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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장하고 싶은 교양서: 思索이 있는 밥상차리기
내가 소장하고 싶은 교양서: 思索이 있는 밥상차리기
  • 최수영 한림대
  • 승인 2005.11.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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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지테리안, 세상을 들다』(쯔루다 시즈카 지음| 손성애 옮김 | 모색 刊 | 251쪽 | 2004)

언제부턴가 내 책상위에는 아침마다 야채즙이 놓여져 있다. 집사람이 나의 건강을 위해 나름대로 신경써서 제공해주는 음식이다.


거리 곳곳마다 웰빙이란 상호명이 넘쳐나고, 언론에서는 웰빙을 위한 여러 가지 방법들을 안내해 준다. 바야흐로 우리는 자연과 가족에게서 삶의 가치를 깨달아 진정으로 잘 먹고 잘 살아야만 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베지테리안, 세상을 들다'


솔직히 제목만 보고, 야채즙을 만들어 주는 아내에게 채식 식단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줄 수 있겠다 싶어 서슴없이 구입한 책이다. 그러나, 책을 펼친 후 곧 기대를 접어야 했다.


우리가 흔히 채식주의자라고 생각하는 베지테리안(vegetarian)은 베지터블(vegetable)에서 파생된 단어가 아니라, ‘~에 생명을 주다’ 또는 ‘활기차게 ~하다’라는 라틴어 ‘vegetus’임을 제시하면서, 이 책은 시작되기 때문이다.


피타고라스, 플라톤, 바그너, 버나드 쇼, 죤 레논 등의 베지테리안(vegetarian)들을 소개하면서, 단순한 건강의 의미를 확장시켜 인간의 육체와 정신의 건강, 동·식물에 대한 사랑과 공존, 나아가 사회와 지구의 평화 및 행복을 추구하는 공통된 세계관을 이끌어낸다.


다소 거창한 감이 없진 않지만, 채식주의는 식생활 영역을 넘어선 사회적 의미이며,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신념이고 철학임을 이야기한다. 문득, 한 손에는 햄버거를 들고 이 책을 읽고 있는 나의 모습을 만약 저자가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무척 어색한 느낌이 들기도 하였다.


“영혼은 다른 동물 속으로 이주한다. 모든 생명은 서로 친척이다”라는 믿음에 따라 제자들과 같이 빵과 꿀, 야채를 즐겼다는 그리스 철학자 피타고라스, 힌두교의 계율에 따라 태어날 때부터 채식을 했던 마하트마 간디, 25살부터 채식주의자로 살았던 영국의 문학가 버나드 쇼의 이야기를 통해 채식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다양한 야채즙을 먹을 수 있겠다는 아주 단순한 욕망으로 구입한 책이지만, 채식과 채식주의가 가진 다양한 사상과 층위의 시각을 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나의 주요 연구분야가 생화학(신경, 단백질)이다보니, 단백질의 중요성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식물성으로도 단백질 섭취가 가능하나, 동물성 식품도 결코 무시 할 수 없다. 채식주의, 육식주의를 떠나서 오늘날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는 ‘웰빙’의 시대에 맞추어 사색적인 밥상차리기를 시도해보면 어떨까 싶다.


육체적·정신적 건강의 조화를 통해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는 이 시대의 ‘웰빙’이 너무 미시적이거나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행복 추구로만 논의되어지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이젠 미시적 차원을 떠나 환경론적 바탕위에, 이웃 전체의 건강과 삶의 질을 배려할 수 있는 거시적 안목을 키워야 할 때인 것 같다. 개인을 뛰어 넘어 사회 전체의 삶의 질 향상이 그 진정한 목표가 될 수 있는 새로운 인식의 웰빙을 기대하는 마음을 뒤로 한 채 이 책을 덮었다.


내일 아침이면 또 어김없이 내 책상 위에는 내용물을 예측할 수 없는 아내가 직접 만든 정성어린 야채즙이 놓여져 있을 것이다. 야채즙으로 포장한 내 아내의 사랑이 나에겐 진정어린 웰빙음식이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웰빙시대에 이제는 입맛이 아닌 사랑이 곁들인 철학에 따른 식사를 원한다면 긴긴 겨울밤 쯔루다 시즈카의 베지테리안(vegetarian)의 세계에 빠져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최수영/한림대·신경생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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