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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연약함이 공간을 관통한다
꽃의 연약함이 공간을 관통한다
  • 김재호
  • 승인 2021.12.26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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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지음 | 정은귀 옮김 | 민음사 | 420쪽

이미지즘에서 시작하여 가장 일상적인 언어로 최고의 시적 경지를 보여준 20세기 미국 시인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의 시선집이 민음사 세계시인선 53번 『꽃의 연약함이 공간을 관통한다』, 54번 『패터슨』으로 출간되었다. 시인으로서는 최초로 ‘내셔널북 어워드’를 수상했으며, ‘퓰리처상’ 등을 받았다. T. S. 엘리엇, 에즈라 파운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비트제너레이션에 큰 영감을 주었던 윌리엄스의 시집이 국내에 소개된 것은 처음이다.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대를 졸업하고 독일에서 전문의 훈련을 받은 윌리엄스는 이후 미국으로 돌아와 평생을 고향 러더퍼드에서 소아과 의사로 일하며 시를 썼다. 낮에는 진료를 하며 사람들을 ‘보는’ 일을 했으며, 저녁에는 일상의 풍경과 사람들을 ‘관찰하여’ 시를 썼다. 압축적이고 구체적인 시어로 실제 삶을 포착했던 윌리엄스는 당시 유럽으로 떠난 다른 시인들과 달리 낙후된 고향에서 직업의사로서 삶의 자리를 지키면서 초라한 고향 사람들을 떠나지 않았다.

시인으로서 윌리엄스의 성취는 미국의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을 살아 있는 언어로 그림 그리듯 생생하게 그려냈다는 데 있다. 정은귀 영문학자는 “화가들이 색채의 해방을 꿈꾸었다면 시인윌리엄스는 언어의 해방, 형식의 해방을 꿈꾸었다.”고 설명한다. 윌리엄스의 시가 낮은 자리로 향하는 이유는, 의사로서 소명의식을 갖고 아픈 사람들을 돌보기 위해 끊임없이 대화하고 찾아가고 또 그들이 처한 환경까지 끊임없이 살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의사로서 예리한 시선인 동시에 시인으로서 외로운 관찰자의 시선이다. 윌리엄스는 감정의 주관성을 배제하여 오히려 거꾸로 독자에게 슬픔이나 비애의 감정을 스스로 느끼게 만드는데, 그래서 객관주의(Objectivism) 시인이라고도 불린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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