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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장하고 싶은 교양서: 국수값 경제학
내가 소장하고 싶은 교양서: 국수값 경제학
  • 원용찬 전북대
  • 승인 2005.11.27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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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경제의 로고스'(나카자와 신이치 지음| 동아시아 刊)

국물 맛이 깊은 값싼 국수집 한 군데가 있다. 나는 그곳에서 아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는데, 웬만하면 먼저 나가는 사람이 지인들의 국수 값을 대신 계산해 주곤 한다.


나도 많이 계산해 주고 많이 얻어먹었다. 이렇게 주고받는 것을 화살표로 표시해 볼 수 있다.


A→B→C→D→…A or E


A는 B에게 주고, 그것을 받은 B는 C에게 되돌려주고 그것을 받은 C는 A 또는 다른 사람 E에게 반례를 하는 것이다.


시장교환의 원리가 화폐에 있듯이 증여와 반제의 호혜성 회로에도 뭔가 이것을 움직이게 하는 영적인 것 또는 심층구조가 있을 것이다. 원시사회에서는 모든 사물마다  하우(hau)라는 영혼이 존재해 있었다. 하우는 사물과 함께 이동하더라도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가고 싶어 한다. 오스트레일리아 마오리(Maori) 부족의 수렵인들은 자신들에게 사냥감을 제공하는 숲에도 하우가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새를 사냥하면 처음에는 그것을 모두 토웅가(Tohunga, 사제 司祭)에게 제공한다. 토웅가는 의식(儀式)을 통해 새 몇 마리를 숲속으로 되돌려 보낸다. 그러면 번식력과 풍요의 영혼인 하우도 새와 함께 원래의 자기자리였던 숲으로 되돌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동안 증여의 호혜원리만 탐색하면서 그것은 시장교환과 전혀 별개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증여가 시장교환과 서로 대립되는 것은 아님을 나카자와 신이치(中澤申一)는 '사랑과 경제의 로고스'(2004)에서 깨닫고 생각의 지평도 넓어지게 되었다.


당연히 이 책은 내가 애지중지하고 심심하면 뒤적이면서 다시금 고개를 끄덕이는 책이 되었다.  


시장교환도 결국 선물을 주고받는 증여 내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 주변을 둘러봐도 선물 증여행위는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백화점에서 구입한 초콜릿은 점원과 나와의 물(상품)과 물(화폐)의 가치교환이지만 가격표를 떼는 순간에 물(物)은 인격으로 체화되어 ‘물의 인격화’ 또는 물과 인격이 결합되는 제3의 ‘중간적 대상’이 된다.


어찌 보면 추석설날 같은 명절, 어버이날, 어린이날, 발렌타인 데이와 화이트 데이, 크리스마스, 개인들의 수많은 생일들은 선물이라는 증여의 원리가 작동하는 날이다. 1년 365일 수많은 교환가치의 상품들은 가격표가 떼어지는 순간부터 불확정한 가치를 띠면서 물적 인격체로 전환하여 선물과 증여의 호혜적 회로망으로 흘러가게 된다.


시장교환의 배후 속에는 여전히 증여와 반례의 연쇄고리가 작동한다. 증여(사랑)와 교환(경제)는 시장경제와 비시장경제의 대립이 아니라 심층구조에서 서로 연결고리를 맺고 있는 것이다.

원용찬 / 전북대 · 경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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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독자 2005-11-28 21:50:38
저도 나카자와 선생의 시리즈를 열독하는 팬입니다.
개인적으로 제2권 <곰에서 왕으로>가 가장 재밌었구요..
이번에 카이에 소바주 시리즈 4, 5권까지 나왔더군요.
너무 반가워서 바로 주문해놓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윤기 선생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데...
국내 학자가 아니라 아쉽지만, 이런 책이 번역돼서 값진 내용을 볼 수 있어 기쁩니다.
우리 학생들하고 한번 독서토론을 해볼까 합니다. 아시아에도 이런 신화학자가 있다는걸 많은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