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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누친의 가족치료 마스터하기
미누친의 가족치료 마스터하기
  • 최승우
  • 승인 2022.04.18 15: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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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vador Minuchin 외 2인 지음|이인수 옮김|학지사|400쪽

치료자의 성장과, 변화 그리고 확장을 위한
미누친의 슈퍼비전

‘마스터하기’는 얄팍한 속내가 드러나 보이는 어떤 종류의 외국어 학습서를 연상시키거나, 아니면 어떤 분야와 관련하여 이것 외에는 더 이상의 다른 대안은 없다는 식의 그야말로 대책 없는 오만함을 연상시킨다. 그런데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정의하는 ‘마스터하다’는 그런 인상과는 다르게, “어떤 기술이나 내용을 충분히 익히다.”라는 뜻이다.

그 낱말의 뜻을 확인한다고 해도 이 책의 제목에서 받게 되는 어떤 어색함이나 기이함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이 책의 부제 때문일 것이다. 미누친을 비롯한 이 책의 저자들은 그 제목을 통하여, 가족치료를 충분히 익힌다는 것을 변화와 성장의 여정을 밟는 것이라 말한다. 어째서 치료라는 실천적 행위가 성장과 변신이라는 수행(修行)의 목표와 연결되는 것일까?

가족치료의 과정이 인식론적 과정과는 결코 같을 수 없는 하나의 실천적 과정이라는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치료과정에서 치료사는 어떤 기계의 설계자가 그 설계에 따라 제작된 기계를 대하는 것처럼 그렇게 내담자(가족구성원)를 대할 수 없다. 같은 인간이지만 내담자에게는 치료사가 알 수 없는, 심지어 그 내담자 자신조차 알 수 없는 어떤 미지의 영역이 있다.

마찬가지로 치료사도 그렇다. 그렇게 스스로의 내부에 미지의 영역을 간직한 주체들이 가족의 기능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하여, 가족구성원을 고통스럽게 하는 문제의 해소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함께 작업하는 것이 가족치료이다. 그 과정은 적극적일 수도 있고 제한적일 수도 있으며 그것들을 통합한 것일 수도 있는 치료사의 개입을 매개로 진행된다.

가족치료의 과정에서 그러한 개입은 단선적이지도 않고 일률적이지도 않다. 치료사의 개입은 내담자의 반응을 낳게 하고 그 반응은 다시 치료사의 반응을 낳게 하며, 반응들의 연쇄와 극적 전개는 매 순간 치료사의 개입에 다시 투영된다. 치료사와 내담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그러한 반응의 연쇄와 극적 전개는 둘 이상의 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원인과 결과가 된다는 의미에서 정확히 교호작용(交互作用)이라 부를 만하다.

그러한 교호작용이 전개되는 과정의 어느 한 시점에서 우리가 신비적 치유의 순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내담자를 고통스럽게 했던 문제가 해소되는 순간이 발생한다. 그 순간은 치료사와 내담자 양쪽 모두에게서 자기 자신과 가족과 인간에 대한 이해가 확대되고 심화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런 순간이야말로 이 책의 부제가 말해 주는 성장과 변신이 치료사와 내담자에게서 이루어지는 순간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 모든 치료사의 치료 행위는 그렇게 도움을 요청하는 가족들의 부름에 대한 응답이어야 한다.

여기에 가족치료의 ‘순간을 다투는’ 어떤 윤리가 있다. 내담자와 그(또는 그녀)의 가족구성원들과 함께하는 치료적 마주침의 과정에서 그런 부름에 귀 기울이지 못한다면 치료사는 그 자신의 본분을 저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가족치료 마스터하기’의 가장 끝 단계에 치료사에게 놓여있는 과제는 바로 그런 윤리적 감각의 체화일 것이고, 그런 체화의 과정은 쉼 없이 지속되면서 항상 깨어 있어야 하는 성격의 것이리라.

『미누친의 가족치료 마스터하기』는 대학원 과정이나 슈퍼비전 과정처럼 교육과 지도를 받는 시절에만 해당하는 사안이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치료사가 되고 나서 그 자신이 직접 치료를 수행(遂行)해 나가는 시절에도 해당하는 사안이다. ‘가족치료 마스터하기’가 부단한 ‘성장과 변신의 여정’이 되어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이 책을 통해서 치료사가 자신을 성장하고 변화하고 확장시키는 여정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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