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영 박사 © |
천태영 박사 (충북대·생물학)
‘과학은 국경이 없으나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고 적혀있는 황우석 교수 포스터가 아직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여러 가지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어 그 앞을 지나가면서 씁쓸한 웃음을 짓게 한다.
우선 이번 황 교수의 ‘클론 스캔들(Clone scandal)’을 접하면서 느낄 수 있었던 과학 國粹主義 또는 愛國主義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반 만 년 유구한 역사를 지내오며 열강의 외세에 침략과 간섭을 많이 받아온 우리 민족으로서는 자연스럽게 머릿속이나 가슴에 떳떳하게 ‘우리 것’을 늘 자랑스럽게 여겨왔다. 황 교수도 이를 바탕으로 매번 기자회견 때마다 배아줄기세포의 원천기술은 우리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로 인해서 나타난 부작용은 연구 성과를 빨리 발표해서 세계 정상에 우뚝 서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심각했다. 아마도 우리는 과학자가 되면 반드시 큰 인물이 되어야 한다는 교육을 어려서부터 너무 많이 받아서 그런가 보다.
우리의 현재 사회가 워낙 경쟁적이다 보니 과학계에서도 당연히 경쟁체제에 임하는 자세가 남다르다고 볼 수 있다. 연구실은 작은 전쟁터의 축소판이라고 표현하면 좋을 듯싶다. 그래서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세계최초’라는 수식어를 좋아한다. 언론에서도 제일 많이 선호하는 편집용 제목이다. ‘월화수목금금금’도 좋아한다. 휴일도 없다. 일요일 연구원들의 개인적인 종교생활조차도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는 책임자들도 많단다.
듣자하니 이번 황 교수 사태가 일어난 후 어느 학과 어느 연구실에서 일하고 있는 대학원생들에게 지도교수의 지시사항을 잘 따르겠다는 ‘각서’를 받았다는 소속 연구원의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이제는 지도교수의 말을 안 듣는다면 민사소송 법적대응이라도 불사하겠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진정한 사제관계는 사라진 것일까. 이러한 모든 것들이 그럴 듯한 결과를 서둘러 발표하고 연구업적을 올리기 위한 기초 작업이라면 우리의 연구원들은 자기의 사생활도 제대로 누릴 수 없는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와 다를 바 없다고 본다.
또 한 가지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지나가는 것이 있다. 학문에는 높고 낮은 우열이 없다고 학창시절에 배운 것 같은데 막상 실무에 접해보니 연구비 지원의 높고 낮음은 존재하고 있었다. 이번 황 교수 사태에서 보듯이 정치적으로 로비를 잘 한 연구에는 수백억에서 수천억 연구비 지원이 현실화 되지만 정말로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살려야하는 순수기초과학 분야의 연구비 지원은 시약 사다가 볼 일 다 끝나는 연구비다. 물가는 오르는데 연구비 책정은 변함이 없다. 어느 교수님은 개인 돈 털어서 시약 사고 연구원들 지원했다고 한다. 기초과학분야에 인력도 부족하고 지원도 부족하고 졸업 후 진로도 불투명하고 이런 모든 요인들이 우리의 과학 문화를 선진국으로 발전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후진국으로 후퇴시키는 모양을 갖추고 있는 형상이다.
학문은 학문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다. 단지 연구 분야에 따라 결과가 한 달에 두 세 개 씩 나오는 것이 있고, 일 년 내내 실험해도 겨우 결과 하나 밖에 안 나오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연구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원의 업적평가에서는 SCI급 논문편수를 많이 헤아리는 우를 범하고 있다. 누가 더 많이 썼는지 경쟁 아닌 경쟁을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한 논문에 25명씩 이름 다 오르고 선·후배 찾아다니며 서로 이름 넣어주기 행태가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정말로 비현실적인 내용의 평가방법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시급히 검토해봐야 할 부분이다. 아직도 남들이 알아주지도 않는 연구 분야에서 말없이 묵묵히 자신의 연구를 진행하고 계시는 교수님들이 더 많다는 사실에 우리는 희망을 가져야 하겠다.
각종 과학강연회나 대학부설 영재교육원 프로그램에서 강연하다 보면 순수과학 분야에 큰 뜻을 품은 학생보다는 의대나 한의대 진학을 위한 학생이 훨씬 많음을 볼 때 우리의 과학정책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과학고의 진학목적이 의대진학이란다. 하다못해 지방 국립대 의대라도 진학하는 것이 목적인 셈이다. 우리의 과학미래라고 할 수 있는 청소년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한 우리나라의 과학은 기형적인 발전을 할 수 밖에 없다고 본다. 물론 개인적인 소명이 있어서 택한 학생들도 있겠지만 대부분 부모들의 대리만족에 해당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을 보면 시급히 대안이 나와야 할 부분이다.
과학자에 대한 처우도 우리의 과학인적자원을 구성하는데 중요한 요인이 된다. 사실 정부산하 연구직 공무원 숫자만 해도 그렇다. 충분한 인력을 갖추고 연구 활동을 할 수 있는 숫자는 아니다. 연구직 공무원들이 연구 활동 보다는 행정업무가 더 많다. 국정감사기간에는 모두 연구실에 앉아서 관련 서류 만드느라 시간을 다 소비한단다. 해외에 거주하고 계신 가까운 지인 중에서도 그분의 기술력이 탁월하여 정부 어느 부처에서 파격적인 조건으로 연구직 공무원 직책을 제시하고 TV뉴스와 방송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소개하면서 영입하려 했지만 끝내 귀국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유는 단 하나. 국내에서는 자유로운 연구 활동 보장이 안 되기 때문 이란다.
서두에 소개했던 글을 다시 한 번 더 생각해본다.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는 말이 계속 눈에 밟힌다. 바꿔 말하면 국내 유능한 과학 인력이 해외로 빠져 나가는 일이 많다고 해석할 수 있다. 사실 그렇다. 이공계과학자에 대한 대우가 해외선진국들과 비교했을 때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 파격적인 국내에서의 대우가 아니면 모두들 해외에서 연구원 생활을 선호하는 경향이다. 그러다가 아예 영주권 또는 시민권까지 신청해서 다시는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지 않는 과학자들도 꽤 많다. 연구원들이 해외로 나가지 않을 만큼 처우개선을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분명히 보장되지 않는 한 우리의 연구인력 누수현상은 강 건너 불 보듯 확실하다.
과학문화의 대중화를 위해서 모두들 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다. 이공계도 활성화 시켜보고 다시 한 번 우리의 과학기술이 살아나서 국가 경제도 살려서 당당하게 세계 속의 한국을 보여보고 싶은 심정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우선 전문가들만 가입하는 학회에 일반인들도 자유롭게 가입하여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만 한다. 학생들도 초·중·고 대학생 가릴 것 없이 자기가 관심 있는 연구 분야 학회에 회원으로 가입해서 함께 정보를 공유하는 기회가 앞으로 많아져야 할 것이다.
끝으로 과학자들 역시 철학(Philosophy)을 함께 공부해야 한다. 자기가 왜 무엇 때문에 연구실에서 아까운 젊은 시절을 희생해 가며 연구하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연구목표가 성립되어 자신의 가치관을 성립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아울러 윤리문제도 깊숙이 고려해 볼 수 있어서 연구과정에 제기될 수 있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연구의 방향을 잡을 수 있게 해준다. 무엇보다도 과학자 개인의 학문적 완성도를 높이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믿고 있다.
결론적으로 기형적인 발전을 하고 있는 현재의 우리 과학문화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다른 분들은 우리나라에 과학문화가 있냐고 묻는 분들도 계신다. 아예 과학문화가 없다고들 말하고 있다. 이번 황 교수의 ‘클론 스캔들’을 계기로 하루 속히 과학정책들을 재검토하여 새롭게 수립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젊은 과학도들의 열려있는 정보공유를 통해 황 교수 논문의 문제점들이 낱낱이 밝혀졌듯이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수립이기 보다는 과학자들의 충분한 토론을 통해서 정책이 결정되기를 기대해본다.
그러나 이를 기회로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니 아무런 비판없는 무조건적인 영웅만들기 또한 매우 위험한 일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과학(학문)하는 사람에게 철학공부가 필요하다는 천박사님의 의견에 크게 동감합니다. 안그러면 진정으로 인류복지를 위한 학문이 아닌 얄팍한 손가락끝의 테크닉 배양에만 치중, 그것을 무기로 자신의 명예만을 추구하는 길로 나아가기 쉬울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