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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단상-과학자에겐 조국이 있다?
‘황우석’ 단상-과학자에겐 조국이 있다?
  • 천태영 충북대
  • 승인 2005.12.27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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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가 말하는 한국 과학연구의 문제점


▲천태영 박사 ©

천태영 박사 (충북대·생물학)


‘과학은 국경이 없으나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고 적혀있는 황우석 교수 포스터가 아직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여러 가지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어 그 앞을 지나가면서 씁쓸한 웃음을 짓게 한다.


우선 이번 황 교수의 ‘클론 스캔들(Clone scandal)’을 접하면서 느낄 수 있었던 과학 國粹主義 또는 愛國主義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반 만 년 유구한 역사를 지내오며 열강의 외세에 침략과 간섭을 많이 받아온 우리 민족으로서는 자연스럽게 머릿속이나 가슴에 떳떳하게 ‘우리 것’을 늘 자랑스럽게 여겨왔다. 황 교수도 이를 바탕으로 매번 기자회견 때마다 배아줄기세포의 원천기술은 우리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로 인해서 나타난 부작용은 연구 성과를 빨리 발표해서 세계 정상에 우뚝 서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심각했다. 아마도 우리는 과학자가 되면 반드시 큰 인물이 되어야 한다는 교육을 어려서부터 너무 많이 받아서 그런가 보다.

우리의 현재 사회가 워낙 경쟁적이다 보니 과학계에서도 당연히 경쟁체제에 임하는 자세가 남다르다고 볼 수 있다. 연구실은 작은 전쟁터의 축소판이라고 표현하면 좋을 듯싶다. 그래서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세계최초’라는 수식어를 좋아한다. 언론에서도 제일 많이 선호하는 편집용 제목이다. ‘월화수목금금금’도 좋아한다. 휴일도 없다. 일요일 연구원들의 개인적인 종교생활조차도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는 책임자들도 많단다.

듣자하니 이번 황 교수 사태가 일어난 후 어느 학과 어느 연구실에서 일하고 있는 대학원생들에게 지도교수의 지시사항을 잘 따르겠다는 ‘각서’를 받았다는 소속 연구원의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이제는 지도교수의 말을 안 듣는다면 민사소송 법적대응이라도 불사하겠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진정한 사제관계는 사라진 것일까. 이러한 모든 것들이 그럴 듯한 결과를 서둘러 발표하고 연구업적을 올리기 위한 기초 작업이라면 우리의 연구원들은 자기의 사생활도 제대로 누릴 수 없는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와 다를 바 없다고 본다.

또 한 가지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지나가는 것이 있다. 학문에는 높고 낮은 우열이 없다고 학창시절에 배운 것 같은데 막상 실무에 접해보니 연구비 지원의 높고 낮음은 존재하고 있었다. 이번 황 교수 사태에서 보듯이 정치적으로 로비를 잘 한 연구에는 수백억에서 수천억 연구비 지원이 현실화 되지만 정말로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살려야하는 순수기초과학 분야의 연구비 지원은 시약 사다가 볼 일 다 끝나는 연구비다. 물가는 오르는데 연구비 책정은 변함이 없다. 어느 교수님은 개인 돈 털어서 시약 사고 연구원들 지원했다고 한다. 기초과학분야에 인력도 부족하고 지원도 부족하고 졸업 후 진로도 불투명하고 이런 모든 요인들이 우리의 과학 문화를 선진국으로 발전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후진국으로 후퇴시키는 모양을 갖추고 있는 형상이다.

학문은 학문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다. 단지 연구 분야에 따라 결과가 한 달에 두 세 개 씩 나오는 것이 있고, 일 년 내내 실험해도 겨우 결과 하나 밖에 안 나오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연구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원의 업적평가에서는 SCI급 논문편수를 많이 헤아리는 우를 범하고 있다. 누가 더 많이 썼는지 경쟁 아닌 경쟁을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한 논문에 25명씩 이름 다 오르고 선·후배 찾아다니며 서로 이름 넣어주기 행태가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정말로 비현실적인 내용의 평가방법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시급히 검토해봐야 할 부분이다. 아직도 남들이 알아주지도 않는 연구 분야에서 말없이 묵묵히 자신의 연구를 진행하고 계시는 교수님들이 더 많다는 사실에 우리는 희망을 가져야 하겠다.

각종 과학강연회나 대학부설 영재교육원 프로그램에서 강연하다 보면 순수과학 분야에 큰 뜻을 품은 학생보다는 의대나 한의대 진학을 위한 학생이 훨씬 많음을 볼 때 우리의 과학정책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과학고의 진학목적이 의대진학이란다. 하다못해 지방 국립대 의대라도 진학하는 것이 목적인 셈이다. 우리의 과학미래라고 할 수 있는 청소년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한 우리나라의 과학은 기형적인 발전을 할 수 밖에 없다고 본다. 물론 개인적인 소명이 있어서 택한 학생들도 있겠지만 대부분 부모들의 대리만족에 해당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을 보면 시급히 대안이 나와야 할 부분이다.

과학자에 대한 처우도 우리의 과학인적자원을 구성하는데 중요한 요인이 된다. 사실 정부산하 연구직 공무원 숫자만 해도 그렇다. 충분한 인력을 갖추고 연구 활동을 할 수 있는 숫자는 아니다. 연구직 공무원들이 연구 활동 보다는 행정업무가 더 많다. 국정감사기간에는 모두 연구실에 앉아서 관련 서류 만드느라 시간을 다 소비한단다. 해외에 거주하고 계신 가까운 지인 중에서도 그분의 기술력이 탁월하여 정부 어느 부처에서 파격적인 조건으로 연구직 공무원 직책을 제시하고 TV뉴스와 방송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소개하면서 영입하려 했지만 끝내 귀국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유는 단 하나. 국내에서는 자유로운 연구 활동 보장이 안 되기 때문 이란다.

서두에 소개했던 글을 다시 한 번 더 생각해본다.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는 말이 계속 눈에 밟힌다. 바꿔 말하면 국내 유능한 과학 인력이 해외로 빠져 나가는 일이 많다고 해석할 수 있다. 사실 그렇다. 이공계과학자에 대한 대우가 해외선진국들과 비교했을 때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 파격적인 국내에서의 대우가 아니면 모두들 해외에서 연구원 생활을 선호하는 경향이다. 그러다가 아예 영주권 또는 시민권까지 신청해서 다시는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지 않는 과학자들도 꽤 많다. 연구원들이 해외로 나가지 않을 만큼 처우개선을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분명히 보장되지 않는 한 우리의 연구인력 누수현상은 강 건너 불 보듯 확실하다.

과학문화의 대중화를 위해서 모두들 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다. 이공계도 활성화 시켜보고 다시 한 번 우리의 과학기술이 살아나서 국가 경제도 살려서 당당하게 세계 속의 한국을 보여보고 싶은 심정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우선 전문가들만 가입하는 학회에 일반인들도 자유롭게 가입하여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만 한다. 학생들도 초·중·고 대학생 가릴 것 없이 자기가 관심 있는 연구 분야 학회에 회원으로 가입해서 함께 정보를 공유하는 기회가 앞으로 많아져야 할 것이다.

끝으로 과학자들 역시 철학(Philosophy)을 함께 공부해야 한다. 자기가 왜 무엇 때문에 연구실에서 아까운 젊은 시절을 희생해 가며 연구하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연구목표가 성립되어 자신의 가치관을 성립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아울러 윤리문제도 깊숙이 고려해 볼 수 있어서 연구과정에 제기될 수 있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연구의 방향을 잡을 수 있게 해준다. 무엇보다도 과학자 개인의 학문적 완성도를 높이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믿고 있다.

결론적으로 기형적인 발전을 하고 있는 현재의 우리 과학문화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다른 분들은 우리나라에 과학문화가 있냐고 묻는 분들도 계신다. 아예 과학문화가 없다고들 말하고 있다. 이번 황 교수의 ‘클론 스캔들’을 계기로 하루 속히 과학정책들을 재검토하여 새롭게 수립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젊은 과학도들의 열려있는 정보공유를 통해 황 교수 논문의 문제점들이 낱낱이 밝혀졌듯이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수립이기 보다는 과학자들의 충분한 토론을 통해서 정책이 결정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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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희 2005-12-28 14:34:39
이번 황우석교수 파문이 있기 전까지는 잘하는 사람을 깍아내려 영웅을 만들지 못하는 우리나라 사회풍토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기회로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니 아무런 비판없는 무조건적인 영웅만들기 또한 매우 위험한 일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과학(학문)하는 사람에게 철학공부가 필요하다는 천박사님의 의견에 크게 동감합니다. 안그러면 진정으로 인류복지를 위한 학문이 아닌 얄팍한 손가락끝의 테크닉 배양에만 치중, 그것을 무기로 자신의 명예만을 추구하는 길로 나아가기 쉬울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