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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향보도 "너무하네"…"옛글 울궈먹기·친일사관 심각"
편향보도 "너무하네"…"옛글 울궈먹기·친일사관 심각"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6.02.15 00:0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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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한국전후사의 재인식' 똑바로 인식해야

‘해방전후사의 재인식’(박지향·이영훈 외 엮음, 책세상 刊)의 열기가 활활 타오르고 있다. 이 열기의 진원지는 어디일까. 한길사가 펴낸 전6권의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그 카운터 파트일까. 언론에 보도된 것으로 봐서는 그런 듯하다. 이 책의 편집위원들이 20년 전에 나온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낡았기 때문에 새 책을 펴내는 것이라고 의도를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낡았을 뿐 아니라 "사실관계에서의 오류가 심각할" 정도로 생각하고 있으니 ‘재인식’의 위력은 '교과서'를 교체하는 듯한 효과에서 발생하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교체환상은 언론이 만들어놓은 ‘진보 vs 뉴라이트'라는 인식의 매트릭스 속에서일 뿐이다. 학계의 토론을 거치지 않고 정전에 등극하기는 어려운 일. 설령 ‘재인식’에 글을 실은 29명의 필자들이 책의 그러한 편집의도에 동의한다고 가정하더라도 한국사 전공자는 1명도 없다는 점이 걸린다. 전부 서양사, 정치사, 경제사, 외교사, 헌정사 등 한국사에 한 다리 걸친 타 전공자들이 나선 것이다. 가령 ‘재인식’ 2권에 실린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국제정치)의 ‘한국전쟁 원인의 국제정치적 재해석-스탈린의 롤백 이론’의 경우 브루스 커밍스의 학설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하여 정치학계에서는 화제가 되어온 논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정작 역사학계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잘썼다 못썼다 말이 없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이 책에 대한 논의가 너무 뉴라이트의 출사표니, 현 정부의 잘못된 역사인식의 문제를 교정하는 책이니 하는 식으로 흘러간다는 점이다. 중앙일보에서 책이 출간되기도 전에 ‘해방전후사의 인식의 뉴라이트 판’이라고 제목을 뽑았을 때부터 이 책의 운명은 결정된 듯했다. 급기야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피가 거꾸로 솟았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고, 머리말에서 “대통령의 역사인식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는 말을 한 박지향 서울대 교수는 “확인을 해보지 않은 게 불찰이다. 3판을 인쇄할 때 바로잡겠다”라고 해명을 함으로써 스타일을 구기게 됐다. 과거에 나온 책의 실증적 오류를 교정한다는 책의 서문이, 그것도 역사학자가 쓴 서문이 팩트 확인도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아무튼 언론이 ‘황우석사태’를 보도하던 그 기세를 그대로 몰아 대서특필한 ‘재인식’의 효과는 서점가에서 톡톡히 나타나고 있다. 딱딱한 논문을 모아놓은 1천5백쪽(2권)에 이르는 巨帙이 하루만에 2천부 초판이 모두 소화된 것이다. 책세상의 문선휘 과장은 “1권, 2권 각각 2천부를 찍었는데 모두 팔렸고, 현재 중판 3~4천부 정도를 제작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아마 이 책은 ‘학술서’의 최단시간 베스트셀러 기록을 갈아치울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과정을 지켜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홍석률 성신여대 교수(한국현대사)는 “학계에서 먼저 쟁점이 만들어지고 언론보도가 따라가는 게 순리인 것 같은데, 책이 나오기도 전에 대서특필되고, 인식의 쟁점들이 언론을 통해서 부각이 되고, 학계는 논쟁을 할 여지도 없는 것 아니냐”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이데올로기적으로 논쟁의 구도가 굳어져 찬성하면 ‘뉴라이트’이고 반대하면 ‘진보’라 하는 판에 누가 거기에 대해 언급을 하고 싶겠는가”라는 게 홍 교수의 불만인 것이다.

책의 구성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학자는 "탈민족을 외쳤으면 그 입장에서 필자를 재구축해서 뭔가 초점화가 되어야 하는데, 지금 실린 글들은 전부 옛날논문이고 이미 학계에서도 평가가 끝난 논문들을 다시 울궈먹는 듯한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라고 기획의 허점을 지적했다.   

그렇다면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쓴 필자들은 어떤 느낌을 가질까. 백일 울산과학대 교수(경제학)는 "그 책에 실린 일부 논문들이 지나친 친일적 관점으로 편향되고 있는 것은 문제"이고 "일반 국민들이 그런 내용을 전혀 모른채 언론을 통해 수용하고 있는 현실"이라 지적하며 "앞으로 비판이 필요하겠지만, 어찌보면 '재인식'에 대응하는 '신판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다시 쓰여져야 할 지도 모르겠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책에 논문을 실은 교수들도 과도한 언론의 관심에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농지개혁-지주제 해체와 자작농체제의 성립'을 재수록한 장시원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는 “자꾸 한쪽으로 몰아가는 것 같아서 불만이다. 사료에 기초해서 객관적으로 당시 역사를 한번 새로 보자는 식으로 시작한 것인데, 언론에서 자꾸 뉴라이트 쪽으로 몰아가서 당황스럽다”라고 말한다. 장 교수는 “박지향 교수가 언론보도에 대한 해명이메일을 필자들에게 계속 보내주고 있어서 참고 있다”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는 “그것에 대해서 내가 무슨 말을 하면 또 와전되어서 시끄러워지기 때문에 말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또 이름을 밝히길 꺼려한 한 필자는 “사실 이 논문들이 뉴라이트라는 흐름이 생겨나기 이전에 이미 만들어진 논문들이기 때문에, 최근 뉴라이트의 흐름과는 상관없다고 볼 수 있다”라는 의견을 보였다.

'1950년대 후반 미국의 대한 정책'을 재수록한 이철순 부산대 교수는 기본적으로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나온지 오래된 시점에서 당시를 조명할 새로운 책이 필요했고,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은 그런 시점에 나온 책 정도로 평가되는 게 맞다라는 의견을 줬다. “책에 논문을 실을 때 뉴라이트와 관련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당시 뉴라이트라든지,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비판한다든지 등의 정확한 이야기는 없었다”라며 “새롭게 나온 사료에 입각해서 담담하게 쓴 논문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전체적으로 필자들은 “새롭게 발굴된 사료로 논문을 쓰면 자연스럽게 과거에 씌어진 논문에 비판적 스탠스를 취하게 되는 것”일 뿐 이 책이 전혀 과열될 필요가 없는 책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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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오다가다 2006-02-20 13:35:57
언론 보도와 책 사이의 관계에 대해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음모론적으로 얘기 하는게 교수신문이란 언론의 올바른 태도인가요?
사실에 근거한 보도와 주관적 추측 보도 사이의 구분도 제대로 못하는게 무슨 언론입니까?
그리고 책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시하는 것도 아니고 도매급으로 매도하니 기자가 책을 진짜로 읽었는지 의심스럽다는 것이지요.
그래도 교수신문이면 뭔가 좀 달라야지 이래서야 되겠어요.
당신들이 비판하는 보수 언론과 뭐가 다르다는 말인가요?
제발 반성하고, 앞으로는 기성언론에 부하뇌동해 신속보도 하려고 하지말고 늦더라도 책을 꼼꼼히 읽고 기사 쓰기 바라오.
제발 부탁하외다.

윗글...참.. 2006-02-15 15:37:07
친일이라는 논점 자체를 무화시키려는 글들이 상당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는지요....이영훈교수나 김철교수의 글을 읽어보기 바랍니다... 과도한 민족주의편향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식민지의 역사에서 민족문제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서술하고, 그것을 새로운 역사인식의 방향으로까지 확장시키는 그 의도..그걸 뭘로 얘기해야 하겠습니까?

게다가 개별논문들의 논지는 뉴라이트와 전혀 상관없는 혹은 대립적인 경우도 있습니다..그런데, 마치 그 책의 모든 필자를 뉴라이트적 역사연구의 파이오니어 식으로 만드는 언론의 이데올로기전략은 또 뭐라 평가해야 할것인가요? (아마 편저자들은 그걸 노렸는지도 모르겠지만) 진지한 연구자를 무슨 우익의 치어리더로 만드는 이런 작태, 이건 일종의 연구자에 대한 모독입니다.. 더한 말 들어도 싸다고 생각되네요..

오다가다 2006-02-14 15:38:55
이 기사 쓴 기자가 책을 읽고 자신의 판단이 선 후 이 기사를 쓰는지 의심스럽다.
만약 그렇다면 백일이라는 자의 발언을 학자의 발언으로 인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명색이 교수신문이면서 언제까지 기사를 이렇게 쓸 것인지, 참 한심하면서도 우려스럽다.
정신차리기 바란다.
교수신문 값을 좀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