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신인문학상 당선작 © |
중앙일보는 지난 9월 20일 ‘2005중앙신인문학상’ 시·소설·평론 세 부문 당선작을 발표했다. 문제는 시부문의 당선작 ‘만능사 제2호점’이 지난 5월 23일자 경희대 ‘대학주보’에 실린 전국대학생문예현상공모 시부문 가작으로 뽑힌 작품과 똑같다는 데 있다.
실제로 이 작품은 1연 첫 시어를 ‘회기동수목원’에서 ‘홍릉수목원’으로, 3연 세 번째 문장에서 ‘잎을 돌돌 말더래요’를 ‘잎을 돌돌 말아 이른 동면에 들어갔어요’로 수정한 부분을 제외하면 동일한 작품이다. 중앙일보는 투고작품이 ‘신문·잡지·단행본·사이버공간 등에 발표된 적 없는 순수한 창작물이어야 한다’로 엄격히 제시하고 있어, 중앙일보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당선취소 논란이 일고 있다.
▲경희대 대학주보 당선 가작. 위의 중앙신인문학상 당선작과 동일한 작품이다. © |
대학주보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당선 소식을 접한 직후 당선자가 중앙일보에 연락을 취해 사실을 알렸으나 신문사로부터 문제없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전한다. 즉, 중앙일보가 이 사실을 알고서도 당선작으로 뽑았다는 얘기.
이를 두고 중앙일간지와 대학주보의 위상에 따른 프로와 아마추어간의 경계에서 이뤄진 일이기 때문에 충분히 용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문제의 작품은 분명 신문과 인터넷에 기발표된 작품이기 때문에 규정위반은 너무나 명확하다”라는 것. 또 다른 이는 “대한민국 3대 중앙지에서 대학문예공모 가작 당선작을 알고도 뽑았다는 건 말도 안된다”라며 “뽑고 나서 골치 아프니까 괜히 면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독자들의 이런 항의에 대해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는 “교내 행사인 지라 등단이라고 볼 수 없어 뽑았다”라고 밝혔다고 한다.
이런 사실이 인터넷에 알려지면서 문제는 더욱 불거지고 있는 중이다. “전국규모의 전통있는 대학문예공모 당선작이 교내행사라는 건 말도 안된다”라는 것. 이를 확인하기 위해 중앙일보에 전화를 걸어봤으나 담당자는 “휴가중”이었다.
그런가 하면 계간 문학동네도 이번 가을호에 신인상을 발표했다. 시부문만 당선작을 발표하고, 소설과 평론부문은 응모작품들의 함량미달로 당선작을 내지 않았다. 문제는 4백92명의 응모자 중에 당선된 시부문이다.
심사위원이 당선자의 스승이라는 데서 의문은 시작된다. 문학동네 게시판에는 “남진우, 김혜순님 자기 제자들을 등단시키는 일은 그만 좀 하시죠. 낯뜨겁지 않으신가요”라고 글이 올라와 있다. 당선자는 김혜순 서울예대 교수의 학부 제자다. 이에 더해 작품의 분위기가 스승의 시풍과 닮았다는 점도 제기된다.
강한 시어와 탈모던적 해체의 분위기, 이미지들의 운용에서도 상당한 영향을 받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게 문제제기를 하는 이들의 입장이다. 이에 관련해 문학동네의 한 관계자는 “당선자는 학창시절에 소설을 썼고, 심사자는 당선자가 누군지 잘 알지도 못했다”라고 일축한다.
문학상에서의 중복투고와 심사에 대한 잡음은 예전부터 있어왔다. 신춘문예의 경우 수년 동안 같은 작가가 같은 신문사에서 심사를 맡고, 대부분 대학 교수들로 구성된 문예지의 편집위원이 그대로 심사를 맡는다는 점에서 공정하지 못하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하지만 이를 투명하게 하려는 노력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요즘처럼 문학의 위기가 지겹도록 운위되는 시기에, 등단작의 상금만 치솟고 등단한 이들의 작품의 질이나 등단과정에 대해서는 사회적인 여론이 바닥세를 보이는 것은 보기에 좋지 않다.
우선 자기 인맥 밀어주기의 의혹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상피제’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아직도 ‘뼈를 추려 붓을 삼고, 살을 펴 종이삼아, 피를 잉크삼아 시를 쓰는’ 곳곳의 이름없는 순수한 문청을 위해서 말이다.
신정민 기자 jms@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