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8 08:35 (일)
한없이 가까운 세계와의 포옹
한없이 가까운 세계와의 포옹
  • 김재호
  • 승인 2022.05.03 10: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새로나온 책 『한없이 가까운 세계와의 포옹』 수시마 수브라마니안 지음 | 조은영 옮김 | 동아시아 | 328쪽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되찾아야 할 진짜 일상

“한국에서는 성애적이지 않으면서 서로를 존중하는 ‘안전한’ 접촉 문화가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찾아보기 어렵다.” _권김현영(여성학 연구자)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기 이전에도 ‘불필요한 신체접촉’을 피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이미 상식이 되어 있었다. ‘코로나 블루’라는 말이 등장하기 이전에도 외로움과 우울감은 이미 심각한 사회적 문제였다. 저자는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 얼굴을 가린 마스크가 아니라, 온몸을 옭아매는 지나치게 시각 중심적인 문화와 친밀한 신체접촉의 결핍이라고 주장한다. 팬데믹 종식에 대한 기대감이 커져가는 시기에 『한없이 가까운 세계와의 포옹』을 읽는 경험은 시각에 치우쳐 있는 삶을 되짚어보고, 우리가 잃어버린 가장 인간다운 감각을 회복하는 귀중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촉각을 탐구하는 여정
생생한 삶의 이야기들

“심장이 뛰고 숨이 가쁘고 몸이 뜨거워지게 만드는 분노에서 이런 신체감각을 모두 제거한다면 더 이상 같은 감정이 남아 있다고 할 수 있을까.” _본문 12쪽

우리는 삶의 많은 영역에서 촉각을 잃어버렸다. 대부분의 판단을 시각에 의존해 내리고, 친구나 가족과도 좀처럼 살을 맞댈 일이 없다. 〈1년 동안 감금당하고 1억 받기 VS 그냥 살기〉라는 밸런스 게임 게시물에는 당연히 1억을 받겠다는 댓글이 줄줄이 달린다. 그러나 자가격리 기간에 답답해 미칠 뻔했다는 코로나19 확진자의 토로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인터넷만 있으면 얼마든지 혼자 살 수 있다고 믿는 시대, 동시에 많은 이들이 잠시나마 접촉의 소중함을 실감한 지금, 『한없이 가까운 세계와의 포옹』은 “조용하게 떨리는 성찰의 시간을 제공한다”.

심지어 속옷을 고를 때조차 착용감보다 눈에 보이는 디자인을 중요시할 정도로 촉각을 경시하는 문화는 하루아침에 나타난 것이 아니다. 그 배경에는 촉각을 비이성적이고 야만적인 감각으로 치부하는 유구한 편견뿐 아니라, 과학적 몰이해가 자리 잡고 있다. 흔히 촉각이 없는 삶을 상상할 때 피부에 닿는 감촉을 못 느낀다고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 촉각을 잃으면 몸의 움직임도 함께 잃는다.” 가슴 설레는 행복감과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 같은 감정도 사라진다. 촉각은 실존의 감각이고, 우리가 감정을 느끼게 하는 내면의 언어이다.

촉각에 관한 학술적 접근뿐 아니라 저자가 온몸으로 부딪친 취재들이 이 책을 한층 더 풍성하게 만든다. 저자는 촉각을 잃어버린 워터먼, 촉감에서 감정을 느끼는 ‘공감각자’ 윌리엄스, ‘촉각이 있는 의수’를 장착한 스페틱 등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으며 촉각의 중요성을 피부에 와닿게 전달한다. 이들의 삶을 대하는 저자의 태도도 인상적이다. 이들의 삶을 촉각의 가치를 드러내는 증거로만 삼는 것이 아니라, 다소 엇갈리는 주장도 있는 그대로 소개한다. 그 탓에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삶의 진실한 순간이 내용의 깊이를 더한다.

더 나아가 저자는 직접 마사지 수업을 들으며 신체접촉에 대한 오랜 두려움을 극복한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저자가 제안하는 신체접촉 결핍의 해결책은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는 문화와 성적이지 않은 신체접촉이다. 고객은 어디가 불편한지 말하고 마사지사는 그곳을 만져도 괜찮은지 물어보듯, 사적 관계에서도 솔직하게 욕망을 드러내되 상대방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종의 거래로서 성적이지 않은 신체접촉을 제공하는 커들러(cuddler) 서비스도 대안으로 제시된다. 나쁜 것은 경직된 문화와 존중 없는 사람일 뿐, 신체접촉 자체가 아니다.

 

인류 문명은 손에서 시작되었다?
우리가 잃어버린 인간다움에 관하여

“만지는 행위는 한 인간이 세계를 탐구하는 첫 번째 수단이다.” _본문 15쪽
“우리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며 다른 사람을 만나고 또 새로운 사람과 접촉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에 서툴러졌다.” _본문 191쪽

인류는 손으로 도구를 만들며 신체의 한계를 뛰어넘었고, 서로를 어루만지고 살을 부대끼며 사회를 이루었다. 영장류 무리의 털 고르기가 언어의 전신이라는 동물학자 로빈 던바(Robin Dunbar)의 주장까지 생각하면, 인류의 문명은 머리가 아니라 손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해리 할로(Harry Harlow)의 그 유명한 ‘원숭이 애착 실험’은 애정 어린 스킨십이 낯선 환경에 적응하고 새로움을 탐구하는 능력의 바탕이 됨을 보여준다. 부드러운 수건 뭉치와 함께 자란 원숭이가 딱딱한 철사와 함께 자란 원숭이보다 훨씬 더 용감했던 것이다.

전혀 다른 환경의 사람과도 얼마든지 소통할 수 있는 오늘날,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고 온갖 혐오가 노골화되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신체접촉이 터부시되고, 몸의 감각보다 화면 속 이미지를 중요시하는 사회에서 공감 능력이 부족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공감은 먼저 자기 자신에게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팬데믹 종식을 앞두고 『한없이 가까운 세계와의 포옹』을 읽는 경험은 지난 몇 년, 혹은 그 이전부터 우리가 소홀히 여겼던 가장 인간다운 감각의 가치를 되새기는 기회가 될 것이다. 촉각은 내 삶을 어루만지고 다름을 끌어안는 감각이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