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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해외학계흐름③-동남아시아학계의 ‘문화정체성’ 탐구
[기획연재] 해외학계흐름③-동남아시아학계의 ‘문화정체성’ 탐구
  • 조흥국 / 서강대
  • 승인 2001.06.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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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6-25 16:05:22
조흥국 / 서강대·동남아학

‘동남아’(Southeast Asia)란 지역 개념은 19세기 동남아시아에 대한 서구 식민주의 시대에 처음으로 등장했으며 1940년대 초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참가와 더불어 국제정치적으로 정립되었다. 동남아 지역 개념은 ‘태평양’ 지역 개념이 歐美人들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창안물인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태동·정착되었던 것이다. 지역연구로서의 동남아연구는 ‘동남아’ 지역 개념의 발전과 그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식민주의 시대 시작되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시대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 속에서 본격적으로 행해졌다.

국가적 정체성과 문화간의 상호관계가 중앙-주변, 지배민족-소수민족 그리고 이로 인한 문화적 비통합의 갈등과 내적 식민주의의 모순을 안고있는 동남아 국가들에서는 탈식민주의 시대 이후 오늘날까지 중대한 이슈이지만, 최근까지 동남아의 권위주의 정부들은 이 문제에 대한 공개적 논의를 강하게 억제해 왔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이후 권위주의 정부들이 점차 퇴진함에 따라 국가적 정체성과 문화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는데, 이것은 문화적 다양성을 특징으로 하는 동남아 세계에서 필연적인 발전이며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문화와 정체성 사이의 관계 그리고 문화정치의 이슈가 갈수록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것과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최근 동남아 국가들의 학계에서 행해지고 있는 연구 가운데 산업화, 도시화, 환경오염 등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분석들이 눈에 띤다. 이것은 지난 수십년간 대부분의 동남아 국가들에서 정부가 종종 무분별하게 추진하였던 외형적 성장 위주의 개발정책이 낳은 부정적 결과들에 대한 비판적 담론의 일부분이다. 그와 더불어 마약, 폭력, 에이즈, 미성년 노동 및 인신매매와 매춘 등 사회문제를 파헤치고 그 원인으로 정부의 부패와 비효율적인 정책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글도 적지않다. 이러한 변화는 동남아에서도 국가에 비해 사회의 위상이 그만큼 제고되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정치경제와 사회문화의 주체가 서구인들로부터동남아 현지인들의 손으로 넘어간 탈식민주의 시대에 들어서서 동남아연구의 무대에는 문화적 주체의식을 지닌 동남아 현지 학자들의 참가가 현저하게 나타난다. 그들의 동남아연구는 국민국가 형성의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특히 경제학, 정치학, 사회학, 인류학 등의 분야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연구는 초기에는 대부분 서구적 시각과 방법론을 가진 자들에 의해 지배되었으며, 특히 미국의 사회과학자들 중심으로 발전되어 온 근대화론, 저개발론, 후견인-피후견인 관계 등이 사회의 분석에 빈번하게 적용되었다.

1960년대 동남아연구에서 동남아의 토착적 관점을 중시하는 서구 학자들의 연구가 동남아 현지 학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예컨대 태국에서는 농촌 문화의 전통적 가치를 태국의 국가적 정체성의 바탕에 두는 사회경제적 연구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동남아의 권위주의 정부들은 국가적 정체성 문제를 정권의 정당성과 통치의 효율성을 위한 이념적 도구로 중시하여, 어용학자들과 정부의 연구비 지원을 받은 학자들로 하여금 외래적 가치보다는 토착적 가치를 바탕으로 한 전통적 사회구조와 인간관계에 대한 연구를 부추겼으며, 이것은 동남아 국가들에서 ‘신민족주의’ 흐름이 형성되는 것에 기여했다.

한편 서양인들에 의해 도입된 ‘동남아’란 용어는 탈식민 시대 이후 점차 동남아 현지인들에 의해 동남아 세계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수용되었는데, 최근 동남아의 정부들과 시민들에 의해 자신들의 새로운 지역 정체성을 나타내는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 이러한 발전은 무엇보다도 1990년대 중엽 이후 아세안(ASEAN)이 베트남과 미얀마, 라오스 그리고 1999년 4월에는 캄보디아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동남아 10개국을 다 포함하는 기구가 된 것과 관계를 갖고 있다. 즉 동남아 사람들은 이제 동남아 전체를 포괄하는 아세안이란 조직을 통해 ‘동남아’ 지역에 대한 더욱 구체적인 공속의식을 갖게된 것이다. ‘동남아’ 개념에 대한 이러한 인식 전환은 동남아의 사회과학자들 사이에서 동남아 지역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개념정립의 모색으로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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