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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문화사
판소리문화사
  • 최승우
  • 승인 2022.05.04 17: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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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 지음 | 민속원 | 384쪽

광대의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통해 본 판소리 형성사
판소리는 조선 후기 변화하는 당대인들의 삶과 의식을 담아낸 그릇이었다. 당시 세상의 모습과 사람들의 의식이 광대의 눈과 가슴을 통과하여 판소리로 표현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판소리의 본질 또는 그 정신을 알기 위해서는 광대의 삶과 당시 사회 문화 예술의 상황이 서로 어우러져 아로새겨진 역사적 지층의 결을 탐사해야만 했다.

판소리 광대의 주된 원류는 무당이었고, 그 전신은 제사장이었다. 옛날 무당들의 후신인 재인 광대들은 가무악 능력을 바탕으로 팔관회와 연등회, 그리고 나례와 같은 국가 예능을 배타적으로 장악하게 되었으며, 나례에서 벌어졌던 화극(소학지희 또는 골계희)도 옛날 제사장과 무당 시절부터 오랜 전통인 극화 능력을 발휘한 것이었다. 화극은 가창으로 하는 판소리로 이어졌는데, 소리 형식을 단순하게 덧입히는 단계와 화극의 일부를 서정 양식인 시창으로 부르는 단계, 서사 형식에 서사적인 가창을 더하고 정교하게 하는 단계를 거치며 18세기 중후반의 판소리 역사시대로 진입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무속서사시적인 음악 형식과 공연 방식이 개입하게 되었으며, 당시 시정인들의 삶과 의식, 이야기꾼들의 이야기 방식을 반영하게 되었다. 나례 우인과 광대들은 나례에 동원되거나 민간 공연에 부응하기 위해 서울과 지방을 무수히 왕래하면서 당대 집단의식과 문화예술적 분위기를 긴밀하게 심호흡하면서 당시 변화하는 사유들의 흐름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판소리의 기저 정신으로 녹여냈다. 판소리는 처음부터 왕과 대신들, 사대부층, 중인층, 신흥부자들, 평민에 이르기까지 전 계층을 수용층으로 아우르고자 했다. 그리하여 상층음악과 하층음악의 혼합, 상하층의 미의식 성향의 혼합 현상도 나타났다. 판소리 광대의 삶은 중세의 질곡에 묶여 있었으나 판소리를 통해 그가 구현한 정신은 근대를 선행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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