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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길에 잘 어울리는 집
인사동 길에 잘 어울리는 집
  • 양상현 순천향대
  • 승인 2005.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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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현대건축-6. 인사동 덕원갤러리

인사동 거리는 건축가에게 ‘길’이라는 화두를 떠올리게 하는 모양이다. 인사동 거리를 중심으로 갈래 갈래 나있는 좁다란 골목길을 건물내부로 끌어 들인 건축물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인사동 ‘쌈지길’에 이어 ‘덕원갤러리’는 또다른 ‘길의 건축’을 보여준다. 아무래도 인사동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전통미를 주변 환경에 걸맞게 다시 녹여낸 사연을 만나본다.

덕원갤러리는 지은 지 40년이 지난 육중한 건물에서 지난 2003년 연말에 리노베이션 작업을 거쳐 새롭게 태어났다. 1960~70년대에는 극동방송국, TBC방송국으로도 사용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지상 5층, 연면적 5백평이 넘는 본래 건물은 인사동 길을 정비하면서 검은 전벽돌로 바닥이 바뀌어 인사동에 어울리는 건물로 다시 만들기 위해 손을 댔다.

설계작업을 맡은 권문성은 “첨단의 현대건축을 옮겨 놓은 모습으로 인사동의 옛집들을 위축시키지 않고, 우리 문화와 정서를 담아내는 집이 가져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고민했다”고 말한다.

권문성은 인사동 네거리와 맞닿은 모서리쪽으로 사람들이 드나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설계의 실마리를 찾았다. 덕원갤러리는 인사동의 구부러진 길과 좁다랗고 곳곳에서 막다른 골목의 풍경을 살리고 싶었다. 그래서 일까. 이 건축물의 첫 입구가 ‘길’(계단)로 시작한다. 이 계단 들머리는 5층 옥상까지 ‘쉬엄 쉬엄’ 골목길로 이어져 인사동의 다양한 표정과 만난다. 1층과 2층은 전통 공예품 가게가 들어 앉았고, 3·4·5층은 화랑이다.

건물 외부 마감은 전통사찰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파기와를 회벽과 함께 쌓아올린 담장과 같이 만들었다. 검은색 기와편들은 인사동의 다른 건물들과 어울리기 위해서다. 또, 덩치가 커 육중했던 예전 모습에서 친근한 느낌을 주기 위해 스케일을 줄였는데 5층 높이의 건물 앞쪽을 3층으로 낮춰 주변 건물과 키높이를 맞췄다. 권문성은 이런 일련의 작업을 이렇게 소개했다. “소중한 과거의 기억들을 조심스레 감싸 안으며 우리의 현재 모습과 미래의 삶을 담아내는 집”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건축비평

인사동이 있어 서울은 비로소 ‘한국’이다. 수십 년 전의 이 나라, 혹은 더 거슬러 올라가 조선을 만날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인사동이다. 거기엔 곱게 세월을 먹은 문갑과 깊이를 모를 희끗한 자기가 있으며 정체불명의 공예품도 좌판에 슬쩍 끼어 있다. 그리고 검지도 희지도 않은 한식기와를 고즈넉이 얹고 있는 집들과 그들 사이를 유려하게 헤집어나가는 골목길이 있다. 나의 인사동에 대한 경외는 이 골목길에 바쳐진다.

인사동 네거리에 참 반가운 건물이 하나 모습을 보였다. 헌 것 다 부수고 높고 크게 새 건물을 짓는 대신 40년 된 이 건물의 뼈대를 살려 고쳐 지은 것이니 더욱 ‘인사동스러운’ 집이다. 건축가 권문성이 계획한 덕원갤러리다.

이 집이 이룬 가장 큰 성취는 인사동의 맥락에 대한 순응과 조화다. 무엇보다 이 집이 가진 골목이 나는 좋다. 집 속에 골목이라니. 조금이라도 연면적을 더 많이 확보하려는 이 각박한 도시에서 1층의 모서리 한 곁을 비워 소담한 골목길을 만들었다. 뚜렷한 목적이 없을지라도 집안을 흘깃 쳐다보거나, 슬쩍 걸음을 옮겨 기웃거릴 수 있는 마을길의 정취를 본뜨고 있다. 그 옆으로는 위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놓였다. 자연스럽게 위로 이어지는 흐름도 역시 골목을 닮았다. 걷다보면 마당이 있고 어느 가게인가의 대문도 만난다. 내가 사모하는 인사동의 골목길을 건축가는 이렇게 이 집에 들여 놓았다. 집주인과의 힘들었을 줄다리기까지 더하여 그에게 깊이 감사한다.

집의 표정도 완전히 바뀌었다. 길을 잘못 찾은 보릿자루처럼 무뚝뚝하던 예전의 건물은 둘로 나뉘어져 훨씬 편안하고 다정해졌다. 앞쪽에는 한식 암기와를 층층이 쌓아올려 벽을 만들었다. 옛 마을이나 사찰의 담장에서 보던 바이니 온고(溫故)를 즐기는 인사동의 어법에 다름 아니다. 하나하나의 기와편이 회벽과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은 멀쑥한 산업재료와는 달리 촉감까지 느껴지는 디테일로 다가온다. 이러한 기법은 수평 목재널로 마감된 뒷벽과 각형목재를 촘촘히 박아 넣은 돌출된 매스로 이어진다. 작은 것들이 모여 이루는 잔잔한 아름다움은 우리의 전통적 의장이 지닌 멋의 세계를 떠올리게 한다.

빠뜨릴 수 없는 것은 둘로 분리된 매스의 앞 덩어리를 한 개 층 낮추어 인사동 길 쪽에서 보행자가 느끼는 시각적 부담을 줄여 주었다는 점이다. 한 치라도 더 높게 전면부를 키우려는 것이 일반의 생각이겠으나, 이 집의 앞은 옆 건물과 나란히 키를 맞추었다. 자기를 낮추는 것, 쉽지 않은 일이다. 꼭대기 5층까지 도로 전면에 바짝 다가앉았더라면 몹시 부담스러웠을 입면이 한 켜 뒤로 나앉음으로써 훨씬 중후하면서도 여유로워졌다. 비워서 얻는 지혜란 이런 것일 게다.

어떤 모임에서든지 끼어들어 ‘분위기를 맞추’는 것은 상당한 겸손과 더불어 재치있는 순발력을 요구한다. 인사동에 이 집은 잘 어울린다. 그 미덕은 역사적 맥락에 대한 기꺼운 순응과 전통의 발랄한 참조에 있다. 나는 그 골목을 어슬렁거리거나, 혹은 기와편에 산란하는 햇살을 바라보며 한껏 즐거워진다.

양상현 / 순천향대·건축학과
서울대에서 건축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민족건축인협의회 의장을 맡고 있다. 최근에 ‘거꾸로 읽는 도시, 뒤집어 보는 건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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