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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강의시간: 학제 간 교류를 위한 품앗이
나의 강의시간: 학제 간 교류를 위한 품앗이
  • 최혜영 전남대
  • 승인 2005.10.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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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영 전남대 사학과 교수 ©

중세대학은 하나의 집단(uni-versity)이었다. 한(unus) 방향 혹은 목적(vertos)을 위해 모인 동업조합이란 뜻이다. 그런데 오늘의 대학을 익살스럽게 ‘다중 목적의 집단(multi-versity)’으로 부를려고 하는 사람이 있는 듯 하다. 순수 인문학적 이론에서 현실에 직접 응용되는 응용과학에 이르기까지 다양성이 있는 종합 대학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목적도 여러 가지이다. 순수 학문에 대한 호기심에서 취업을 하기 위한 전략 등이 그것이다. 


교과과정에서 필수과목이 거의 사라지고 선택과목으로 바뀌다보니 학생들의 선택폭도 더 넓어졌다. 학기 초 수강변경기간 이전에 이런저런 과제물을 부과했다가는 적지 않은 학생들이 달아나고 없는 경우도 있다. 또 취업 준비 때문에 편법이 행해져서 대학교육이 핵심을 놓치는 경우도 있다. 사범대학의 경우에는 교원임용고시에 대비하여 일부 수업을 학원같이 주입식으로 운영하는 곳도 있다는 소문도 있다. 암기식으로 외우는 교육의 맹점은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탐구의 기회가 줄어들고 현실에 대한 반성의식이 결여되기 쉬운 것이다. 

나는 다양한 목적이 함께 하는 이른바 ‘다중 목적의 집단(multi-versity)’의 대학이 결국은 한 집단(uni-versity)로 귀결되어야 한다고 본다. 다양한 학문과 수학(修學)의 목적이 하나의 지향점, 즉 인간이나 자연을 보다 성숙하게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향으로 환원되어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를 잊어버린다면 대학은 직업 훈련소가 되어 기계적 지식을 갖추고 자신의 출세와 안일에만 몰두하는 인간을 양산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담당하는 역사는 인문학에 속한다.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인문학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학문’이라는 의미로 풀 수 있다. 역사의 문전에 기웃거린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역사가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현재의 눈으로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라는 말쯤은 들어서 알고 있다. 크로체가 말한 것처럼 연대기적으로 사실을 나열한 ‘죽은 역사’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과거를 돌아보는 ‘살아있는 역사’를 가르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수업 첫 시간에 역사에 대한 기호를 물으면 상이한 대답을 듣게 된다. 재미가 있어서 좋아한다는 것과, 너무 지루하게 배워서 싫다는 것 두 부류다. 교과서는 같은데 결국 역사교사의 역할이 결정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아마 싫어하는 학생들은 ‘죽은 역사’를 가르치는 선생님을 만났던 것이리라.

실제 수업에서 나는 내 수업이 잘하는 것인지, 학생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에 대해 늘 약간의 긴장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학생들의 강의평가를 볼 때 마다 마음이 떨린다. 이제까지 내 강의에 대한 평가를 종합해보면 한결같이 ‘매우 열성적’이라고 한다. 잘 가르치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실제로 좋은 강의를 하고 싶은 마음만큼은 커서 열심히 가르친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고등학교에서 처음 교편을 잡았을 때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도 고마운데 월급까지 주니까 참 신이 났다. 나중에는 물론 월급이 더 많았으면 했지만.

그런데 수업은 그냥 열심히 하는 것만 능수가 아니고 학생의 상태를 잘 파악해야 하는 것을 점점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 백번 이긴다’는 말을 늘 가슴에 새긴다. 이것은 전쟁에만 적용되는 교훈이 아닌 것이다. 학생들은 곧잘 지루해한다. 영국의 한 학교의 앙케이드 조사를 본 적이 있는데, ‘학생 70% 정도가 수업이 시작하면 바로 시계를 보기 시작하고 끝나기만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아마도 영국의 수업방식이 요즈음 이른바 ‘튀는’ 신세대에 잘 적응이 안 되기 때문인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어떤 분은 뛰어난 학자이고 학생들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지만 가끔 그 수업이 폐강되는 경우도 보게 된다. 요즘 학생들의 편의주의와 함께 그런 학생에 대한 파악이 부족했다는 자책도 피할 수가 없게 된다.

나는 학생들의 집중력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미리 수업 장면의 대강을 그려 본다. 특히 도입 부분을 산뜻하게 주의를 집중시킬 수 있도록 구상하고, 또 대략 15분마다 내용과 관련된 간단하지만 재미있는 이야기거리를 마련한다. 지루한 설명이 계속 이어져야 할 경우에는 반드시 흥미로운 예를 찾거나, 아니면 질문을 던져서 학생들이 참여하게 하여 긴장감을 높여준다. 전공일 경우에는 학생 발표수업을 많이 한다.

내 수업 시간에는 노트 필기가 거의 필요 없는 편이다. 노트 필기를 한다고 오히려 중요한 핵심을 놓치기도 하는 것 같아서 노트 필기할 내용은 미리 홈페이지에 올려놓아서 받아오게 하고 수업 시간에는 경청하게 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머리를 숙이고 있으면 졸고 있는지 뭘 하고 있는지 몰라서 항상 칠판 쪽을 주목하게 한다. 따라서 강의 후에는 학생들이 미리 받아온 기록된 내용 중에서 핵심되는 것들을 학생들과 함께 보면서 요약해 줄 때도 있다.

요즈음 학생들은 비주얼 세대에 속하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특히 서양사는 우리에게 생소한 데가 있으므로 참고해야할 사진이나 그림, 지도 자료집 등이 많다. 그래서 학습관련 혹은 역사영화관련 비디오나 DVD도 많이 구해놓고 있는데, 실제로는 시간이 부족하여 잘 활용하지 못하는 편이다. 교양과목일 경우 한 학기에 한두 번 필요한 테이프 십 수개를 2분에서 5분 정도 필요한 부분을 빼내어 편집하여 보여주기도 한다. 지난번 학기에는 한 전공 수업에 대학 부설 가상대학의 수업보조 장치를 이용하여 온라인에 여러 학습 자료들을 올려놓고 학생들에게 스스로 공부하게 한 뒤 퀴즈를 보았다. 그랬더니 수업 시간에 미처 다 다루지 못하는 내용을 소화하게 될뿐더러 학생들이 스스로 찾아서 공부하는 습관도 기르는 효과가 있었다.

지금 내게 간절히 바라는 희망사항이 있다면 그것은 ‘인적 은행’의 활용이다. 역사는 문학 철학 지리학 사회학 심리학 법학 경제학 등을 벽돌로 삼아 집을 짓는 종합학문이기 때문에 학제 간 교류와 그에 따른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다. 파르테논 신전이나 고딕양식에 대해서 배운다면 건축학 전공자를 모셔와 듣고, 로마법을 배울 때는 법학 전공자를 모시고, 심리학 전공자로부터는 심성사에 관한 것을 듣도록 하는 것이다. 지난 학기에 딱 한번 초빙해보았는데 학생들의 반응이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경비다. 내 옆의 한 교수님은 과목의 특성상 전문가 네 분을 초빙하셨는데, 개인적으로 경비를 지출하시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이번 학기에는 두 번으로 줄였다고 하셨다. 일회성이 안 되도록 하기위해 개인이 계속 주머니를 털 수가 없다. 또 그 경비를 공적으로 부담한다 치면 지속적으로 그것도 광범하게 강사초빙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액수가 커져서 현실성이 없다. 그래서 우선 같은 대학 교수들 사이에 가능한 분야끼리 ‘품앗이’ 할 수 있는 제도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학제간 품앗이’를 위한 인력명단(pool)을 ‘인터넷(on-line)’으로 운영하여 수요와 공급을 연결시키는 것이다.

학생들의 지나친 편의주의도 칭찬할 것은 못되지만 그것을 탓하며 역행하거나 또는 거기에 편승하여 학습의 량을 경감시키는 것 모두 바람직하지 못한 노릇이다. 이제 교수법이나 학생 의식 모두가 함께 높아져야 할 때이다. 세태에 적응하는 가운데서도 사회적 반성의식을 담은 무게 있는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지혜를 모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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