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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쟁점: 산업혁명은 과연 있었던 것일까?
학술쟁점: 산업혁명은 과연 있었던 것일까?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5.12.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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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영국은 토지귀족의 전성기…"부패 앞에 혁명은 좌초"

최근 영국사연구에서 산업혁명에 대한 재해석 문제가 쟁점으로 부각하고 있다. 19세기 영국사는 그 이전의 시대를 박차고 '이륙'하는 역사의 분수령이었다. 하지만 잘 날던 산업혁명이 이제 비상착륙이라도 해야 할 실정이다.

이영석 광주대 교수(영국사)는 최근 열린 영국사학회 겨울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변화인가 지속인가?: 최근 19세기 영국사 연구동향'이라는 논문을 통해 근대 영국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審問한다.

기존의 관념에서 영국의 19세기는 농업혁명, 산업혁명, 도시화, 노동계급의 형성, 자유주의적 개혁, 대의민주주의 발전, 복지국가의 출현 등의 내용을 담은 최고의 근대화 텍스트이자, 근대사회 발전의 보편적 경로로 인식되었다.

산업혁명은 잘못된 이름이자 '신화'

그러나 오늘날 영국사학계에서 이와 같은 해석에 동조하는 역사가들은 오히려 소수에 지나지 않는는다는 게 이 교수의 주장이다.

근래의 해석들은 영국사회의 발전을 주도한 여러 혁명들을 부정한다. 오히려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변화를 강조하고 있다. 농업혁명에서 생산성의 비약적인 발전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영국만의 특유한 개량도 아니었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산업혁명도 기계와 공장제의 완벽한 승리로 끝나지 않았다고 이야기 된다.

산업혁명은 경제 전반에 걸쳐서 전통적 부문과 근대적 부문이 공존하는 불균등발전의 모습을 나타냈을 뿐이라는 게 최근 수정주의자들의 입장. 이것은 산업혁명기의 국민소득 계정에 정교한 수정을 통해 실증적 입증의 과정을 거치기도 한다. 즉, 그들에 의하면 산업혁명은 '잘못된 이름'이자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계급의 형성 또한 점진적이었고 노동운동 및 그 운동의 이념에서 핵심을 이룬 것은 전세기의 급진적 정치이념의 전통이었다고 이 교수는 말한다.

휘그 정부가 기득권을 유지한 비결은?

무엇보다 최근 영국에서는 19세기까지 영국 정치가 부르주아보다는 전통적 지배세력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고 한다. 귀족적 휘그정부는 자유방임주의 개혁을 통하여 그들의 지배구조를 강화하였고 중간계급 또한 이에 안주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도 정치적 국민에서 배제된 노동계급은 이전에 중간계급이 그러했던 것처럼 공화주의 또는 급진주의 언어의 지배 아래 정치권력의 재분배를 위한 투쟁을 벌였다. 이러한 운동은 일시적으로는 국가의 회유로 멈추어졌지만, 19세기 후반에도 자유주의적 급진주의는 여러 노동운동의 기본적인 담론구조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구세력의 지속은 가능했는가. 이 교수는 최근 수정주의자들이 강조하는 "18세기 초부터 1830년대까지 토지귀족의 정치적 지배를 지탱하는 긴요한 전략은 오랜 부패관행(Old Corruption)"이라는 주장을 소개한다.

이것은 지배층이 보상하거나 영입할 가치가 있는 사람들에게 부조금, 명예직책, 수당 등을 부여하는 관행으로서 토지귀족과 중간계급의 일부를 연결하는 접착제였다. 1832년 의회개혁 이후 이 관행은 사라진다.

한국, 수정주의적 해석 받아들일까 말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전통적 지배세력은 약화되기는커녕 오히려 단일한 지배구조를 강화해 나갔다는 사실이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산업혁명과 더불어 토지귀족은 경제적으로 더욱 더 강력해졌으며, 그 이후 19세기 말까지의 시기는 토지귀족 지배의 절정기였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런 식의 영국사 해석이 현재 영국 학계의 주류적 경향이라고 지적한다. 놀라운 점은 이런 수정주의적 해석의 영향 아래 英 제국주의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가하는 한국의 영국학계의 논문들이다.

그간 제국주의에 대해서는 '성토'하는 게 학계나 대중이나 일반적 정서였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제국주의는 중심부와 주변부의 상호작용의 관계로 보아야 하고 영 제국 자체가 안전보장을 추구하던 과정에서 우연하게 형성된 것이라는 해석이 등장한다. 

제국 팽창의 정치 경제적 맥락보다는 문화적 차원, 즉 영국적 가치의 전파와 문명화의 사명이라는 집단적 망탈리테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제국주의 담론과 문화가 타자로서의 주변부를 왜곡시킨 과정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그것이 중심부에 끼친 영향도 아울러 중시하는 데까지 연결된다. 빅토리아시대에 제국주의가 이른바 남성성의 형성과 변모에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추적한 연구가 이에 해당한다는 게 이 교수의 지적.

중세와 현대로 양분-'근대의 소외'

최근 영국학계는 19세기를 잘 다루지 않는다. 15~6세기나 현대사를 주로 다루는데 비해, 한국의 경우는 아직 19세기사를 많이 다루고 있다. 이 교수의 이번 논문은 이런 경향이 문화론적 접근에 대한 한국 학계의 보수주의적 대응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아직 한국학계는 정통적인 주제들과 그것들이 부각된 원래의 학술사적 맥락에 익숙해있다는 것.

가령 최근 영국학자들의 자국의 근대를 '변혁론'적 관점이 아니라 '지속론'적 관점에서 보는 까닭은 "영국 학자들이 1970년대 자국의 경제적 침체의 영향 아래에 있기 때문"이라는 게 한국 영국사학계의 주류적 입장.

이 교수는 영국 학자들의 경제적 침체의 멘탈리티 속에서 연구한다면, 한국의 학자들은 고도성장의 멘탈리티를 지닌다고 강조한다. 즉, 근대화의 모델을 영국에서 찾고, 한국의 근대사에 결여된 점을 강조하는 식의 '근대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그러기 때문에 1990년대까지 이뤄진 한국에 의한 영국사 연구는 일종의 옥시덴탈리즘의 경향을 띤다고 말한다.

역사가가 견지해야 할 중용은 무엇일까. 그것은 '당대에 대한 존중'과 '현재의 동기' 사이에서 찾아지는 것이리라. 최근 영국 근대사에 가해진 여러가지의 수정들은 그동안 돌보지 않았던 문서들, 신문들, 정교해진 통계수치들에 의해 힘입어 이뤄진 결과들로 보인다. 이 교수도 지적하듯 이런 담론분석 및 언어학적 접근들이 "과거의 텍스트주의와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영국사에 대한 연구는 '기우뚱한 균형'을 아직 찾고 있는 중인 듯하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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