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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번 장원 급제 이율곡…국경에서 사신을 맞이하다
아홉 번 장원 급제 이율곡…국경에서 사신을 맞이하다
  • 유무수
  • 승인 2022.07.22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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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_『아무나 볼 수 없는 책』 장유승 지음 | 파이돈 | 344쪽

약 28만 권 고서 중 3천475권이 귀중본으로 분류
팔만대장경·난여·황화집·응골방·동국장원책을 살펴보다

이 책은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귀중본을 소개한다. 국립중앙도서관에는 약 28만 권의 고서가 있고 그 중 3천475권이 ‘귀중본’으로 분류돼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은 △효종 이전(1659년)의 책 △1950년 이전 국내발간 자료 △1910년 이전 한국관련 외국자료 △국내 유일본 △왕이나 유명한 학자, 문인 등이 오래 간직하면서 애용하던 책으로 자필서명 또는 장서인이 있는 것 등 12가지를 귀중본으로 분류하고 있다. 귀중본은 복사본이나 사진으로만 볼 수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는 『팔만대장경』 인쇄본이 있다. 두께 4cm의 대장경 경판 8만 개를 쌓으면 2천744m의 백두산보다 높은 3천250m이다. 팔만 개의 경판을 제작하는데 15년이 걸렸다. 대장경의 수요는 왕실과 대형 사찰 정도로 매우 제한적이었을 텐데 수백 장의 동일한 인쇄물을 찍어낼 수 있는 목판 대장경을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서책의 소량 생산에는 금속활자가 적합했다. 고려는 이미 1234년 『상정고금예문』을 찍어낼 정도의 금속활자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팔만대장경의 목적은 불교세력을 포용하려는 조치, 문화적 저항, 몽고의 침입을 막겠다는 주술적 저항 등 여러 견해가 있으나 책의 인쇄가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책을 만드는 기록을 지배하는 자는 권력을 차지할 수 있었다. 『난여(爛餘)』는 영조 때 영의정을 지냈으며 노론에 속해 있던 김재로(1682∼1759)가 조보(朝報: 조선시대 관보)를 바탕으로 만든 책이다. 김재로는 난여에서 ‘신임사화’의 책임은 소론에 있으며 노론은 억울한 희생자라는 ‘신임의리’를 확고히 했고 경종 재위 기간 동안 소론이 저지른 만행을 상세히 기록함으로써 노론의 정치적 정당성을 뒷받침했다. 김재로의 가문이 6명의 정승을 배출하며 영·정조 시대에 권력을 차지하는 명문가가 된 배경에는 난여가 있었다. 

『황화집(皇華集)』은 명나라 사신과 조선의 관원이 주고받은 시를 모은 책이다. 명나라 사신이 한 번 오면 한 권의 황화집이 만들어졌다. 황화집은 1450년(세종 32)에서 1633년까지 20여 차례 만들어졌다. 사신이 오면 조선 관원은 의주에서 한양까지 동행하면서 중도의 명승지에 들러 잔치를 열고 시를 주고받았다. 조선의 관원이 사신과 시를 주고받는 행위는 조선이 명나라와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문명국임을 드러내는 일종의 외교 활동이었다. 명나라와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동안 조선은 시를 정책적으로 지원했다. 9차례 과거 시험에서 모조리 장원을 차지한 탁월한 문장가였던 이율곡은 한 때 국경에서부터 사신을 맞이하는 원접사(遠接使)였다. 

 

1965년 김은호가 그린 율곡 이이(1536∼1584)의 초상화. 그는 한 때 국경에서 사신을 맞이하는 원접사로 활동했다. 사진=위키백과

『응골방』은 매사냥의 문화를 담고 있다. 옛날에는 소, 돼지, 닭이 모두 귀했다. 그러나 양반들은 고기를 자주 먹었다. ‘고기 먹는 사람’은 귀족을 의미했다. 양반들의 밥상에 오르는 고기는 대부분 꿩고기였고, 꿩은 훈련시킨 매를 이용하여 잡았다. 숙종 때 국가에 등록된 매사냥꾼만 1천800명이었다. 응골방은 매에게 먹이 주는 방법, 길들이는 방법, 훈련하는 방법, 매사냥할 때 주의사항 등 매사냥에 관한 모든 것이 실려 있다.

『동국장원책』은 1396년부터 1447년까지 시행된 과거시험에서 장원급제한 답안지를 모은 책이다. 이 책에는 연도별 문제와 답안이 실려 있다. 문제의 분량은 250자, 답안은 1천 자가 보통이었다. 한글로 바꾸면 문제가 1천 자, 답안은 4천 자 가량인 셈이다. 문제는 경전과 역사 공부를 심도 있게 하지 않으면 답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예를 들면, △현재 국가의 제도 중 개혁이 시급한 것을 논하시오 △역대 군주들이 우선한 정책과 현재 우선해야 할 정책을 논하시오 △역대 군사 제도를 서술하고 우리나라 군사 제도의 개선 방안을 제시하시오 △역대 교육정책을 서술하고 오늘날 교육의 주안점을 논하시오 등이었다. 저자인 장유승 단국대 교수(동양학연구원)에 의하면 과거 제도의 궁극적 목표는 체제의 유지와 안정이었다. 따라서 체제의 안정을 흔드는 급진적 개혁을 주장하는 답을 작성한다면 낙방을 각오해야 했다.

유무수 객원기자 wiseta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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