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봉 전남대 교수(철학)는 신간 ‘도덕교육의 파시즘-노예도덕을 넘어서’(길 刊)을 통해 이같이 선언했다.
김 교수가 말하는 도덕교육의 문제는 정부와 서울대에 의한 교과의 독점, 파시즘 조장으로 금욕과 수동적 개인만을 양성해, 결과적으로 권력관계의 제도화를 견고히 한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김 교수는 전두환 정권이 체제유지를 위해 이규호 교육부장관을 내세워 1981년 다양한 학문을 조립해 서울대에 국민윤리교육학과 개설했으며, 이후 20년간 내용의 변화없이 서울대 교수들만 집필해왔기에 온전한 도덕교육이 이뤄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
김 교수는 현행 도덕교육이 식민지배를 위한 한국 근대교육, 황국신민교육의 본질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개인의 자율적 생각보다는 계급과 사회만을 위해 가르치고 명령한다고 계속 비판한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아랫사람을 위한 교육은 있으나 윗사람에 대한 교육은 없으며, 사회와 국가공동체를 위한 자기부정과 개인적 금욕을 배우지만, 사회가 개인에게 행하는 폭력에 대해서는 침묵한다는 점, 그리고 법, 규칙과 획일적 질서의 절대화만을 강요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도덕 교과서의 집필권이 원칙적으로 개방돼야한다는 것을 전제로 윤리의식을 능동적으로 정립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게 철학적으로 재구성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 교수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윤리교육학계에서는 철학적 지평을 넓혀야 한다는 점에서 동감하면서도 전반적으로 비판적이다. 수도권 소재 대학의 ㅇ 교수는 “특정 학교의 출신여부를 떠나 대부분의 학회에서는 김 교수의 의견에 부정적이며 비판적”라며 윤리교육학자들의 모임 분위기를 전한다.
지방 국립대의 ㅅ 교수는 “김 교수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인문사회과학이 정치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과목이 없을뿐더러 관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김 교수의 경우 현실을 정확히 진단하지 못한 처사”라며, “구석기 시대의 고정관념으로 남의 영역에 시비를 거는 것”이라고 전한다. 이어 지방 사립대의 ㅂ 교수는 “전체나 역사적 맥락없이 특정한 관점에서 음모적으로 해석해 지나치게 편협하고, 오히려 이런 시각이 우리 사회의 문제를 야기시킨다”라고 역비판한다.
김 교수가 반도덕적인 교육 혹은, 사이비도덕교육 양산의 원인이라고 직격탄을 날린 서울대 국민윤리학과에 재직중인 교수들은 보다 구체적으로 반박한다. 김 교수와 동일하게 칸트를 전공했으면서, 전두환 정권 때 처음 윤리교사로 발령을 받았던 박찬구 서울대 교수는 현장의 경험을 들어, “예전에 관제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전달하기보다, 대다수의 교사들은 고통 속에서 제대로 된 윤리교육을 이끌어갔다”라며 권력의 시녀론에 반박한 후, 도덕교육은 “자기중심적 본성을 극복하기 위한 이타적 행위의 강요는 당연”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박 교수는 “자유주의적 이념에 충실한 미국의 교육이 도덕적 상대주의 조장과 무규범적 학생 양산이라는 부작용으로 최근 인격과 덕 교육으로 선회”했던 점도 첨가한다.
반면 윤리교육학계가 반성과 성찰의 기회로 받아들여야한다는 입장인 정창우 서울대 교수는 “김 교수의 주장은 단순한 기준에 의한 균형성을 상실한 평가로, 파시스트만큼 사고가 경직돼 있다”라고 지적한 후 “자율을 도덕전반에 적용해 노예근성과 국수주의를 양성한다는 평가는 도덕교육이론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못한 결과로, 미성숙한 아동의 경우 사회화와 건전한 애국심이 필요하다”라며 그 한계를 말한다. 그는 퍼터스의 말을 빌려 ‘습관과 전통의 뜨락을 지나 이성의 궁전으로’ 인도하는 것이 윤리교육이라고 강조한다. 여기서 문제는 도덕교육의 내용이 타율적 자기부정이냐, 능동적 자율이이냐에 따라 해석이 사회화나 파시즘으로 갈라진다는 점이다.
초등과정에서는 자기보존과 상호공존의 아름다움을 가르치고, 중등과정은 선 개념에 대한 능동적 성찰을, 그리고 고등과정에서는 현실을 총체성 속에서 사유하게 해야한다는 김 교수의 도덕교육 세 단계론에 대해 박병기 한국교원대 교수는 도덕교육론의 오랜 아포리아를 끌어들여 “습관적 도덕성에서 어떻게 자율적 도덕성으로 질적 비약을 할 수 있게 하는가”라며 반문한 뒤 “도덕교사의 철학적 능력과 동시에 전문가적 관점에서 학생들의 도덕심리 등을 분석·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철학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
이밖에도 정권의 시녀노릇만 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서울대 국민윤리교육과 학생 및 졸업생이 대기업의 노동운동과 전교조 결성의 주체로 활약했다는 의견, 1970년대 초부터 독립교과로 도덕이 있었으며, 1977년에 이미 서울대에 국민윤리학과 대학원 과정이 개설됐고, 1979년에는 동국대에 국민윤리학과와 경북대에 국민윤리교육학과가 있어 김 교수의 주장은 사실과다르다는 반박도 제기된다.
한편 현재 진행중인 도덕교육과정의 개정주체는 서울대가 아닌 한국교육평가원 도덕교육연구실이다. 또 도덕교과가 8차 교육과정에서는 국정교과서에서 풀리는 것으로 거의 확정된 상태라, 김 교수의 도덕교과서 생산과정에 대한 우려는 상당부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신정민 기자 jms@kyosu.net
윤리교육을 없애고 철학교육을 하자는 것인가? 그래서 밥그릇을 차지하자는 것인가? 윤리교육을 그야말로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연결지워 없애자고 하는 것은 후안무치한 발상이다. 현행 도덕 윤리교과서를 제대로 검토하였다면 이렇게 안하무인식의 거친 주장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윤리교육은 어용학문이 아니다. 그나마 도덕 윤리교육이 '어용'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은 것은 윤리교육과가 설치되어 배출된 윤리교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자부한다. 저자의 말대로 정권안정을 위해 윤리교육과를 설치했다는 그 학자(정치인)는 어떤 학문을 하였던 인물인가? 누워서 침뱉지 말라.
2. 우리나라는 인성교육이나 도덕 윤리교육을 대신할 수 있는 특정종교나 민족문화가 완전한 입지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고래로 고구려의 경당이나 신라의 화랑도와 같은 교육과정의 필요성이 현재도 유효하다면 도덕 윤리교육외에 어느 교과가 담당해 왔다고 보는가? 윤리교육은 철학이나 윤리학의 하위학문이 아니다. 윤리교육은 윤리학을 가르치는 교과가 아니다. 청소년 문제, 현대사회의 윤리적 제문제, 우리 민족의 고유사상과 현대적 의의, 북한이해와 통일교육 등은 1차적으로 철학이나 윤리학의 영역이 아니다. 도덕 윤리교육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을 학제간의 대화와 교류, 협조로 성과를 이루어왔다.
3. 그 동안 도덕 윤리교육의 행태와 공과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 자성과 개선의 논의가 지속되고 있으며 차기 교육과정에서는 대폭적인 수정이 예상되고 있다. 미리 남의 집 담넘어 돌팔매질할 일은 아닌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