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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화폐, 마법의 사중주』 고병권 지음| 그린비 刊| 343쪽| 2005
서평:『화폐, 마법의 사중주』 고병권 지음| 그린비 刊| 343쪽| 2005
  • 안현효 대구대
  • 승인 2005.11.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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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일보한 접근...'기업' 발생과정과의 겹침 흥미로워

‘화폐, 마법의 사중주’라는 책은 근대 화폐를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다.

주지하듯이 현대자본주의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화폐는 신앙이자, 주된 삶의 목적이다. 현대인은 태어나면서 그런 환경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당연한 것으로, 자연법칙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지만 현대적 의미의 화폐의 출현과정을 추적해보면, 이는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역사적 산물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이 책은 화폐에 대한 고고학적, 다면적 탐구를 통해 이 점을 보다 극명히 드러내고 있다.

이 책에서 시도하는 화폐에 대한 고고학적 탐구의 주요한 특징은 화폐를 네 가지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첫째 차원은 화폐제도 자체의 발전과정이고, 둘째 차원은 화폐와 권력과의 관계이며, 셋째 차원은 사적 관계와 공적 관계를 매개하는 장치로서의 화폐공동체이고, 넷째 차원은 화폐 인식의 차원이다.

화폐신용제도의 발달과정이라는 첫째 차원의 분석을 통해 저자는 화폐가 공동체 내부로부터 자연스럽게 출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 외부에서 존재했던 외적 존재가 내부로 침투해 들어온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화폐신용제도 자체가 독립적인 대외교역네트워크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중세) 공동체의 외적 존재로서의 교역네트워크와 이로 인한 화폐신용제도는 근대국가의 탄생과 함께 국가체제 안에 포섭되어 가는 과정을 거치게 되어 국민통화와 중앙은행체제를 통해 내부화된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은 화폐제도 자체의 성격변화를 가져온다. 첫째로 지적된 것은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에 대한 전통적 구분에 새로운 영역을 추가시켰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회’라는 개념의 등장인데 화폐공동체라는 독특한 공동체는 바로 사적이자 동시에 공적인 어떤 조직들을 등장시켰다. 이제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전통적인 대립에 사회라는 새로운 영역이 등장함으로써 세 차원의 분석을 통해서만 현대자본주의사회는 분석될 수 있다.

그렇다면 많은 경제학자들을 괴롭히고, 많은 민중들을 현혹시키며, 사회학자들에게 새로운 연구과제를 던져 준 화폐 자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저자는 화폐경제학의 분석을 통해 화폐와 부의 중상주의적 혼동을 비판한 스미스, 부와 가치를 혼동한 스미스를 비판한 리카도, 가치와 자본을 구분함으로써 단순한 화폐와 자본으로서의 화폐를 인식한 맑스를 통해 화폐는 부의 형태이면서, 가치의 형태이자, 자본(자기 증식하는)의 형태라는 다면적 요소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본 저서의 장점은 다양한 차원에서 화폐를 접근함으로써 화폐를 풍부하게 이해한다는 점이다. 기존의 화폐에 대한 인식이 신용관계만을 부당하게 강조(신용화폐)하거나, 권력관계만을 부당하게 강조(국가화폐)하거나, 상품관계만을 부당하게 강조(상품화폐론)한 반면, 이러한 모든 측면을 아우르는 새로운 화폐의 인식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현대 화폐에 대한 제도적 접근에 좀 더 진일보한 결과를 산출했다.

 그런데 저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 네 차원을 통합해 화폐구성체라고까지 부르고 있다. 구성체(formation)라는 것은 형태 자체가 아니라 형태의 형성과정을 중시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화폐형태에 대한 고고학적 접근을 통해 구성체라는 개념은 정당화된다고 하겠다.

그러나 화폐구성체라는 개념은 비교해야 할 다른 구성체의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문제를 제기한다. 즉 이는 저자로 하여금 경제사회를 매개할 다른 형태의 구성체에 대한 질문을 지속적으로 던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화폐가 독자적 구성체로서의 의미지워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과연 저자가 고민해야 할 대안적 구성체가 화폐 그 자체에서 나올 수 있는가라는 점은 회의적이다. 현대자본주의사회에서 화폐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현대자본주의사회에서 화폐는 자기증식하는 ‘생물’로서 자리매김해 사회의 중심 위치에 우뚝 섰다. 하지만 그것은 자본주의적 관계 하에서 가능한 것이 아닌가. 화폐가 과연 자본주의라는 ‘구성체’를 대체할만한 구성체일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이때 저자의 연구로부터 흥미롭게 생각되는 것은 세 번째 차원인 화폐공동체의 분석이 사실상 현대 기업의 발생과정이라는 점이다. 현대 기업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하에서 존재하고 이윤추구의 기계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되지만 그 발생의 기원에서 볼 때 나름대로의 공동체, 즉 화폐공동체였다. 따라서 현대 기업은 사적인 이해관계와 공적인 관계를 매개하는 요소로서 작용한다.

그러나 현대 기업은 공동체적인 요소와 함께 화폐적 요소를 동시에 가지고 있어서 독특한 특성을 갖게 된다. 오늘날 현대자본주의의 주요 핵심으로 기업이 가지는 지위는 바로 여기서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현대인들은 돈을 신앙으로 삶의 목적으로 삼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는 기업이라는 공동체를 통해야만 한다는 사실은 바로 현대자본주의 사회의 핵심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안현효 / 대구대·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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