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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퇴직교수의 낡은 강의노트
[단상] 퇴직교수의 낡은 강의노트
  • 교수신문
  • 승인 2001.07.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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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7-11 10:29:10
강월도 / 전 한성대 교수·철학

얼마전 “10년 전 20년 전 노트로 강의하는 교수들은 퇴출되는게 마땅하다”라고 말해 적잖은 파문을 낳은 대통령의 ‘말씀’이 기억난다. 정보매체의 새로운 변화가 일고 있는 오늘의 시점에서 볼 때, 이 ‘퇴출론’이 전혀 근거 없는 말은 아닌 듯하다.

그러나 대학 전통에서는 어느 교수가 ‘낡은 노트’로 강의한다는 말이 부정적이라기보다 애매모호하게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

나는 지난 2월 정년퇴직한 몸으로 이제는 ‘10년 전, 20년 전 노트’로 강의하기 때문에 퇴출될 걱정은 없다. 대학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강의 노트를 학기마다 조금씩 수정하는 방법으로 30여 년 과목마다 ‘노트 북’을 보관하며 강의했다.

강의 노트외에도 나는 내 전공 철학에 있어 대학시절부터 준비한 과목·주제별 ‘노트 북’이 1백여권 있고 그 과목·주제의 강의를 할 기회가 있을 때는 40년, 30년 전 노트를 훑어 보고 참고했다. 이런 식의 노트 사용을 두고 ‘낡은 개념으로 강의한다’는 평가는 부적절하다.

20년 전 또는 10년 전의 노트에 대한 정치적 또는 교육학적인 조건으로 교수들을 퇴출시키기를 경정하기 전에 기억할 것이 있다. “진리는 영원하다”라는 주장이 역사에서 작지 않은 힘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을.

전쟁직후 서울대 문리대에서 강의를 들었는데, 낡은 누런 노트를 낡은 가방에서 꺼내 교단 책상에 올려 놓으시고 몇 장을 읽으시고 별 다른 말이나 첨부하는 설명도 없이 걸어 나가시는 명성 높은 교수님이 기억난다. 그 교수님은 ‘10년 전, 20년 전의 노트’를 읽었으리라 믿으나 알 수 없는 일이다.

정치계에서도 30년 전의 ‘부통령제’가 오늘날 우리가 다시 복원해야 하는 지를 놓고 검토와 연구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것이 30년 전의 제도라는 사실 자체로 우리가 다시 새롭게 읽어볼 수 있는 ‘노트’가 아닌 지는 읽어보고 답할 문제이다.

인류의 사회적 변화는 복잡 다단하게 이뤄져왔다. 현대에 들어서 변화에 대한 우리의 접근 방법은 새로운 측면을 보여주었는데 그것은 변화에 적응하는 또는 변화가 가져온 문제를 해결하는 우리의 방법 자체에 ‘요령의 요령’이라 할 요령을 의식하고, 의도적으로 그런 방법에 의해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신, 제도적 과정을 발전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대의 방법론적 특성은 아직도 더 의식화돼 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많은 문명의 사회에 퍼져 간다는 뜻에서 ‘세계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이 맥락에서 근대 정보 매체의 다양한 세계적 발전(기호성, 투명성, 공정성, 다양성, 합리성 등)은 방법론적 방법의 수용의식화에 공헌하는 현상이라 하겠다.

인터넷과 사이버 기능은 30년 전, 20년 전의 ‘노트’를 그것이 무엇이였던 간에 단순히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매체가 주는 다양성 속에서 새롭게 정리해야 하는 인식의 대상임을 환기시켜준다.

20년 전, 10년 전의 노트로 강의하는 교수들을 도매 가격으로 퇴출시킬 것이 아니라, 대학은 새로운 매체의 다양성 속에서 그들을 계속 수용하는가 하면 그들이 자신들의 20년 전의 노트, 10년 전의 노트를 새롭게 정리할 기회까지도 함께 주어야 한다.

우리는 그날 그날 새롭게 준비한 ‘노트’로 살아갈 것이다. 우리의 새로운 정보 매체들은 우리 노트를 준비하고 쓰고 전달하는 데 아주 편리하게 발전해 가고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가 초고속 인터넷 이용률에서 ‘세계 1등’이라는 보고가 있다. 기뻐하고 자부할 사실이다. 이는 한국 사회가 세계 그 어느 사회 못지 않게 사회 변화에 정보화 물결을 잘 적용해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는 의미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경제적 수익의 장점을 누리면서 동시에 정보화 수용에 잠재한 사회적 문제를 경계해야 한다.

누군가 말했듯, “정보화는 나는데 정치는 기고 있다”는 상황에서 새로운 매체의 영향을 정치적으로, 교육적으로, 정신적으로 건전하게 그리고 성숙하게 수용하지 못하고 매체에 압도되어 새로운 형태의 경제적 낭비, 범죄, 매체 집착, 중독 등의 문제를 껴안게 될 우려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짚고 넘어갈 문제는 우리가 선택한 매체가 그 자체로 우리의 목적과 미래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매체가 우리 미래의 문화를 얼마나 결정적으로 압도하는가를 예측하며 접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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