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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原風景을 찾아서’, ‘안티쿠스’ 열린강좌 개최
‘유럽의 原風景을 찾아서’, ‘안티쿠스’ 열린강좌 개최
  • 최장순 기자
  • 승인 2006.02.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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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광주 '안티쿠스' 편집인

© 안티쿠스

지난 11일 인사동 문예아카데미에서 ‘안티쿠스’ 열린강좌의 첫 번째 강연회가 개최되었다. 강좌는 “일상의 삶을 보다 고귀하게, 반듯하게, 풍요롭게 하는 것은 학문이 아니라 교양이다”라는 박경주 발행인의 개회사로 시작되었고 어느새 마이크는 이광주 안티쿠스 편집인(인제대 명예교수)의 손에 들려있었다.

이 교수는 ‘도시’, ‘광장’, ‘의회’, ‘대학’, ‘살롱’, ‘카페’, ‘극장’ 등의 공간을 키워드로 놓고 유럽 문화의 풍경을 그려나갔다. 강의의 구성 자체가 생활공간과 사유체계 및 삶의 태도 사이의 밀접한 상관성을 암시하고 있다.

“도시의 공기는 자유롭다”

그는 “우리 세대에서 유럽은 매우 특별한 대상”이라고 운을 떼고 나서, “우리 사회는 ‘가족’을 원점으로 출발했다. 국가(國家)라는 말을 보더라도 나라(國)는 가족(家)의 개념으로 포섭된다. 그러나 유럽인은 시민으로 태어나며 도시를 떠나 생각할 수가 없다”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유교문화권 하에서 마을 공동체를 꾸려 생활했기 때문에 자기 식구, 파벌을 중심으로 사유를 확장시키는 가족이데올로기가 구성되었지만, 유럽의 경우엔 누구나 공존하는 도시라는 공간 속에서 자유로운 사교문화와 담론문화를 발달시켰다는 말이다.

이 교수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유럽의 도시는 타인과 공존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도시문화 속에서 담론, 사교 문화가 뿌리내렸다. 여기 일종의 사회 공공성을 추구하는 모럴이 생겼다. 마을 공동체 성격이 강한 우리 유교 문화권에서는 사회적 공공성보다도 가족윤리, 효와 충 등이 도덕성의 본질을 이루었다.”

우리가 혈연과 지연으로 공동체를 꾸려 폐쇄적 생활태도를 간직하고 있는 동안, 유럽인들은 종교, 이데올로기, 지역, 계층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도시 공동체를 꾸려 개방적 태도로 삶을 대했다는 것. 이렇게 개방적 삶을 가능케 했던 것은 어느 도시에나 존재하는 ‘광장’이었다.

이 교수는 “이렇게 유럽 문화의 출발점이 되는 도시에는 어디에나 광장이 있는데, 광장이야말로 사고와 담론이 펼쳐지는 중심적 장이다”라면서 “광장이 존재하지 않는 곳은 도시가 아니라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광장에서 사교와 담론을 나눈 대표적 철학자가 소크라테스였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문화적 비례방정식, ‘유럽’:‘한국’=‘살롱’:‘사랑방’

유럽에 ‘살롱’이 있다면, 우리의 경우엔 ‘사랑방’이 있다. 사랑방을 생각하며 아늑한 분위기와 정감어린 광경을 연상하는 독자가 있다면, 이 교수의 지적에 매정함을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사랑방은 끼리끼리 모이는 장소다. 그래서 당파가 형성된다. 그러나 살롱에서는 신분, 직업, 이데올로기, 종교가 다르면서도 자유로운 담론이 나누어졌다. 군인, 기업가, 예술가, 학자, 고위 성직자(종파가 다른 프로테스탄트와 카톨릭 모두) 계열의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졌다. 이는 담론을 꽃피운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우리 사랑방의 경우엔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했다. 즉, 당파가 형성되었다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유럽의 문화는 개방적이었고, 자유롭게 사교와 담론이 형성될 수 있었지만, 우리는 폐쇄적인 문화가 발생했다.”

또한, 그는 살롱뿐만 아니라 “의회, 대학, 카페, 극장에서도 사교와 담론의 장이 펼쳐진다”고 설명했다. 즉, 이 각각의 공간에서 신분, 이데올로기, 종교, 직업이 다양한 사람들이 한 데 어울려 사교문화와 담론문화를 형성했는데, 바로 이런 점에서 유럽은 다양성과 자유가 보장되는 열린사회라는 것이 이 교수의 생각이다.

이광주 안티쿠스 편집인의 기본적인 생각은 유럽의 경우,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와는 다른 색깔이 있다는 것이다. 미·일·중·러는 우리에게 정치적·군사적·경제적 무게를 가진 의미로 다가오지만, 유럽이라는 공동체에는 ‘문화적 코드’가 많이 묻어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베토벤, 모차르트의 유럽이, 사상을 좋아하는 사람은 데까르트, 칸트의 유럽이,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다빈치, 피카소의 유럽이,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괴테, 세익스피어, 세르반테스의 유럽이 다가온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사유는 “유럽이란 정치/경제적 의미보다도 문화적 의미를 많이 지니고 있다”라는 명제에서 출발한다.

이교수가 설명한 사교, 담론의 문화를 통해 우리의 모습을 돌아볼 수는 있다. 강의에서, 우리가 미덕으로 생각하는 ‘침묵’의 문화가 다양한 메타포를 생산해내어 의미해석의 모호성이 발생된다고 들었다. ‘침묵’의 문화가 가끔은 이해불가한 수사학적 이데올로기(선문답을 통한 스승과 제자의 관계 고착화)를 양산해낸다는 말로 이해된다. 그래서 우리는 보다 ‘말을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의 지적은 타당하다.

각설하고, 그가 1시간 동안의 강의를 통해 내린 결론은 ‘유럽은 문화 공동체’이며, ‘그 속에서 자유롭고 다양하게 꽃핀 사교와 담론문화를 배울 필요가 있다’는 말로 압축된다.

우리에게 부족한 부분은 배워오면 된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지식인들이 보여주었던 모습처럼 일방적 수입을 통해 지식의 오퍼상을 자처하는 상황은 곤란하다. 지식이나 문화의 교류는 상호적이어야 한다. 이 교수의 말마따나 우리가 유럽에게 배울 것은 있지만, 반면에 우리가 유럽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것도 있다.

가령, 지하철에서 노인에게 양보하지 않는 유럽인들은 한국의 지하철 안에서 새로운 ‘미덕’을 배워간다. 우리는 한국적인 무엇, 동양적인 무엇도 서양인들에게는 배워야 할 새로운 문화적 자질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제한된 시간과 한정된 주제 때문이었겠지만, 이 교수의 강의에는 이러한 점에 대한 언급이 없어 아쉬움이 남았다.

■ 이광주 교수 인터뷰

▲이광주 안티쿠스 편집인(인제대 명예교수) © 교수신문
△ 안티쿠스 열린강좌를 열게 된 배경은?

"'안티쿠스'는 인문학의 교양잡지다.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많은데, 이를 통해서 폭넓게 인문학의 부흥을 꿈꾸고 있으며 반듯한 교양인을 기른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와 더불어 더 폭넓게 열린 교양을 위해 시민 교양 강좌를 지속적으로 하게 될 것이다. 테마는 문,사,철이 될 것이고, 동,서양 고전에서부터 현대 우리들의 지적 관심에 부응하도록 잡지와 교양강좌를 하는데, 가을부터는 지방도시도 순회하면서 강좌를 개최할 것이다. 사회의 인문학적 교양을 고위하기 위해 단행본도 발간할 예정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해서 좋은 책들을 발간할 것인데, 고전 뿐 아니라 필자를 폭넓게 모셔 다양한 종류의 책을 발간할 예정이다."

△ 고전이 현 시대에 가지는 의미는?

" 고전은 어느 시대건 의미가 있다. 고전은 꼭 옛날 책을 말하는 게 아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문화 반성, 개인 인격 형성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논어가 단순히 중국 성현의 말씀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오늘날에도 주요한, 올바른 개인을 형성하기 위해서도 고전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시대를 초월해서 우리에게 ‘의미’를 가지고 다가온다."

△ 강의에 대해 질문하겠다. 선생님은 유럽사회의 밝은 면만 말씀하셨다. 자크 르 고프가 ‘암흑’의 중세를 ‘밝은 중세’로도 볼 수 있다 한 것처럼, 유럽도 여러 가지 유럽'들'이 있는 것 아니냐?

"물론, 우리는 여러 가지의 유럽을 볼 수도 있다. 우린 제국주의의 원형으로서의 유럽을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날 강의에서 내 관심은 문화로서의 유럽을 읽는 것이었다. 자연이라든가, 지정학적 위치라든가, 유럽이 열린 사회였다는 것을 내가 이야기했다. 열린사회는 다양성을 지닌 사회였다는 것. 이건 우리 한국 사회와는 대단히 이질적이다. 그리고 유럽은 도시 공동체로 출발했다. 도시는 남하고 공존하는 공간이다. 마을공동체와는 다르다. 그래서 도시문화 속에서 담론, 사교 문화가 뿌리내렸다. 여기 일종의 사회 공공성을 추구하는 모럴이 생겼다. 마을 공동체 성격이 강한 우리 유교 문화권에서는 사회적 공공성보다도 가족윤리, 효와 충 등이 도덕성의 본질을 이루었다."

△ 강의의 제목이 ‘유럽의 원풍경을 찾아서’였는데 원풍경이라는 말은 유럽적 사고와 문화가 발흥될 수 있었던 풍경의 기원을 말하는 것인가?

"유럽의 원풍경이라는 말은 유럽의 ‘뿌리’를 말하는 것이다. 유럽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문화적 관심이라는 것에서 ‘문화로서의 유럽’을 테마로 설정하였는데, 유럽은 자연적 요소, 학적 위치로 인해 다양성을 지닌 사회였다. 유럽은 도시공동체로 출발했고, 도시는 다양성이 공존하는 공간이며, 그 속에서 담론과 사교문화가 뿌리내렸다. 이를 통해 개인을 중시하는 유럽인들 사이에 ‘공공성’을 추구하는 도덕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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