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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람이 좋아한 당시
조선 사람이 좋아한 당시
  • 최승우
  • 승인 2022.04.27 1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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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묵 (평역) 지음 | 민음사 | 736쪽

조선 선비들이 짓고
궁중 여성들이 즐기며
저자의 평민들이 노래한
당시의 수용사를 밝힌 거작
서울대 국문학과 이종묵 교수는 우리 옛 시와 글을 읽고 그 아름다움을 알리는 일에 오래 천착했다. 한시 제작의 원리와 우리 한시의 미학을 30여 년 연구해 온 결과로 내놓는 『조선 사람이 좋아한 당시』에서는 기존 연구와 완전히 다른 시각을 보여 준다. 동아시아 문명의 잣대이자 한국 한시의 모범인 당시가 조선에 수용된 양상을 구체적으로 조사한 것이다.

당시는 눈으로 보고 이해하기도 하지만 귀로 듣고 즐기기도 했다는 점이 연구의 핵심이다. 이 책의 저본 『당시장편(唐詩長篇)』은 조선 시대에 가창과 음영(吟詠)을 맡은 기녀가 애창한 당시를 엮은 선집으로, 한문에 능하지 않은 사람들도 궁중 연희나 시조, 판소리 공연에서 당시를 즐겼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이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읽는 시인 당시 본연의 아름다움에 부합하는바, 중국 당나라 시대에서 조선 말기까지 전해진 천년 고전의 향기는 저자의 단정하고 다감한 번역과 함께 현대 독자에게까지 실려 온다.

한시 연구로 정평이 난
이종묵 교수의 번역과 함께
마음을 가득 채우는 시의 향기
세계 각국의 문물이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가운데 우리 문화의 고유함이 자부심과 함께 재발견되는 시대다. 『조선 사람이 좋아한 당시』는 중국의 고전을 조선에서 어떻게 깊이 있게 수용했는지 보여 주는 지표로도 값있다. 책에 실린 우리 한시·시조·판소리의 풍부한 예에서 보듯 당시는 양반사대부만이 아니라 여성층과 일부 평민, 천민에게까지 유통된 대중 교양이었다. 국내 선집에서 주로 참조하는 『당시삼백수』 등은 조선 시대에 읽힌 적이 없지만, 이 책에 수록한 당시 200수는 널리 읽힌 판본에서 나왔기에 조선에서 가장 사랑받은 작품이 무엇이었는지 알려 준다.

한시 번역은 한 글자의 해석 차이로 원의에서 멀어지거나 고사의 맥락을 놓친 자의적인 풀이에 빠지기 쉽다. 저자는 시의 출처를 정확하게 교감하는 것은 물론 『고문진보』, 『두시언해』와 같은 창의적이면서도 설득력 있는 조선의 풀이를 폭넓게 참고해 번역문만 읽어도 시의 심상과 의미가 통하게 했다. 두보의 소박함과 이백의 호방함, 새로운 만남에 설레고 이별에 눈물 흘리는 명편들이 자연스럽게 다가오니, 한시의 운율이나 옛이야기를 잘 모르는 독자에게도 시 자체로 자신 있게 권하는 선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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