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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 도덕교과 폐지주장한 김상봉 교수 관련 논란
논쟁: 도덕교과 폐지주장한 김상봉 교수 관련 논란
  • 신정민 기자
  • 승인 2005.11.12 00:00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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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획일화 비판 불러

“한국 사회의 발전과 양심을 위해 도덕교과는 폐지해야 한다”

김상봉 전남대 교수(철학)는 신간 ‘도덕교육의 파시즘-노예도덕을 넘어서’(길 刊)을 통해 이같이 선언했다.

김 교수가 말하는 도덕교육의 문제는 정부와 서울대에 의한 교과의 독점, 파시즘 조장으로 금욕과 수동적 개인만을 양성해, 결과적으로 권력관계의 제도화를 견고히 한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김 교수는 전두환 정권이 체제유지를 위해 이규호 교육부장관을 내세워 1981년 다양한 학문을 조립해 서울대에 국민윤리교육학과 개설했으며, 이후 20년간 내용의 변화없이 서울대 교수들만 집필해왔기에 온전한 도덕교육이 이뤄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

김 교수는 현행 도덕교육이 식민지배를 위한 한국 근대교육, 황국신민교육의 본질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개인의 자율적 생각보다는 계급과 사회만을 위해 가르치고 명령한다고 계속 비판한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아랫사람을 위한 교육은 있으나 윗사람에 대한 교육은 없으며, 사회와 국가공동체를 위한 자기부정과 개인적 금욕을 배우지만, 사회가 개인에게 행하는 폭력에 대해서는 침묵한다는 점, 그리고 법, 규칙과 획일적 질서의 절대화만을 강요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도덕 교과서의 집필권이 원칙적으로 개방돼야한다는 것을 전제로 윤리의식을 능동적으로 정립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게 철학적으로 재구성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 교수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윤리교육학계에서는 철학적 지평을 넓혀야 한다는 점에서 동감하면서도 전반적으로 비판적이다. 수도권 소재 대학의 ㅇ 교수는 “특정 학교의 출신여부를 떠나 대부분의 학회에서는 김 교수의 의견에 부정적이며 비판적”라며 윤리교육학자들의 모임 분위기를 전한다.

지방 국립대의 ㅅ 교수는 “김 교수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인문사회과학이 정치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과목이 없을뿐더러 관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김 교수의 경우 현실을 정확히 진단하지 못한 처사”라며, “구석기 시대의 고정관념으로 남의 영역에 시비를 거는 것”이라고 전한다. 이어 지방 사립대의 ㅂ 교수는 “전체나 역사적 맥락없이 특정한 관점에서 음모적으로 해석해 지나치게 편협하고, 오히려 이런 시각이 우리 사회의 문제를 야기시킨다”라고 역비판한다. 

김 교수가 반도덕적인 교육 혹은, 사이비도덕교육 양산의 원인이라고 직격탄을 날린 서울대 국민윤리학과에 재직중인 교수들은 보다 구체적으로 반박한다. 김 교수와 동일하게 칸트를 전공했으면서, 전두환 정권 때 처음 윤리교사로 발령을 받았던 박찬구 서울대 교수는 현장의 경험을 들어, “예전에 관제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전달하기보다, 대다수의 교사들은 고통 속에서 제대로 된 윤리교육을 이끌어갔다”라며 권력의 시녀론에 반박한 후, 도덕교육은 “자기중심적 본성을 극복하기 위한 이타적 행위의 강요는 당연”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박 교수는 “자유주의적 이념에 충실한 미국의 교육이 도덕적 상대주의 조장과 무규범적 학생 양산이라는 부작용으로 최근 인격과 덕 교육으로 선회”했던 점도 첨가한다.

반면 윤리교육학계가 반성과 성찰의 기회로 받아들여야한다는 입장인 정창우 서울대 교수는 “김 교수의 주장은 단순한 기준에 의한 균형성을 상실한 평가로, 파시스트만큼 사고가 경직돼 있다”라고 지적한 후 “자율을 도덕전반에 적용해 노예근성과 국수주의를 양성한다는 평가는 도덕교육이론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못한 결과로, 미성숙한 아동의 경우 사회화와 건전한 애국심이 필요하다”라며 그 한계를 말한다. 그는 퍼터스의 말을 빌려 ‘습관과 전통의 뜨락을 지나 이성의 궁전으로’ 인도하는 것이 윤리교육이라고 강조한다. 여기서 문제는 도덕교육의 내용이 타율적 자기부정이냐, 능동적 자율이이냐에 따라 해석이 사회화나 파시즘으로 갈라진다는 점이다.

초등과정에서는 자기보존과 상호공존의 아름다움을 가르치고, 중등과정은 선 개념에 대한 능동적 성찰을, 그리고 고등과정에서는 현실을 총체성 속에서 사유하게 해야한다는 김 교수의 도덕교육 세 단계론에 대해 박병기 한국교원대 교수는 도덕교육론의 오랜 아포리아를 끌어들여 “습관적 도덕성에서 어떻게 자율적 도덕성으로 질적 비약을 할 수 있게 하는가”라며 반문한 뒤 “도덕교사의 철학적 능력과 동시에 전문가적 관점에서 학생들의 도덕심리 등을 분석·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철학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  

이밖에도 정권의 시녀노릇만 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서울대 국민윤리교육과 학생 및 졸업생이 대기업의 노동운동과 전교조 결성의 주체로 활약했다는 의견, 1970년대 초부터 독립교과로 도덕이 있었으며, 1977년에 이미 서울대에 국민윤리학과 대학원 과정이 개설됐고, 1979년에는 동국대에 국민윤리학과와 경북대에 국민윤리교육학과가 있어 김 교수의 주장은 사실과다르다는 반박도 제기된다.

한편 현재 진행중인 도덕교육과정의 개정주체는 서울대가 아닌 한국교육평가원 도덕교육연구실이다. 또 도덕교과가 8차 교육과정에서는 국정교과서에서 풀리는 것으로 거의 확정된 상태라, 김 교수의 도덕교과서 생산과정에 대한 우려는 상당부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신정민 기자 jm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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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수(16년 윤리교사 2005-11-21 23:54:20
1. 왜 하필 지금 윤리교육 폐지를 주장하는가?
윤리교육을 없애고 철학교육을 하자는 것인가? 그래서 밥그릇을 차지하자는 것인가? 윤리교육을 그야말로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연결지워 없애자고 하는 것은 후안무치한 발상이다. 현행 도덕 윤리교과서를 제대로 검토하였다면 이렇게 안하무인식의 거친 주장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윤리교육은 어용학문이 아니다. 그나마 도덕 윤리교육이 '어용'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은 것은 윤리교육과가 설치되어 배출된 윤리교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자부한다. 저자의 말대로 정권안정을 위해 윤리교육과를 설치했다는 그 학자(정치인)는 어떤 학문을 하였던 인물인가? 누워서 침뱉지 말라.
2. 우리나라는 인성교육이나 도덕 윤리교육을 대신할 수 있는 특정종교나 민족문화가 완전한 입지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고래로 고구려의 경당이나 신라의 화랑도와 같은 교육과정의 필요성이 현재도 유효하다면 도덕 윤리교육외에 어느 교과가 담당해 왔다고 보는가? 윤리교육은 철학이나 윤리학의 하위학문이 아니다. 윤리교육은 윤리학을 가르치는 교과가 아니다. 청소년 문제, 현대사회의 윤리적 제문제, 우리 민족의 고유사상과 현대적 의의, 북한이해와 통일교육 등은 1차적으로 철학이나 윤리학의 영역이 아니다. 도덕 윤리교육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을 학제간의 대화와 교류, 협조로 성과를 이루어왔다.
3. 그 동안 도덕 윤리교육의 행태와 공과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 자성과 개선의 논의가 지속되고 있으며 차기 교육과정에서는 대폭적인 수정이 예상되고 있다. 미리 남의 집 담넘어 돌팔매질할 일은 아닌듯 하다.

seapearl 2005-11-18 14:51:45
학문적 정체성에 대한 질문에 개인적 경험으로 답한 다른 교수들은 비겁하다. 철학의 하위분과로 윤리학이 존재하는 것이고, 윤리학의 실천적 영역에서 도덕이 존재하는 것이지 학문적으로 '도덕교과'는 타당한 이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제 아무리 현장에서 도덕교사들이 교과서대로 가르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주어진 교육과정과 교과서는 도덕교과이지 않았는가? 그 과목의 평가는 객관식 설문지가 아니었던가, 그 실제에서 아무리 저항적인 행동들이 있었다 하더라도 공교육 체제의 교육과목으로서 '도덕교육'이 이 시대에도 여전히 존재해야 하는지 스스로 심각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제 밥그릇 앞에 갈기를 세우는 모습은 학자로서 보여줄 만한 것이 아니다.

bukhak 2005-11-15 01:22:19
잔설이 희끗한 2월을 넘어...3월..설레이는 마음으로 대학에 올랐다. 지금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그때 '국민윤리학'인지, 뭔지 대학에서도 필수였던 것 같은데, 왜냐하면, 중간, 기말시험까지 쳤고, 그 문제를 출제한 교수나, 문제나 둘 다 엄청나게 골때리기 때문이다. 곧 뒤에 언급하겠지만, 아니면, 그 분의 풍자와 야유가 그런 것인지는...지금도 정확히 모르겠다.
윤리라는 내용으로 강의를 담당하신 분이 정경대 쪽 교수였다.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 어둑한 예술대의 긴 강의실 풍경만 또렷할뿐이다. 수강생들이 많아서 그런지, 아니면, 군부독재의 감시가 대학안에 번뜩여서 그런지, 학생들 속에 그런 프락치들이 끼어 있는 걸 눈치채서 그런지, 절제된 톤으로, 지극히 객관적(?)인 내용으로 수업이 진행됐고,그랬나? 그것도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1983년, 대학에 입학해서, 고등학교때처럼 교련교육과 함께 윤리라는 주입교육을 '필수'로 받았다는 사실이니까.
기막힌 것은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였다. 북한의 탱크수는? 인민군수는?...아, 우려했던 내용이 사실로 드러났다. 눈을 의심했고, 재수해서 관악에 있는 대학으로 갈까 생각도 스쳐지나갔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탱크수니, 병사수니..기타 등등. 수치와 ( )를 채우는 문제들로 빼곡한 대학1학년 윤리과목 시험! 혹자는 물을지도 모른다. 혹시, 교련시험을 혼동한 거 아니냐고? 그건 절대 아니다. 차라리 군복입은 교관들은 은연중에 자괴감을 비쳤다. 그들 눈빛에서 '미안하다'는 감정의 교차를 읽어내는 일이 자주 있었다. 그러니까, 교련 과목은 아니다. 차라리, 교련복으로 갈아입고, 각개전투니, 철조망 통과니 이런 걸 하는 게 속 편했다. 도대체 윤리가 뭔가? 그것도 대학에서 교양필수로 이수해야 했던, 내 대학 신입생 시절의 어두운 강의실, 빠다를 한껏 발랐는지, 유창하게 굴러가는 담당 교수의 공허한 말들....정말 실명을 거론하고 싶을 정도다...두 사람 가운데 하나일 것이지만, 실명은 거론하고 싶지 않다. 다만, 그 분은 내가 다니던 대학, 정경대 교수였던 것만큼은 틀림없다.
김상봉 선생이 책을 냈고, 이에 대해 어느 신문에서 홍윤기 선생과 박효종 선생이 찬반 입장을 밝힌 것을 우연히 읽었다. 유치한 것은 그 신문이다. 책을 읽지 않아서, 뭐라고 말하기가 그렇다. 제대로 읽은 분이라면 제대로 된 글을 올릴 수 있겠지만, 그렇지않다면, 이해관계에 따라 俎上에 올려놓고 신나게 칼질 하리라. 사실 그 칼질은 자신을 향해 내리치는 것일텐데, 글쎄, 그걸 안다면 그러지는 않겠지.
국민윤리학의 문제는 과거 교육현장에서 어떻게 가르쳐졌는지, 경험의 복각을 통해 접근할 수 있으리라. 80년대초중반을 대학에서 보낸 나같은 독자나, 국민윤리학과가 대학에 창궐하기 시작한 시점에서부터 어떤 기능과 역할을 수행했는지를 검토하면 의외로 답은 쉽게 나올 것 같다. 가장 큰 문제는, 도대체 '의식'이나 '윤리'라는 것을, (친절한 금자씨 식으로 말한다면) "너나 잘하시면서' 내게 요구한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엄청난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
늘 그랬듯이, 이 문제는 특수한 당파성-학연을 중심으로 한-에 압도당한 이데올로기의 지리한 대리전 양상으로 흘러갈 지 모른다. 이 특수한 당파성을 보노라면, 나는 참 우울하다. 스테레오타입이기 때문이다. 베버가 그랬나? 직업으로서의 학문이라고. 어느 쪽이든 솔직할 필요가 있지만, 나는 81년의 기형적 환경 속에서 군사정권에 의해 인공수정되어 세상에 나온 '쪽'이, 인상비평이나 인신공격적인 태도를 버리고, 정말 한 번 끝장토론해서 철학-윤리가 상생하는 멋진 해피엔딩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거의 불가능한 걸 알지만, 그래도 그것이 북한인민군의 탱크수를 물었던, 83년 어느 4월의 도저한 자괴감을 말끔히 씻어줄 기대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억지를 부려본다.

김나라 2005-11-14 16:41:20
답은 간단하다. 국민윤리과 교수중 북한학, 정치학, 사회학, 심리학 등 윤리학과 무관한 교수들은 자기 집을 찾아가면 된다. 국민윤리학은 윤리학을 전공한 사람들만 남고. 답은 이렇게 간단한데 뭘 그렇게 싸우십니까?

하얀 방 2005-11-14 13:59:03
한국철학회와 국민윤리학회의 끝장토론을 제안합니다. 자기 밥그릇 싸움만 하지말고 다른 나라의 경우 국민윤리교육이 대학에서 학과로 설치되어있는지 윤리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알아보고 만약 국민윤리학과가 비정상적인 뿌리를 가졌다면 뿌리를 도려내고 다시 출발하면 됩니다. 철학교육학과로 재출발하는 것도 한 방법일 듯 합니다. 한국교원대학 교수님의 반론은 별로 설득력이 없어보입니다. 도덕적 행위에 대한 심리적인 차원은 이미 교육학과의 교육심리학이 담당하지 않습니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십시오. 단순히 자기 밥그릇 지키기에 대한 논리적 정당화로 밖에 안보입니다. 그리고 학생운동과 전교조 그리고 노동운동을 한 분들과 국민윤리학과와 무슨 관계가 있죠? 교수님들이 그 분들의 앞길을 비추는 등불의 역할이라도 하셨습니까? 오죽했으면 국민윤리과 출신의 교사들이 국민윤락학과 출신이라는 자조적인 말을 합니까? 국민윤리학과는 새로 태어나야하며 출발은 그간 국민윤리학과가 저지른 과오를 반성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윤리학이 철학의 한 분과이니 이 기준에 맟추어 새롭게 출발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의외로 답은 간단합니다. 거듭 철학계와 국민윤리학계의 이성적인 대화를 촉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