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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향_ 끝나지 않는 ‘고종시대’ 논란
동향_ 끝나지 않는 ‘고종시대’ 논란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5.11.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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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비판 실증적인가

이영훈 서울대 교수(경제사)가 발끈했다. 최근 나온 계간 ‘시대정신’ 가을호에서 이 교수는 ‘청년들이여, 낡은 역사관을 버려라’라는 웅변적인 글을 발표했다. 이 글은 고종시대를 진흙탕에 메다 꽂는 비유들로 넘쳐나는, 학자적 신념에 기초한 에세이다.

이 교수는 을사조약 1백년 되는 시점에 그에 대한 반성적 논의를 찾아보기 힘들다며 준엄하게 말문을 연다. 중고교 교과서에 “1904년 러일전쟁까지 이야기되다가 갑자기 역사의 무대가 바뀌어 독립전쟁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고 말하는 그는 “역사학계가 부끄럽고 슬픈 이야기를 들려줄 용기가 없다”라고 단정 짓고 있다.

하지만 이 교수가 발끈한 이유는 최근 한림대에서 열린 ‘대한제국 재조명’ 학술대회에 있는 듯하다. 이 자리에서 한영우 한림대 특임교수 등을 비롯한 내발론자들이 고종을 개명군주로 조명했기 때문인데, 그에 반발한듯 이 글에서 이 교수는 고종을 “국권침탈의 책임을 묻는 역사청문회에 가장 먼저 불려와야 할” 중죄인 취급한다. 지난 2004년 교수신문 지상논쟁을 통해 내발론과 식근론 사이의 상호 이해의 여지가 열리나 싶더니, 올해 연말에 와서 양 진영은 다시 꽁꽁 얼어붙는 분위기다.

그렇다면 이 교수는 어떤 근거로 이런 강한 논조를 보이는가. 우선 그는 군대와 군사시설, 무기 등이 턱없이 부족해 “일본과 청국이 조선을 안방 드나들듯 했던” 이유가 고종의 대일본 배척정책 탓이라고 진단한다. 조선왕조의 패망은 “왕은 백성이 아비”라는 식의 시대에 뒤떨어지는 도덕주의와 그로 인해 “1904년 스웨덴 신문기자의 영접을 받고 왜 외국사람인데 뿔이 없나 싶어서 샅샅이 몸수색을 한 고위 관리”의 사례에서 보듯, 폐쇄적이고 정체적인 상황을 낳은 데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계속 고종의 조선과 대한제국이 일본과 청국 사이에서 그릇된 선택을 했다고 공박한다. 소중화주의에 빠져 일본의 현실적 성장을 무시한 채 청나라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다가 합병사태를 초래했다는 이야기를 아관파천, 갑신정변 등을 통해 계속 진행시키고 있다.

결론격으로 이 교수는 “고종이 중국과의 관계에 완전히 매몰되지 않고 일본과 적절한 신뢰관계를 유지했다면 조선의 역사는 물론, 20세기 동아시아사는 판이하게 달라졌을 것”이라며 진한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역사인식은 ‘실증적’인 부분에서 국사학계의 시각과 매우 다르다.

지난해 이 교수와 지면논쟁을 한 바 있는 이태진 서울대 교수가 올해 펴낸 ‘동경대생들에게 들려준 한국사’(태학사 刊)를 보면 고종은 일본에게 열린 태도를 취했다.

이미 “1873년 고종은 대원군을 집권을 중단시킨 뒤, 아버지가 皇 , 勅의 문구가 있다고 거부한 일본의 國書를 접수하는 방침을 정했”을 뿐 아니라, “일본과 언제라도 국교를 수립하겠다는 개방적 자세를 보였다”는 것. 이태진 교수는 여기엔 “이것만이 조선이 사는 길”이라는 고종의 판단이 내려졌다고 강조까지 하고 있다.

그리고 1876년 2월의 조일수호조규도 알려진 것과는 달리 “운양호 사건에 대한 일본 측의 응징에 의해서가 아니라 조선정부의 능동성으로 쉽게 이뤄졌던 것”이라고 사료에 의해 확인하고 있다. 또한 이태진 교수는 일본은 폐번치현 시대에 지식인들이 정신적 흥분상태에서 ‘정한론’을 일찍이 굳히고 그것을 아시아연대론 등으로 계속 변형시켜나갔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고종이 일본에 배타적이었다는 이영훈 교수의 주장은 해외동향에 밝은 젊은 지식인들이 일본을 등에 업고 정변(갑신년)을 일으킬 정도로 고종의 정부가 국제적 균형감각을 잃어버리고 있었다는 판단에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이미 당시 고종의 근왕세력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그가 얼마나 위험한 정치적인 힘의 대결 속에 있었는지에 대해 정치사 분야에서 연구결과가 제출되어온 바 있다.

이영훈 교수는 “최근 일부 역사가들이 고종을 계명군주로까지 칭송하니 참으로 엉뚱한 일”이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이와 같은 사태를 볼 때 오히려 ‘계몽’이니 ‘도덕’이니 하는 말이 오히려 고종을 제대로 보는 데 장애물이 아닐까 하는 느낌마저 든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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