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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새로운 이념들
사유의 새로운 이념들
  • 최승우
  • 승인 2022.05.05 17: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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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산 외 10인 지음 | 한정헌·최승현 옮김 | 그린비 | 576쪽

마주침과 교차로 이뤄 내는 철학적 삶의 공간,
대안공간의 과거, 현재, 미래를 보다

『사유의 새로운 이념들 -대안공간의 사상』은 철학, 기독교윤리학, 경영학, 국문학, 영문학, 생명과학, 한의학, 의료인류학, 교육학, 미학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대안적 사유를 탐색하는 젊은 사상가들의 글모음집이다. 이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소운 이정우의 대안적 사유 및 그가 주도적으로 만든 대안공간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소운은 단지 한 명의 사상가를 뜻한다기보다는 어떤 면에서 1990년대 이후 한국 사상의 새로운 흐름과 2000년대 이후 대안공간 운동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인문학 게릴라 시대의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인문학의 위기’란 말이 이제는 닳고 닳은 수사가 되었지만, 대학에서 인문학 수업이 사라지고, 대학이 교육보다는 경영과 수익이 중요해진 시대를 살면서 우리 삶은 확실히 달라졌다. 진지한 사유가 불가능하거니와 이미 관심도 없다. 그러나 인문학이 ‘언제나’ 위기였다고 말한다면 사실이 아닐 것이다. 대학에서 다루지 않는 새로운 지식을 얻기 위해 강의실 바깥에서 인문학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의 열기가 뜨거웠던 시절, ‘인문학 게릴라 시대’라 불리던 시절이 엄연히 존재했다.

전공이나 배경 등을 따지지 않는 이런 자유롭고 열띤 공부의 경험은, 오히려 진정한 앎을 추구하는 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었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소운 이정우가 설립하고 현재는 ‘소운서원’으로 불리는 ‘철학아카데미’를 비롯하여 ‘연구공간 수유+너머’, ‘다중지성의 정원’ 등 자유로운 공부와 대화를 넘어 때로는 생활공동체를 지향하며 앎과 삶의 조화를 충실히 꾀하는 곳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철학 번역서에서 이름으로만 들어 본 저명한 인문학자들이 이곳을 직접 방문하고 교류했던 사례도 허다하다.

하지만 오늘날은 어떨까? 강의 공간이 모자라 서서 수업을 들어야 했을 정도로 뜨거웠던 열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소운 이정우는 그 원인으로 사유의 경험이 줄어들며 관리사회에 대한 대응이 즉물적, 감각적으로 변했다는 것과 한편으로는 대안공간에서 창출된 사상과 저작이 기성 공간들에 의해 보다 일반화된 것을 꼽는다. 이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대안공간들끼리의 의미 있는 관계망 형성이 중요함을 알지만, 사람들은 각자의 스마트폰 속으로 사라져 버렸고, 모이지 않는다. 『사유의 새로운 이념들』이 갖는 의미가 있다면, 사유가 희박해져 가는 이때 그럼에도 여전히 모여 공부하고 새로운 무언가를 생산해 내려 한 사람들이 남긴 기록이라는 점일 것이다.

자유로운 바깥으로서의 대안공간,
‘철학적 삶’을 가능케 한 마주침

소운 이정우가 주도한 대안공간 운동은, 파편화된 강단철학에 안주하기를 거부하고, 관리사회에 예속된 순응적 주체가 아닌 새로운 시민적 주체들의 탄생을 돕는 일에도 적극적이었다. 그 과정에서 소운서원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20여 년의 기간 동안 직·간접적으로 접속된 이들이 이 책의 저자들이다.

1부 ‘전통, 근대, 탈근대’에서는 장자에서 들뢰즈에 이르기까지 사상사의 다양한 맥락을 짚어 가면서 소운이 다듬어 놓은 역사철학적 사유를 철학, 기독교윤리학, 경영학, 국문학, 영문학이라는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2부 ‘시간, 생명, 창조’에서는 생명과학, 한의학, 의료인류학, 교육학, 미학 분야에서 시간과 생명에 대한 과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사유를 역시 소운의 형이상학, 존재론의 성과들과 대화하며 전개하고 있다. 3부 ‘소운 이정우와의 대화’에서는 그동안 그가 걸어 온 철학적 여정, 대안공간의 탄생, 소운의 사유에 영향을 끼친 사상 및 사상가들, 그의 저작들에 담긴 핵심적인 문제의식 등에 관한 대화를 모았다. 아울러, 대안공간의 역사철학적 의미에 관한 소운의 글도 부록으로 실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는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이질적 인물들이 대안공간이라는 장소에서 만나 어떻게 교류했고, 어떻게 공통의 경험을 각자 새로운 사유의 실마리로 풀어놓을 수 있었는지를 들을 수 있다. 이는 곧 다양한 존재면을 가로지르는 ‘철학적 삶’의 실천을 생생히 목격하는 일과도 같다.

‘시민적 주체’의 귀환을 위하여,
저마다의 씨앗을 심자

원격 화상 기술의 사용이 활발해지면서, 물리적 한계가 해소됨에 따라 어느 곳에서나 원하는 강의를 듣거나 모임을 꾸릴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서울-중심이 드디어 해체 가능해진 것이다. 이를 통해 오히려 인문학 대안공간의 전성기라 불리는 시기보다 공부하고자 하는 주제의 다양성은 크게 늘어났고, 이는 시민적 주체로 살고자 하는 우리에게 축복과도 같다. 그렇다면 지금의 대안공간이 추구해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대안공간이 추구하는 것은 현대적 형태의 혁명입니다. 그것은 소리 없는 혁명, 영구혁명으로서, 그 궁극은 결국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어 나가는 데 있습니다. 역사의 진정한 동인은 절대 다수의 대중에게 있습니다. ‘유명한 사람들’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엉터리 같은 자들이 정치를 하고, 과학기술, 자본주의와 결합된 속류 유물론이 횡행하고, 유치하고 저질스러운 문화가 오히려 각광받는 이 모든 것은 결국 궁극적으로는 대중에게 원인이 있는 것이고, 진정한 변화는 바로 그 대중을 변화시키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대안공간은 이런 운동으로서, 새로운 형태의 혁명으로서 존재해야 합니다.
_본문 중에서

소운 이정우는 대안공간이 그저 그럴듯해 보이는 강의가 열리는 곳이나 세속적 삶으로서의 웰빙을 추구하기 위한 곳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사상을 창조해 내는 곳’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각각의 고유한 사상을 지닌 대안공간들이 있고, 그 공간들이 사회로 퍼져 감으로써 변화가 도모되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사유를 요구한다. ‘대안공간’의 전성기를 겪은 이후 꾸준한 탐색을 멈추지 않은 연구자들의 생생한 사유를 통해, 독자들은 이 시대에 걸맞은 자신만의 ‘철학의 공간’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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