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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평가시스템’ 도입할 것 … “기초학문지원예산 5천억으로 증액”
'책임평가시스템’ 도입할 것 … “기초학문지원예산 5천억으로 증액”
  • 신정민 기자
  • 승인 2006.01.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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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허상만 한국학술진흥재단 신임 이사장

지난 12월 말 오랫동안 공석이었던 학술진흥재단 이사장에 허상만 前 순천대 총장이 취임했다. 허 이사장은 올 1월까지 농림부장관을 지내는 등 교육계와 관계를 두루 거친 폭넓은 경력을 지녔다. 대학에 대한 깊은 이해와 폭넓은 안목, 그리고 고도의 정책적 협상력이 기대된다. 허 이사장을 직접 만나 앞으로 어떻게 학진을 이끌고 나갈 것인지, 기초학문에 대한 정책, 연구심사의 공정성과 연구비 관리 등 핵심적 사안 등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지 들어 보았다.

●대담 : 최영진 교수신문 주간 ●일시 : 2006년 1월 4일 오후 2시 ●장소 : 학술진흥재단 이사장실 ●정리 : 신정민 기자 jms@kyosu.net

 

▲허상만 이사장 ©
△총장, 장관을 역임했기 때문에 학계의 기대가 크다. 학진에 새로운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학술진흥의 중추기관을 맡아 부담감이 적지 않다. 세계적 수준의 종합학술기관으로 도약하고 세계 10위권의 기초연구역량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갈 길이 바쁘다. 지금껏 학진은 연구지원만을 담당하는 기관의 인상이 강했는데, 앞으로는 학술정책의 방향을 수립하고, 연구방향을 선도하는 역할을 적극 모색하려고 한다. 지난해 신설된 학술혁신평가실을 예로 들 수 있다. 학술정책수립 및 방안을 추진하는 기구로 학술정책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정책 세미나를 개최해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학계가 저희 학술진흥재단에 대해 무엇을 기대하는지 잘 알고 있다. 다양성을 어떻게 조화시켜 그 기대에 부응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며 지혜를 모아 나아갈 것이다.”

△신년사에서 철저한 내부혁신으로 분권형 조직 개편을 강조했는데, 변화의 틀이나 방향은 무엇인가.
“학진의 분권형 조직 개편의 궁극적 목적은 임직원의 혁신성과 창조성, 리더십을 갖춘 ‘전문성 강화’이다. 이는 고객을 정점에 두고 조직을 전문화된 기능으로 운영하여 효율성과 생산성이 향상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철저한 내부혁신을 통해 분권형 체제로 바꿔 팀 프로젝트 체제에서 일을 하는 조직을 만들 것이다. 지난 2005년에는 ‘인문사회지원단’과 ‘기초과학지원단’을 나눠 투자 우선  순위에서 밀려나기 쉬운 기초학문에 대해서는 학진이 책임지겠다는 철학을 분명히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현재 외부 컨설팅 업체에서 경영진단 중이므로 이를 참고하여 세계적 표준(Global Standard)이 될 수 있는 전문가 조직으로 거듭나려고 한다.”
△학진에는 현재 기초 연구, 신진 교수 연구, 중점 연구소 지원, 학술단체 지원 등 많은 연구지원 프로그램이 있다. 이 중 학진이 강조하고 중심으로 삼아야 할 지원 프로그램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학진 연구지원 프로그램의 큰 특징은 기초학문 육성과 연구자의 생애 주기에 맞춘 프로그램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우선 학문후속세대를 양성하는 것에 대한 지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석·박사과정의 인적 자원이 풍부해야 학문의 저변 확대와 지속적 발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이 신진 연구자들의 연구이다. 연구라는 것이 박사 학위 취득 후 4~5년간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 다음이 기초연구 분야에서 석학을 육성하기 위한 지원이다. 연구 역량이 잘 다져진 우수한 연구자들이 세계적인 연구자로 거듭날 수 있도록 계속적인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크게 이 세 가지 지원 프로그램을 잘 연결시켜 유기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진의 활동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견해도 많지만 연구지원 선정 심사의 공정성에 대한 문제제기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객관성과 투명성은 어느 정도 확보됐는데, 문제는 전문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라고 본다. 이를 위해서 전문위원이 자기 책임 하에 심사를 하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책임평가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각 분야 비상근 전문위원 42명을 2백명으로 늘려 패널을 세분화하여 많은 교수들이 심사자로 참여할 수 있게 할 생각이다. 심사 기준도 사업과 학문적 특성에 따라 차별화가 필요하다. 자연과학은 계량적으로 잘 되어 있는데, 인문학은 계량적인 지표만 가지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차별화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의 연구 경쟁력이 세계 13위라면 심사 기준도 이에 걸맞게 세계적인 수준이 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심사결과와 심사위원을 공개한다는 것인가.
“현재에도 심사위원이 작성한 평가서의 내용은 신청자에게 공개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평가 내용을 보다 정밀하고 세부적으로 작성하게 하여 신청자의 향후 연구 방향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또한 한 해 동안 재단 각 프로그램에 참여한 심사자들에 대해 일괄 공개하고 있지만 개인적 생각으로는 각 사업 종료 후에 각 과제별 심사자를 공개해도 될 정도의 우리 학술 문화 수준은 도달했다고 본다. 심사자 공개 여부는 좀더 검토해 보도록 하겠다.”

△등재학술지 게재 편수만으로 평가하는 것에 대한 학계의 불만이 비등해있다. 이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가.
“일정한 기준은 불가피하다. 국내 연구 수준을 끌어 올리기 위해서도 일정한 정량적 기준을 제시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하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등재 학술지 게재로만 평가하기엔 무리가 있다.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실제적인 학술지의 질적 평가의 기준이 되고 있는 학술지 게재 논문의 인용지수를 평가 항목화하기 위한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

△등재 학술지 게재의 가중치를 낮추고 정성적 평가를 늘려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게 할 필요가 있다. 학진의 KCI(국내학술지인용색인정보)가 잘 추진된다면 인용지수 평가의 토대가 마련될 듯하다.
“여기저기서 KCI를 빨리 추진하라는 요구가 있다.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1단계 입력이 마무리 되었으나, 논문의 질적 평가가 시급하므로 독려할 것이다. 일부 학계의 서로 인용해주기 관행 등을 고려해서 상호교차 인용, 자기 논문 인용 등을 점검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가고 있다.”

△ 일부 소수의 교수가 연구비를 유용하고 논문을 표절하는 것, 창의성 없는 연구에 대한 제재 조치가 필요하다. 현재 학진에 방지 제도가 있긴 하지만 효과적 작용은 안하다는 지적이 있다.
“이 문제는 대학과 연구자가 좀더 책임져야 할 몫이다. 예로 연구비 중앙관리제만 잘 지켜 주면 된다. 대학 실험실의 제자들을 운용하려면 규정대로 할 수 없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수용비, 인건비, 기자재 구입 등 문제가 생기고 있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는 연구 책임자에 대해 연구비 집행 재량권을 더 줘야 한다고 본다. 현재 학진이 간접경비로 15% 책정하고 있는 것은 너무 적다. 그리고 교수들이 연구비 정산과 행정적 처리를 다 하고 있는데, 대학이 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시범 운영 중인 인건비 풀링제를 통해 인건비를 대학이 일괄 관리하는 것도 개선안이 될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연구비 운용의 자율성을 주면서도 사회적 문제가 안 생기도록 고려해야 한다. 우선적으로 실행 가능한 제도를 제·개정하도록 하고, 이 제도가 제대로 지켜질 수 있도록 지도·감독해 나갈 것이다. ”
△학술진흥에서 교육부는 정책, 학진은 실무 등으로 나뉘어 있다. 학계 입장에서는 학진이 자율성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해나가야 한다는 기대도 많다.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온 문제다. 앞으로 학진이 정부 연구정책 방향에 참여하는 게 아니라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한다. 미국 NSF(미국국가과학재단)는 기초연구지원의 메카가 되었고, 기초 학문, 기초연구만 지원하겠다는 뚝심으로 60년을 버텨왔기 때문에 미국 대학 경쟁력이 세계적 수준이 되었다고 본다. 세계 1백대 대학 중에 50%가 미국이다. 우리는 서울대가 93위인데, 내가 볼 때 우리나라 대학이 1백위 안에 10개는 들어가고, 50위 안에 그 중 5개는 들어갈 정도의 인적 자원의 경쟁력은 가졌다고 본다. 학진은 대학이 우리나라 연구 방향을 끌고 수행해 나가는데, 적극적 대화의 상대가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 독립기구인 미국 NSF처럼 여러 조건이 갖춰져야 할 필요는 분명히 있다.”

△자율적 기관으로 가려면 제도적 틀 안에서 독립성 보장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아직 그런 부분까지 말하긴 곤란하다. 우리 학진이 몇 년간만 열심히 하면 먼저 학계로부터 신뢰를 얻을 것이다. 학진은 대학과 연구자 편에 서서 일한다는 믿음을 가져 달라. 2005년 기준으로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 중 기초연구 예산이 1조 5천억 정도이다. 그런데 대학의 기초 연구를 책임지고 있는 학진의 학술연구비 예산은 20%에 불과한 3천억이다. 당장은 어렵더라도 5천억원은 되어야 꼭 해야할 연구를 연구비가 없어 못하는 연구자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기초학문 지원예산을 5천억원으로 증액시키겠다.”

△정부 예산 구조상 3천억에서 5천억으로 올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되는데…. 
“많은 교수님들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교수를 중심으로 한 네트워크가 정부의 예산 관련 부처, 국회 등에 연결되어 학진 연구비 증액에 대한 당위성과 절실함을 밀어 줄 수 있어야 한다. 결국 모든 功은 학진이 아니라 연구자에게 돌아갈 것이 아닌가.” 
△ 학계에서는 풍부한 교육연구 경력과 행정부 고위 경력에 대한 기대도 있지만, 참여정부의 코드인사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앞으로 학진의 활동이 이런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린다.
 
□약력 : 1943년 전라남도 순천 출생. 전남대에서 잡초 생태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2년부터 순천대 교수로 재직해 오면서 1994년 순천 경실련 공동대표,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순천대 총장, 2003년부터 2005년 1월까지 농림부 장관을 역임했다. 1987년 대한교육연합회 교육공로 표창, 1994년 교육부 장관 표창, 2001년 제 20회 스승의 날 근정포장, 2005년 청조근정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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