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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위탕과 한국
린위탕과 한국
  • 최승우
  • 승인 2022.03.02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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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캉닝 지음 | 소명출판 | 324쪽

1960~70년대 한국에 불어온 ‘린위탕 열풍’그 의미와 사회성을 들여다보다

한국 속의 린위탕
흔히 ‘세계의 지성’, ‘동ㆍ서문명의 교량’, ‘동양의 유머대사(幽?大師)’라고 불리는 린위탕(임어당)은 루쉰, 후스를 비롯한 동시대 중국 지식인 그 누구보다도 세계적인 명망을 누렸으며, 발표하는 작품마다 대대적인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인물이다. 중국 푸젠(福建)성 장저우(?州)현 판자이(阪仔)의 기독교 목사 가정에서 태어나 미션계 초ㆍ중학교를 거쳐 당시 ‘동양의 하버드대학’으로 불린 상하이의 미션스쿨 세인트존스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 하버드대학과 독일 라이프치히대학에서 각각 비교문학 석사학위, 언어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야말로 당대 최고의 엘리트였다. 중국의 어느 산골 마을 소년이었던 린위탕은 국제적 위상을 지닌 유명 작가가 되어 193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아시아 작가이자 지식인으로 손꼽혔다.

이 책은 린위탕과 한국 문학 사이의 접점을 찾아내고자 했다. 린위탕은 중국문학사와 한국의 중국문학 수용사 모두에 있어서 매우 이채로운 사례다. 쉬쉬(徐?)는 린위탕을 중국문학사에서 가장 다루기 어려운 인물로 꼽기도 했는데, 식민지 시기 한국에서 린위탕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Moment in Peking을 비롯한 여러 작품은 지식인 사이에서 많이 읽히며 지면에서도 종종 언급되었다.
해방기에 이르러 린위탕은 다양한 ‘명찰’을 걸고 대중 미디어를 통해 소개되었다. 1950년대부터는 본격적으로 ‘린위탕 읽기’ 시대의 막이 열린 것이다. 냉전기 한국의 독서사를 논하는 데 있어서 린위탕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기표이다. 그리고 현재 중국에서 ‘중국 이야기를 올바로 말하기(講好中國故事)’, ‘중화학술 외국어 번역(中華學術外譯)’ 등의 분위기가 한창 고조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린위탕이야말로 이러한 작업의 선구자라고 볼 수 있다.

시대를 매혹한 린위탕의 지식, 오늘날의 가치로
오늘날에도 린위탕에 관한 이해와 연구는 여전히 유효하다. 린위탕을 사회적으로 망각하다시피 한 지금의 한국은 이대로 린위탕과 결별할 것이 아니라 그와 접촉의 차원을 높여야 할 때다. 그것은 단순히 최근 몇 년 사이 유행하게 된 ‘킨포크’, ‘소확행’이라는 라이프스타일과 린위탕의 중용주의적인 생활철학 간의 관련성이나 공통점을 검토하는 차원에 그쳐서는 안 된다. 린위탕의 세계성과 복합적인 면모를 고찰하는 데 있어서 린위탕의 한국적 좌표를 살펴보는 작업 역시 매우 중요하다. 린위탕이 텍스트 안팎을 넘나들며 한국 사회, 문화, 문학과 소통한 방식과 그 구체적 양상에 대해서 보다 폭넓고 높은 차원에서의 학술적 관심이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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