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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숲으로
문학의 숲으로
  • 최승우
  • 승인 2022.01.07 15: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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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민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564쪽

문학의 숲을 향한 지극한 응시
시대적 고뇌와 반성적 사유가 빚어낸
17년 만의 성민엽 다섯번째 평론집

『문학과사회』 동인이자 문학평론가 성민엽(서울대학교 중문과 교수)의 새 비평집 『문학의 숲으로』가 2021년 12월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저자는 198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비평 활동을 시작한 이래, 산업화 시대에 문학을 익힌 세대로서 한국 문단의 비판적 성찰을 수행해왔다. 1980년대 언어와 현실의 관계를 과학적 방법론의 시각으로 재구성한 『지성과 실천』에서 출발해, 당대 사회와 언어의 문제적 상황과 연관성을 해명해낸 『문학의 빈곤』을 지나온 성민엽은,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통해 198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 한국 문학의 굵직한 흐름을 조명하며 ‘진정한 문학’에 대한 반성적 사유에 도달한다. 소천비평문학상, 현대문학상, 팔봉비평문학상 등의 수상 이력은 40년간 끊임없이 문학의 자장에 머물고자 했던 그가 이뤄낸 성취일 것이다.
17년 만에 새로 묶은 이번 비평집에서는 전작에서 주제의 통일성을 위해 제외한 시론과 소설론부터 이후 새로 쓴 글까지 함께 엮었다. “문학의 숲으로”라는 제목은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눈 오는 어느 날 저녁 숲가에 멈춰 서서」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문학의 숲으로 가고자 하는 의지와 실천은 그곳에 도달하리란 결과를 담보하지 않는다. 숲으로 형상화된 초월적 자연 앞에서 지극한 고양과 황홀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황혼이 내린 후 날개를 펴는 올빼미(부엉이)를 마주해야 한다. 미네르바에게 밤에 깨어 있는 올빼미는 지혜의 상징이었으며, 헤겔은 올빼미를 세상이 어둠에 휩싸일 때 필요해지는 철학에 비유했다. 저자는 이를 다시 문학의 숲으로 가져온다. 그에게 어두운 숲속에 나타난 올빼미는 창작이 이뤄진 자리를 재차 살피고 다지는 비평이며, 루쉰의 부엉이가 그랬듯이 어둠의 세계에 저항하는 악성(惡聲)의 주인이다. 문학비평에 주어진 몫은 헤겔의 올빼미, 루쉰의 부엉이, 그리고 미네르바 본래의 올빼미가 문학의 숲에서 공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제1부 시에 대하여〉는 김수영, 김지하, 최하림으로 시작해 김행숙, 오은으로 이어지는 스물한 편의 시인론을 통해 한국 시단의 주요한 흐름을 살펴본다. 「부정성의 언어, 그 사회적 의미」는 고통과 부정의 언어를 구사함으로써 현실의 거짓 긍정을 전복시킨 기형도의 짧았던 생애를 기록한다. 김혜순, 황인숙, 김행숙의 시인론에서는 자유분방한 상상력과 치열한 언어로 시적 독자성을 획득해온 여성 시인의 계보를 엿볼 수 있다.
〈제2부 소설에 대하여〉는 열여섯 편의 소설론을 매개로 한국 소설의 좌표를 가로지른다. 최인훈, 이청준, 김원일 등 격동의 시대에서도 탐색을 멈추지 않은 작가들과 놀라운 전위의 감각을 보여주었던 홍성원, 박상륭, 이인성을 통해 당대 소설가의 동시대적 문학에 대한 고민을 가늠해본다. 「새로움의 진정한 의미」는 1990년대 중·후반 젊은 작가들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제시한다. 첫 출현부터 이미 낯선 존재의 징후를 내비친 은희경과 배수아 소설론에서 여전히 유효한 문학의 현재성을 발견할 수 있다.
〈제3부 비평에 대한 관찰〉은 김인환, 김병익, 김주연 등 한국 문학비평을 이끌어온 이들의 궤적을 훑어보며 문학비평이 온당히 수행해야 할 역할을 되묻는다. 특히, 「김현 혹은 열린 문학적 지성」은 우상화되었다는 지적을 받아온 김현 비평에 대한 정당한 이해와 비판적 해석을 도모한다. 2000년 서울국제문학포럼에서 진행된 가라타니 고진의 발제에 대한 토론, 그리고 영화 「라쇼몬」을 다룬 마지막 글은 비단 문학의 영역에 국한하지 않는 비평의 자리를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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