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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디지털 혁명과 신경제의 미래/류동민-박동현
[대담] 디지털 혁명과 신경제의 미래/류동민-박동현
  • 박동현, 류동민
  • 승인 2001.07.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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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경제시스템 불가피 ... 자본/노동 대립 심화 우려
디지털 혁명과 그로 인한 미국 경제의 장기호황은 ‘신경제’(new economy)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닷컴 기업이 갑작스럽게 발흥하던 지난 1999년과 2000년 초까지 분석가들과 경제학자들은 이 새로운 경제시스템의 출현에 놀라워 하면서 허겁지겁 분석과 전망을 내놓았다. 불과 1년이 지난 지금, ‘신경제’에 대한 논의는 지식사회 어디를 둘러봐도 찾아볼 길이 없다. 단기적인 전망에만 매몰되는 한국 지식사회의 풍속도가 어김없이 재현됐던 것이다. 본지가 지금 이 시점에서 ‘신경제’에 관한 논의를 마련한 것도 보다 장기적이고 차분한 논의를 해보기 위함이다. 이번 대담에는 서로 다른 학문적 배경을 가진 ‘학자’와 ‘현장실무자’를 초대했다. 디지털 혁명과 신경제 분석에는 경제학자의 원근법과 ‘야전사령관’의 리얼리즘이 동시에 요구되는 까닭이다.

●대담자 : 박동현·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공학박사)
류동민·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일시 : 2001년 6월30일
●장소 : 교수신문사 회의실
●진행·정리 : 김재환 기자


사회 : ‘디지털’과 ‘네트워크’ 기술이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을 가져온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디지털 혁명의 경제적 함의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박동현 : 먼저 ‘지식’의 개념에 대해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생산요소에는 토지, 노동, 자본과 같은 전통적 3요소와 기술이나 경영과 같은 요소들을 포함하는 무형자산(intangible asset)들이 항상 존재했습니다. 이 무형의 자산적 요소들의 이름을 바로 ‘지식’이라고 붙인 것입니다. 흔히 지식이라 말하면 지식의 전형적 개념으로 범위를 너무 좁혀 이해하기도 하는 폐단이 있지만, 대신할 다른 적절한 단어를 저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이같은 무형자산들이 점점 더 중요하게 되고 궁극적 경쟁우위 결정요소로 부각되면서 ‘지식기반경제’라는 이름으로 이 시대를 부르게 된거죠. 경제 현상이 컨텐트(content)와 컨테이너(container)로 구성된다고 본다면, 컨텐트들이 정보통신기술이 발전하면서 디지털 플랫폼(digital platform)이라는 컨테이너를 만나게 된 거죠. 디지털 혁명을 ‘기술적 측면’에서만 주목하는 것은 좁은 해석입니다. 인터넷이라는 컨테이너 쪽에서의 획기적 발전이 일어나면서, 컨텐트 역할을 하던 무형자산으로서의 지식들이 디지털 플랫폼에 맞는 형태로 가공되는 상황인 거죠. 지식이 한 사람의 경험 속에 고착화돼 있는 것이 아니라, 컨테이너를 통해서 거래되고 상호 교환될 수 있도록 지식 컨텐트가 기호화/표준화하는 사회시스템의 변화가 바로 디지털 혁명입니다.

디지털 혁명은 무엇을 변화시켰는가

류동민 : 좀더 중요한 것은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네트워크의 문제일 겁니다. 네트워크를 형성함으로써 경제적인 관계,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인간관계를 맺는 방식이 혁명적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네크워크는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의 하층에 있는 사람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을 그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예전의 지식은 오랜 경험이나 교육을 받은 숙련공이나 전문가가 가진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경제학적으로는 ‘노동’이라는 생산요소에 포함된 요소였지요. 그런데, 이것이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라 상품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경제인류학자 폴라니(K. Polanyi)는 이른바 허구적 상품의 상품화의 과정이 근대 서구의 역사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가 제시한 예는 토지, 돈(화폐), 노동력 같은 생산요소들이었습니다. 폴라니가 묘사했던 20세기 중반의 자본주의에서도 상품화되지 않았던 ‘지식’이 명실상부한 상품으로 자리잡게 되는 과정, 이것이 ‘지식혁명’이 아닌가 합니다. 세계자본주의 전체에서 이런 경향이 작동하고 있고, 우리도 그속으로 편입돼 가고 있죠. 이건 일종의 양날의 칼입니다. 소수에 독점돼 있던 지식이 공유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상품화되면서 구매능력이 없으면 절대 접근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디지털화는 결국 극도로 발전된 자본주의의 산물입니다.

박 : 디지털라이제이션(digitalization)과 디지타이제이션(digitization)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자는 경제의 기반이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바뀌어 가는 것을 말하고, 후자는 소위 요소들이 디지트화되는 것을 뜻합니다. 중요한 것은 후자입니다. 생산요소로서의 지식이 디지타이즈(digitize)된다는 것은 ‘기호화’(codification)가 궁극에 달한 형태를 말합니다. 상품으로 교환이 되기 위해서는 ‘암묵적 지식’이 아니라, 기호화된 지식이 필요합니다. 지식을 기호화해서 기계도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디지털라이제이션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악보의 경우를 보면 이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악보는 누군가가 멜로디를 종이 위에 부호로 옮긴 것이지만, 그것을 제3자가 그 악보의 규약에 따라 재현하면 다시 음악이 됩니다. 이런 식으로 지식이 디지털 요소로 바뀌고 나면 아주 다양한 변화가 가능해집니다.

사회 : 마이클 만델은 기술순환이 경기순환을 대체했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디지털화가 문제되기 시작한 것은 최근 몇 년 사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박 : 사실상의 단절이랄 수 있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식이 디지타이즈되고, 플랫폼들이 서로 거미줄같이 연결되면서 재화의 생산에 있어 취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대단히 넓어졌습니다. 예전에는 원료개발에서 프로세싱, 마케팅, 사후 서비스까지 혼자서 다 해야 했지만, 네트워크로 연결되면서 핵심부문을 제외하고는 외부에서 이루어질 수 있게 됐습니다. 부품산업과 조립산업에서 부품이나 설비, 디자인 등에서 서로 상대의 컨텍스트(context)를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질 수 있게 됐습니다. 재화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기능들을 외부에서 얼마든지 끌어다 쓸 수 있게 됐기 때문에, 여러 형태의 비즈니스 활동이 가능해졌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비즈니스 모델 개발붐이 일어난 것도 그 때문이죠. 과거의 비즈니스활동에 비해 취할 수 있는 전략의 폭이 획기적으로 늘어나면서 경기 순환에 덜 영향을 받게 됐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다고 봅니다. 기술순환에 대한 논의는 폭넓게 받아들여지는 논리는 아닙니다. 최근의 중요한 변화를 말하자면 본격적 디지털혁명의 싹이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경제현상을 설명할 때 컨텐트와 컨테이너라는 개념을 앞에서 도입했는데, 음악, 미술 등은 서로 구분되는 것이지만, 이들의 컨텐트가 디지타이즈되면 서로 독립된 영역의 구분이 없이 완전히 동화(compatible)될 수 있게 돼, 결국 동영상이라는 디지털 융합재화로 통합됐습니다. 이것이 컨텐트의 디지타이제이션의 위력이죠. 최근 이와같은 융합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피터 드러커는 디지털 혁명이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는 인류역사상 가장 중요한 발명을 증기기관과 구텐베르크의 이동식 활자를 꼽고 있습니다. 그러나 증기기관이 가져온 산업혁명에 있어서, 진정한 혁명은 철도가 발명되면서라고 합니다. 증기기관이라는 컨텐트는 엄청난 생산성 향상을 가져왔지만 철도라는 컨테이너가 출현해 새로운 컨텐트와 결합되면서 일간신문, 보건산업, 투자은행 등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내게 됐다는 거죠. 현재 우리의 경우 컨테이너 부문은 많은 진전이 있지만, 컨텐트의 디지털화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전자상거래 같은 인터넷의 응용 소프트웨어가 나오면서 이제 혁명이 시작됐습니다. 어떻게 진행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기업간 네트워크가 진전되면서 결국 기업간 생산 요소라는 컨텐트의 기호화/디지털화가 진행될 것입니다.

류 : 선택의 폭은 모두에게 열려 있지는 않습니다. 암묵적인 지식을 디지타이즈된 형식적인 지식으로 만들고, 숙련을 매뉴얼로 만들어서 해체하는 과정은 산업혁명 이후 계속돼 왔습니다. 자본의 입장에서, 이윤추구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뤄져 왔죠. 이런 변화 그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자본과 기업에만 유리한 것인가, 노동자의 이익에도 부합되느냐하는 겁니다. 디지타이제이션으로 필요한 부분만 쓰고, 나머지는 아웃소싱을 하게 되면서 고용관계도 인격적 측면보다는 경제적 ‘거래’의 측면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고용불안이 심해지고 있죠. 이전의 포드주의적 축적체제에서도 고용관계의 거래적 측면보다는 관계적 측면을 상당히 강조했습니다. 자본과 노동, 국가가 서로 일정부분을 인정하면서 생산성을 높이면 그에 상응한 임금을 주면서 노동자를 사회 내에 통합시켰죠. 또 하나의 문제는 자금 조달이 주식시장과 같은 직접금융에 의존하고 있다는 겁니다. 기술발전으로 자금이 조달되는 게 아니라, 거꾸로 모험적인 ‘벤처금융’에 의해 주식이 잘돼 자금조달이 이루어지고, 연구개발이 되고 기술이 발전하는 겁니다. 두고 봐야겠지만, 자본과 노동의 비대칭적 양상이 더욱 심화되는 측면을 간과해선 안됩니다.

자본과 노동관계의 재편 가능성

사회 : 기술의 변화가 비대칭적인 자본과 노동의 관계를 새롭게 재편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류 : 그럴 가능성도 있죠. 하지만, 지식이 코드화된다는 것은 일단 지식 소유자의 입장에선 불리합니다. 전문가 집단은 자신의 지식을 배타적으로 소유하고, 매뉴얼화 하더라도 이해하기 쉽게 내놓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소유해야 권위도 유지될 뿐더러 경제적인 이득도 생깁니다. 노동자의 경우도 자신이 가진 숙련노동을 코드화해서 내놓는 것은 교섭력을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내놓게 되면, 누구든지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있거나 기계가 대신하게 되죠. 하지만, 이러한 과정이 사회전체적으로 강제돼 다른 사람의 지식을 습득할 수 있기 때문에 플러스 효과가 생기게 됩니다. 결국 이러한 지식의 네트워크를 통해 발생하는 이익이 누구에게 가느냐가 문제됩니다. 네트워크를 주도하는 것은 자본이기 때문에 자본에게 더 유리합니다. 물론 그 네트워크에서 발생하는 이익이 크기 때문에 거기에 참여하는 개별 노동자나, 소비자들에게도 돌아가기는 하죠. 그러나 자본과 노동의 비대칭성은 쉽게 역전되거나 극복되지는 않습니다. 스톡옵션 같은 제도도 그 수혜범위는 지극히 한정돼 있다는 점에서 자본과 노동이 동일한 이해관계에 놓이게 되지는 않습니다. 자본이라는 중심에 가까이 가 있는 사람이 오히려 스톡옵션을 받기 쉽지요.

박 : 지식혁명이 그렇게 부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지식혁명은 노동자가 새로운 형태의 지식을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식에는 소위 ‘컨텍스트’가 존재하기 때문에 기호화되지 않는 부분이 존재합니다. 기존의 기호화된 지식은 새로운 지식을 축적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고, 새로운 지식을 낳기도 합니다. 예컨대 어떤 주제에 관해 하루에 10페이지의 원고를 쓴다고 가정해 보죠. 기계를 통해 20페이지 정도의 초고를 제공받을 수 있다면, 그것을 참조로 원고를 집필할 수 있게 됩니다. 기계가 저급의 지식노동을 대신하는 거죠. 이런 변화는 지식노동이 현재와 비교해서 좀더 쉽게 효율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지금은 시나리오 설계만 집어넣으면 소프트웨어가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주는 정도입니다. 스톡옵션과 관련해서 말씀드리자면, 기초 자금(seed money)이 없이 거부가 될 수 있는 기회는 과거에 비해 확실히 커졌습니다. 그렇다고 자본과 노동의 관계가 역전된다고 보는 것은 아닙니다.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신경제의 호황에 의해 얻어진 부의 70%이상을 상위 5%가 독점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사회 : 미국경제가 주춤하고 있기는 하지만, 최근 10년동안 고성장, 저물가의 호황을 누렸습니다. 이같은 미국의 ‘신경제’(new economy)는 디지털 경제의 출현을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류 : 신경제는 구경제와 질적으로 다릅니다. 디지털화에 의해 물가상승의 요인이 상당히 억제되고, 대량실업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언론의 호들갑처럼 경기순환이 영원히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그 양상이나 형태는 상당히 달라졌습니다. 고전적인 경기순환이 실물부문에 문제가 생겨 금융부문으로 파급되는 양상이라면, 신경제하에서는 거꾸로 금융부문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지난 10년간의 미국경제는 실물부문보다 주식시장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호황이었던 겁니다. 금융시장은 인간의 기대와 심리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예전 같으면 별 문제없는 상황에도 크게 나빠질 수 있는 위험이 존재합니다. 실업문제의 경우 노동의 이동성이 높아졌습니다. 실업률은 낮았지만 노동자들은 이리저리 직장을 옮겨 다녀야 했습니다. 핵심역량을 가진 노동자들은 안정된 고용상태에 있지만, 그렇지 않은 노동자들은 계속 일자리를 찾아야만 하는 거죠. 실업의 내부구성이 달라졌다고 할까요.

박 : 이른바 ‘미국의 신경제’는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의 측면에 주목한 것입니다. 고성장을 하면서도 물가는 안정되고 실업률은 낮아지는 상황말이지요. 신경제를 두고 경기순환이나, 경착륙/연착륙에 집착하는 논의는 좁은 시각이라고 봅니다. 더욱 넓은 관점에서 주목해야할 것은 새로운 경제사회시스템이 출현했다는 사실입니다. 출현시기는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진행되던 때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이나 OECD를 중심으로 새로운 ‘게임의 법칙’이 출현했고, WTO체제가 출범하면서 ‘법칙’을 어기는 국가에 대한 강제 제재장치까지 마련했지요. 이런 변화를 기반으로 나타난 자연스러운 경제현상을 진정한 의미의 신경제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검토해볼 문제가 있습니다. 신경제의 특징으로 흔히 지적되는 저비용의 인터넷 온라인 거래는 시장의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컴덱스닷컴이라는 기업은 엄청난 자본을 투입해 만든 초거대 닷컴으로 초기에 주가가 2백43불까지 치솟았지만, 1년만에 1불이하로 떨어지면서 지난 3월 폐쇄됐습니다. 미국의 신경제에 대한 우려는 이때부터 시작됐죠. 최근의 실리콘밸리에서는 ‘하늘아래 새로운 비즈니스는 없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새로운 제품을 만들고, 새로운 생산조직을 갖추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신경제라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는 디지털화된 지식들이 새로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단계로 바뀌어야 한다는 겁니다. 인터넷에서 클릭만 하면 그것이 가치를 창출한다는 클릭앤모뎀(click-&-modem)의 허상에서 깨어나 비즈니스 펀더멘틀과 연결된 클릭앤몰타르(click-&-mortar)로 가야한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기업들의 위기의식은 대단합니다. 이런 전환이 짧게는 3, 4년 길게는 10년까지도 걸리겠지만 그때 가서 신경제라는 말을 쓸 수 있으리라 봅니다.

류 : 신경제에는 미국의 정치적인 의도도 깔려 있다고 봅니다. 미국이 세계경제의 틀을 짜나가고 정치적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의도가 있는 거지요. 국가간 디지털 격차와도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정보가 상품화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국제적으로 지적재산권이 강제돼야 합니다. 세계정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국제적인 틀은 결국 미국이 주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산업화는 뒤졌지만 정보화에는 앞서자’ 식으로 디지털 기술에 집중한다고 해서 신경제로 진입할 수 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한편으로 벤처기업으로 상징되는 한국의 ‘신경제’가 주는 의미를 폄하할 수는 없습니다. 한국경제의 가장 큰 문제인 재벌경제는 점점 더 버티기 힘든 상황입니다. 그런 점에서 벤처와 같은 신경제의 흐름은 긍정적인 흐름이라고 볼 수 있지요. 정보화, 금융화, 미국주도의 세계화가 동일한 흐름으로 존재한다고 해서 무조건 신자유주의 반대만 외치며 굴뚝산업이 중요하다고 외치는 좌파적 입장도 잘못된 것입니다. 신자유주의 정책에 투항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신경제가 가진 긍정적 측면을 외면해서도 안되지요. 역시 외국자본 들여오면서 신경제로 가야한다고 일방적으로 외치는 것도 경계할 일입니다.

사회 : 디지털 격차의 문제를 좀더 논의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디지털 경제의 핵심적인 문제가 바로 거기서 비롯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신경제의 도래와 디지털 격차의 문제

박 : 디지털 격차 그 자체보다 그것이 삶의 질에 어떤 변화를 초래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소득격차라든가 고용의 문제 말이죠. 미국의 경우 임금은 올랐지만 파트타임 노동이 증가해서 삶의 질이 70년 전 수준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유재산권의 보장이 자본주의 존립의 근거라면, 지식기반경제에 맞는 새로운 재산권의 형태를 어떻게 조정하느냐가 과제일 겁니다. 디지털 격차가 가져오는 충격들을 완화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장치나 배분구조를 재설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국의 신경제가 가진 장점 중 하나는 창업을 해서 망하더라도 실제 생활에는 지장이 없을 만큼 안전장치가 있다는 겁니다. 우리처럼 온 가족이 길거리에 나앉는 상황이 벌어지지는 않죠. 이는 결국 국가재정의 문제입니다. 세제같은 분배구조에 관련된 사회시스템도 그런 점을 고려해서 마련돼야 합니다.

류 : 디지털 기술 자체가 필연적으로 격차를 가져온다거나, 없앤다거나 하는 것은 기술결정론적 시각입니다. 인간이 어떻게 대처하는가가 중요하겠지요. 시장의 자율적 기능에 의해 해소될 수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디지털 격차는 이전의 빈부격차 등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디지털화된 세상에서 그런 변화를 쫓아가지 못하면 생활자체가 불가능해 집니다. 인터넷을 할 줄 모르면 생활이 불가능해지는 것이 요즘 추세 아닙니까. 국제적 차원의 디지털 격차도 중요합니다. 미국이 소프트웨어의 지적재산권을 주장하면, 우리가 먼저 나서서 보호를 외치고 있는 마당입니다. 이런 상황에 제대로 대처해야 합니다.

박 :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 웨트웨어(wet ware : 젖은 웨어)라는 말이 있습니다. 신경제의 경쟁력은 웨트웨어에 있다는 말은 정설인 것 같습니다. 인터넷이나 게임보급률, 초고속통신망 개인 가입자수 등은 우리 나라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하지만, 웨트웨어로서의 질은 그에 훨씬 못 미칠 것으로 봅니다. 그 웨트웨어를 업그레이드 시키는 것이 한국경제의 과제라고 본다면, 결국 교육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관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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