어를 타고 난 사람들이 편한 세상이 되는 것이다. 나는 그런 일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그렇다고 영어를 잘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이 더 좋은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우스워진다. 영어를 가르치는 것에 대해 말한다면 나는 사실 자신이 없다.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에게 물어보면 해결될 문제를 갖고 이것저것 찾아보고 고민하는 나를 보면 영어 교육은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에게 맡겨야 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고 괜히 자리나 차지하고 앉아있지 않나 싶다.
영어 선생이라기보다는 문학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보아도 별로 나아지지 않는다. 학생들은 문학에 관심이 없다. 어떤 이론을 설명하기 위한 예를 들려고 학생들에게 근래에 읽은 소설이나 시를 말해보라 하면 대답하는 학생이 없다. 황석영의 소설이나 보들레르의 시를 읽어본 학생이 없는 교실에서 문학에 대해 강의하는 나를 보면 한심해진다. 문학보다는 영화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대해 학생들과 같이 논의해야 마땅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것을 실천하려면 또 교과과정이라는 것이 발목을 잡는다. 현대영국소설이니 낭만주의시 같은 과목이 교과과정으로 되어 있는 영문과에서 영화 ‘아메리칸 뷰티’나 ‘공동경비구역’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자리는 아예 주어져 있지 않은 것이다. 논문을 쓸 때도 내 논문을 누가 읽어주며 또 학문적으로 기여하는 것이 과연 있는 지라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논문이란 승진에 필요한 것이지 나의 지적 관심이나 학문에의 기여하고는 거리가 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연속극이나 광고를 분석하고 그에 대한 논문을 쓰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유익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를 실행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학회라는 조직을 통하여 논문을 내어야 제대로 된 논문이라고 인정받는 상황에서 신용카드 광고나 텔레비전의 대담 프로그램을 분석하는 논문을 써본다 하더라도 내가 소속되어 있는 학회는 그러한 논문을 심사하고 게재할 것 같지 않다. 영문과에서 가르치는 것이나 연구하는 것은 학생의 뜻도 아니고 선생의 뜻도 아닌 이미 있는 대학이라는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들며 이런 생각을 하면 우울해진다.
영어에 능통한듯 영어학습서를 내고 아무도 안 읽을 듯한 소설이나 시에 대한 논문을 끊임없이 써내는 교수를 보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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