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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살 목화
서른살 목화
  • 최승우
  • 승인 2022.04.04 13: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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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경 지음 | 도화 | 346쪽

이 소설은
김다경 소설가가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장편으로 유례없는 취업난을 겪고 있는 청춘들의 일, 사랑, 방황, 좌절의 삶을 곡진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젊은 세대의 청춘 보고서인 『서른 살 목화』는 감당하기 힘든 현실에 휘둘려 살아가는 목화의 모습이 생생한 묘사를 통해 사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목화의 모습을 통해 청준들에게 이미 의미를 상실했을지도 모르는 현실 세계의 어두운 그림자를 욕망과 자아 속에서 확인한다. 이 어두운 현재는 그것을 벗어나고자 하는 목화의 의지나 희망조차도 동결시켜버리는 냉혹한 세계이다. 그러면서도 목화의 모습과 욕망을 통해 청춘의 자기성찰 세계를 보여주는데, 그 소설적 전개가 사뭇 자연스러우면서도 청춘에 덧입혀진 선입견을 세심하게 벗기고 있어 값지다.

취업이 어려운 목화는 편의점, 식당에서 알바를 하다가 먼 친척이 사는 말레이시아로 건너가 골프 리조트의 골프장에서 일을 하게 된다. 그녀의 업무는 인터넷을 통한 골프 예약, 캐디 예약, 마시지 예약 외에도 손님들을 위한 안내와 서비스였다. 목화는 골프를 하다가 발목을 다친 할머니도 간병하고, 골프장에서 라운드 오는 손님들 관리를 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호텔 식당의 셰프 왕하오를 만나지만, 실수로 자밀의 아이를 임신한다.

자밀은 알라신의 뜻이라며 결혼을 강요하지만 그는 이미 결혼한 몸이다. 자신이 역겨운 목화는 자신이 행복했던 시절이 언제였을까? 떠올린다. 어릴 적 시골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던 때이다. 뱃속 아이가 점점 크면서 말레이시아에서 설자리가 없어진 목화는 귀국해 병원에서 임신중절수술을 한다. 자신과 결혼하고 싶어하는 왕하오에게는 고향집에 잠깐 다녀온다고 안심을 시켰지만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아픔이 가슴을 조여온다.

서울 근교의 고시원에 둥지를 튼 목화는 또다시 자신의 힘으로 의식주를 해결해야 한다. 이십 대의 꿈은 이런 삶이 아니었다. 목화는 여전히 같은 자리로 돌아온 느낌이고, 무엇인가를 다시 시작하기에는 서른셋의 나이가 벅찰 만큼 무거웠지만 대학 일학년 때의 그녀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의지가 있었다.

하지만 왕하오가 한국에 왔다는 말에 그가 떠나기 전에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과, 취업을 해서 새 삶을 시작해야 한다는 두 갈래 길에서 목화는 갈등하면서 독한 소주로 자신을 달랜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서야 목화는 취직 시험을 볼 생각으로 학원 등록을 하고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기도 한다. 그후 몇 번 취직 시험에 떨어진 목화는 시험장에서 돌아오다가 한 사장으로부터 왕하오가 아직도 한국에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또다시 폭풍 앞에 서 있는 기분이 된 목화는 초 단위로 변화하는 마음을 멈추지 못한다. 마음속 소란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며 목화는 상경하는 그녀에게 하던 엄마의 말을 떠올린다.

‘갈림길에 서 있다고 생각되거든, 니 앞에 붉은 신호등이 켜져 있다는 것을 명심해라.’
‘엄마 붉은 신호등이 켜지면?’
‘멈춰서 기다려야제.’

백팩을 메고 도서관을 향해 걷는 목화의 얼굴로 봄이 아직 먼 찬바람이 때리며 지난다.
김다경 작가는 이 소설에서 청춘들에게 이것 하나만은 꼭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그것은 목화가 어떤 현실이든 그현실을 외면하지 않았고, 그에 대처할 마음을 품었다는 것. 또한 그런 현실과 얽혀 있는 자의식을 결코 회피하지 않으려는 자세이다. 그것이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우울한 삶을 견디게 해주고, 또다른 소망을 품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서른 살 목화』는 모든 것이 이미 결정되어버려 더는 달라질 것 없이 막막하고 무서운 세상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의 자화상이면서도, 청춘에게는 내일의 시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들려주는 값진 증언이기도 하다. 말레이시아라는 낯선 곳에서 자신과 정직하게 대면하면서 청춘의 우울한 바깥의 새로운 삶을 열어보려는 목화의 형상은 지금도 이런저런 알바 현장에서 힘겨운 순간을 견디는 청춘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아름답지만 불안한 청춘의 들숨과 날숨이 공감과 흡입력으로 나타나고 있는 『서른 살 목화』는 고통스런 현실을 고스란히 몸으로 체화하는 청춘의 자화상이자 보고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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