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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루덴스] 시를 읽는 수학자, 김태화 부경대 교수
[호모루덴스] 시를 읽는 수학자, 김태화 부경대 교수
  • 이옥진 기자
  • 승인 2001.07.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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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7-11 11:33:37

30년 동안 하루 30분을 꼬박꼬박 투자하면 어림잡아 5천시간 이상이 된다. 김태화 부경대 교수(수리과학부)는 李想의 시에 ‘이상’하리만치 푹 빠진 열혈독자다. 나이 50을 바라보는 김 교수가 대학 초년생 무렵부터 읽기 시작한 이상의 시들은 지금까지도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그는 매일같이 거르지 않고 30분 이상을 이상의 시를 읽는 것이다. 문학청년이었던 대학생 시절, 그는 70년대 초에 창간된 잡지 ‘문학사상’에 특집으로 연재된 이상 관련 글들을 스크랩까지 해가며 탐독했단다. 이후로 김 교수는 이상과 관계된 거의 모든 자료들을 모으고 또 읽었다고 한다. 실상 젊은 나이의 ‘치기’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수학자로 자리잡은 지금까지도 그 ‘열혈’이 식지 않았다는 것이다.

범상한 눈으로 보면 수학과 시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논리와 서정을 이어붙이기는 힘들지 않은가. 그러나 김 교수는 시야말로 수학과 공유하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생각의 전개나 심리의 흐름을 섬세하게 포착해내 것이야말로 수학자가 지녀야할 미덕이기 때문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오히려 수학이야말로 시다.

“실상 제가 만난 수학자들은 수학책을 거의 보지 않아요. 수학책 속에 있는 수학은 이미 낡은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독창적이고 새로운 수학은 오히려 문학작품 속에 들어있습니다.” 김 교수는 나아가 시를 통해 생각과 정신이 맑아진다며 시정화론을 편다.

최근 김 교수는 이상의 ‘건축무한육면각체’를 해석해 강연을 가졌다. “건축기사였던 이상이 쓴 시들은 마치 건축도면을 그리듯 이미지화할 수 있습니다. 작가의 ‘의식의 흐름’이 시적 언어를 통해서 이미지화 된 것이지요.” 설계도면 안의 이미지가 바깥 현실을 물고 들어가듯이, 이상의 시는 ‘어떻게 밖으로 나갈까’를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견해다.

김 교수는 프로이트 심리학, 불교의 윤회론 등을 이용해 시를 해석해왔다. 하지만 그의 결론은 ‘분해’보다는 ‘이미지화’로 옮아왔다. 제자들에게 시읽기를 권하고 이야기를 풀어놓으면서 다다른 결론이다. 난해한 시에 어떻게 쉽게 접근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은, 학생들로 하여금 수학의 참맛을 느끼게 하려는 노력과도 통한다. 김 교수는 요즘 이상의 시를 그림으로 그려내려는 욕심을 품고 있고, 30년간 쌓인 생각의 뭉치를 책으로 묶어낼 계획도 있다고 한다. 이옥진 기자 zo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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