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21:30 (금)
북한문학의 멘탈리티 규명…단선적 가설 아쉬워
북한문학의 멘탈리티 규명…단선적 가설 아쉬워
  • 유임하 건국대
  • 승인 2006.01.3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평:『이야기된 역사』(신형기 지음, 삼인 刊, 2005)

자신의 학문적 관심과 직결된 저술과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즐겁고 긴장된 일이다. 이번에 간행된 '이야기된 역사'(신형기, 삼인, 2005)가 그런 예이다. 남북한 사회의 민족 이야기를 비판적으로 검토해온 저자의 노력이, 이번 저작에서는 그 외연을 넓혀, 현실 정치의 영역에까지 다다른 점이 눈에 띤다.

책에서 관심 있게 읽은 부분은 주로 제1부와 2부에 실린 글이었다. 4.19혁명의 담론의 구조가 개발독재 체제의 <용해-귀속의 메커니즘>과 그리 차이나지 않는다는 견해('용해와 귀속의 역사를 돌아보며')는, 민족을 이야기하는 형식이 문화정치학의 관점에서 보면 국가 이데올로기 장치에 귀속됨을 말해준다. 영화 '효자동 이발사'를 통해서 박정희 시대를 회상하는 저자의 논의 또한 국가/일상의 아버지에 대한 정밀한 독해의 미덕을 보여주고 있으며('두 아버지의 우화'), 황석영의 '장길산'에 나타난 민중사가 숭고한 재미와 도덕의 정치학을 내장하고 있다는 주장도 흥미롭다('민중 이야기와 도덕의 정치학').

그러나 책의 핵심은 북한에서 지속된 민족이야기의 역사와 문법을 해명하는 데 있어 보인다. ‘조미대결’의 오랜 반목과 체제결속의 역사, 문화주권의 문제, 해방 직후의 과거 청산, 새로운 인간상의 등장, 주체사상과 고립주의 등등, 북한의 민족 이야기는 핵문제처럼 체제 내부의 문제만이 아니라 동북아 국제정세와도 밀접하게 관련된 사안들이다. 저자는 북한체제의 자세와 태도가 지닌 현실적 무게를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북한의 민족 이야기에 주목해야만 한다는 입장이다. 현실정치와 국제 정치학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태도와 언급의 구조>(레이먼드 윌리엄즈)는 북한의 민족 이야기에서 만들어진 권위와 반복성에서 형성된 것이라는 게 저자의 일관된 견해이다. 저자는 북한에서 되풀이해온 민족 이야기가 김일성 항일무장투쟁의 절대화와 함께 개인들을 용해하고 국가 안에 귀속시켜 일체화함으로써 다양성과 유연성을 상실한 결과 오늘의 위기에 봉착했다고 본다.

저자가 보여주는 문제의식은, 북한의 민족 이야기의 반복성을 국가의 미적 기획과 전유라는 근대성 일반의 문제로 풀어내는 탈근대적 관점에 속해 있다. 미학 중심주의와 거리를 둔 저자의 태도는 학제적 연구의 가능성을 실천하고 개방하는 셈이다. 강단비평이 견지해온 텍스트 중심주의를 벗어난 입론의 개성과 과단성이 발휘되는 부분은 이야기 현상을 매개로 삼아 역사, 문학, 정치, 예술 영역에 걸친 민족이야기의 일체화, 은폐가 이루어지는 균열의 지점들에 관한 논의이다.

그러나 이 책에 대한 불만도 없지 않다. 그 하나는 저작을 관통하는 중심 가설의 하나인 <용해와 귀속의 메커니즘>이 가진 일반화 문제이다. 이 가설이 남북한 사회 모두에 고루 작동했다는 것은 지나친 일반화가 아닐까. 남북한의 체제경쟁이라는 구도 안에서 <용해-귀속의 메커니즘>이 정당화되고 국가, 인종, 계급에 두루 적용되면서 반복되는 인상을 준다.

저자의 논지는 남북 문학이 가진 고유한 맥락, 서로 경합해온 민족 이야기의 복합성과 계통성에 대한 설명을 생략한 채, 남북한의 문학 예술이 가진 유사성만을 다루면서 논의의 폭을 좁히면서 가설을 일반화하는 데 주력한다. 민족 이야기가 <(민족이라는 공동체로) 일체화하는 용해와 (근대 국민국가로의) 귀속이라는 프로젝트>라는 것은 충분히 수긍되는 것이지만, 북한사회의 단선성과는 달리 남한사회의 경우 대단히 다채롭다.

우선 민족 이야기의 독법 역시 근대와 반근대, 탈근대와 후기근대의 서로 다른 위치의 다양성을 가질 여지가 충분하다. 이를 감안하면 국가의 동원체제로 귀속되지 않는 잉여의 지점 또한 상존하는 셈이다. 국가의 민족 이야기에서 누락되었거나 부재하는 것들, 억압당한 것들의 귀환은 민족이야기의 안에서는 부재한다. 이렇게 서로 경합하는 민족 이야기의 여러 층위와 다른 맥락들은 이데올로기 국가장치에 호명된 주체라는 단선적 맥락만으로는 포착되지 않는다.

식민지 시기로까지 소급시키거나, 아니면 90년대까지 연신(延伸)시켜 비판적으로 증명하려는 저자의 의욕은 역사 바깥에 놓인 타자들의 이야기나 민족의 지배적인 이야기 안에 부재하는 것들을 자주 놓치거나 강제의 규율이 남북한 문학에 관철된 것을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다. 간과된 것들에 대한 해명이 가설을 보완하는 하나의 방향이라면, 이데올로기 규율의 관철이라는 전제는 논의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이 전제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의 유사성 때문에 자주 주체와 글쓰기 행위를 노예적 상태로 상정하는 예단을 불러들일 수 있다. 예단의 결과, 북한의 민족 이야기가 남한의 민중 이야기의 특징과 그다지 변별되지 않는 경우도 생겨난다.

그러나 저자가 상정한 민족 이야기에 대한 비판적 독법이 북한문학의 멘탈리티를 해명하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 만큼 저자가 지향하는 <이야기의 역사학>의 품목으로는 국가 기획의 차원에서 거론된 민족 이야기의 비판적 독해만이 아니라, 민족을 두고 경합해온 다양한 이야기들의 계통성을 확인하는 작업, 민족 이야기에서 부재하는 것들의 관심과 세심한 복원도 기대해 본다.

유임하 / 건국대·국문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