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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 '사기열전' 번역 비평에 관한 斷想
반론: '사기열전' 번역 비평에 관한 斷想
  • 김경동 성균관대
  • 승인 2005.09.25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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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동(성균관대 중문학과 교수)

국내 고전번역에 관한 비평이 교수신문에 의해 기획ㆍ연재되고 있다. 올바른 서평문화가 제자리를 잡지 못한 현실을 감안할 때 학계의 긍정적인 평가와 폭넓은 지지를 받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기획의 본래 취지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강한 아쉬움을 느낀 것은 9월 5일자 교수신문에 사마천의 󰡔사기열전󰡕 번역 비평기사가 게재되고 나서였다.

󰡔사기열전󰡕 번역 비평에 관해 필자도 추천 의뢰를 받았으나 이에 응하지 않은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첫째는 비평대상인 4종의 번역물 중, 필자가 공동역자로서 참가한 것이 있으므로 비평에 참여한다는 것이 근본적으로 불합리할 뿐만 아니라 객관성을 인정받기 어렵다는 한계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이유는 취재 방식의 부적절함에 있었다. 필자가 취재 의뢰를 받은 것은 토요일인 8월 27일 오후였으나 회신 기한은 그 다음 주 화요일이었다. 그리고 간단한 전화 통화에 이어 메일로 받은 취재 내용은 단순한 앙케이트가 아니라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보고서 차원이었다. 원문에 대한 충실성과 정확성, 오역과 축약 혹은 누락된 구절의 유무, 각주의 특징 및 사기의 어감과 문학적ㆍ생동적인 문체의 구현 여부, 그리고 각 번역서의 차별성과 先 번역서와의 비교를 통한 ‘번역의 정당성’ 획득 여부, 아울러 미해결의 쟁점 등과 함께 각 사항에 대한 근거와 예문 제시가 설문 내용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같은 설문내용은 가치있는 좋은 기사를 게재하겠다는 원대한 포부의 표현이므로 높이 평가될 만 하다. 그러나 자료를 제공해 주지도 않은 채 단지 2~3일의 시간만을 허여한 취재방식은 원대한 포부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했다. 물론 예외도 있겠지만, 이러한 상황은 필자의 경우만이 아니라 친분있는 몇몇 추천위원에게서도 확인된 사실이다. 여기에서 고전번역 비평에 관한 교수신문의 기획연재가 얼마나 다급하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촉박한 시간에 심도있는 설문내용에 부응하는 비평이 되기 위해서는 4종의 번역서를 모두 구비하고 있으면서 평소 번역의 질에 대한 비교ㆍ분석을 꾸준히 진행한 사람만이 비평의 자격이 있게 된다. 필자가 취재 의뢰에 응하지 못한 두번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번 󰡔사기열전󰡕 번역 비평에서 가장 기본적인 문제점은 비평 대상의 선정에 있다. 공정하고 타당한 평가는 대상 선정의 기준이 동일함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이번 비평 대상 중 3종은 완역본인데 반해 이성규 역은 편역본이다. 서문에 밝혀져 있듯이 ‘편역자가 가장 숙지하고 있는 부분’만을 골라 편역하고 재구성한 것이다. 따라서 총70권의 사기열전 전체를 완역한 3종과 그 중 22권(「龜策列傳」과 「日者列傳」은 발췌번역)만을 번역한 이성규 역본을 비교ㆍ평가한다는 것은 불합리하다. 비평대상으로 선정된 3종 역본 이외에도 󰡔사기열전󰡕 완역본으로는 최인욱ㆍ김영수 공역, 김병총 역, 이상옥 역, 박일봉 역, 권오현 역 등 상당수에 이르는데 기사 서두에 “국내에 사기열전 완역본은 3종 뿐이다. 거기에 이성규 교수가 재구성한 사기 번역본을 더한다면 검토할만한 것은 4종 뿐”이라고 한 것은 무엇을 근거로 했는지 의아스럽다. 적지 않은 완역본 중 최소한 최인욱ㆍ김영수 공역의 󰡔사기열전󰡕(동서문화사, 1975)이 비평 대상에 포함되었어야 했다. 그 서문에 의하면 최인욱ㆍ김영수 공역은 국내 최초의 사기열전 완역본이기 때문이다. 최근 󰡔삼국지연의󰡕 번역 비평에서 이문열 역 등의 평역류도 비평 대상에 포함시켰으니, 동일한 기준을 적용한다면 김병총 평역의 󰡔사기열전󰡕(집문당, 1994)도 비평대상의 말석이나마 차지했어야 마땅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부적절한 취재방식 하에서 작성된 기사가 얼마나 정확하고 믿을 만한가라는 점이다. 필자가 이같은 상황에서 취재에 응했다면 소장하고 있는 일부 역본에만 의존해, 그것도 두세 편의 일부분만을 비교한 단편적인 평가가 불가피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기사 중에서 엄밀성이 결여된 부적절한 평가 내용을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화식열전」 중의 ‘山西’에 대한 번역을 비교하면서 김원중 역과 남만성 역은 아무런 주석없이 ‘山西’로 번역하여 현재의 중국 행정구역인 ‘山西’로 오해할 가능성이 있는 반면 이성규 역은 ‘殽山’이라고 밝혀 독자의 오해를 예방했다고 평가되었다. 그런데 정범진 외 역 󰡔사기열전󰡕(이하 까치본)에서는 전국시대와 秦漢 시대에는 殽山 혹은 華山 서쪽 지역을 통칭한다는 상세한 각주를 달고 있으니, 올바른 비교평가라면 까치본이 당연히 언급되어야 했다. 또 「商君列傳」 冒頭의 ‘刑名之學’에 대해 남만성 역과 이성규 역은 ‘刑名의 學’이라 표현했는데, 김원중 역에서 ‘법가의 학문’으로 번역한 것은 지나친 의역이라고 비판되었다. 그러나 까치본 󰡔사기열전󰡕에서는 원문을 살려 ‘刑名之學’이라 표현하고 4행에 이르는 각주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으니, ‘刑名의 學’이라고만 번역한 남만성 역과 이성규 역보다도 충실한 번역이다. 이 부분에서도 까치본이 언급되어야 공정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심각한 부분은 까치본 「伯夷列傳」에서 “어디 그뿐이랴!”라는 구절을 넣었는데 이는 원문에는 없지만 백화 번역본이 삽입한 것을 그대로 따랐다는 지적이다. 원문을 확인해 보니 “若伯夷叔齊, 可謂善人者, 非邪? 積仁絜行如此而餓死! 且七十子之徒, 仲尼獨薦顔淵爲好學. 然回也屢空, 糟穅不厭, 而卒蚤夭.”라는 부분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且’는 도대체 어떻게 번역해야 한단 말인가? ‘또한’ 혹은 ‘뿐만 아니라’고만 해야하고 “어디 그뿐이랴!”라고 번역하면 안된다는 말인가? 백이ㆍ숙제와 안회의 두가지 경우를 예로 들어, 天道는 공평무사하고 항상 善人 편에 서 있다(“天道無親, 常與善人”)는 속설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 사마천의 의도였다. 여기에서 ‘且’는 백이ㆍ숙제와 같은 善人이 인덕을 쌓고 행실을 고결하게 하였음에도 굶어 죽었다는 앞 대목과 공자에게 好學으로 칭찬받은 안회가 평생 빈곤으로 고생하다 요절했다는 뒷 대목을 점층적으로 연결하는 허사이다. ‘且’를 따로 번역하지 않고 빠뜨린 이성규 역은 소홀했으며, “또(한) 공자는 ~ 칭찬하였다. 그러나 안연은~ 죽고 말았다”라며 ‘且’로 연결되는 뒷 대목을 중간에 끊은 김원중 역과 남만성 역은 ‘且’의 기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정확한 번역이다. 따라서 ‘且’를 “어디 그뿐이랴!”라고 번역한 까치본이 사마천의 의도를 가장 정확하고 생동감있게 옮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원문에도 없는 말인데 백화 번역본이 삽입한 것을 따랐다는 지적은 고문에 대한 기본소양의 부족 때문이거나 원문을 확인해 보지 않은 불찰 때문일 것이다.

까치본 󰡔사기󰡕는 사기 전체를 완역한 것이다. 근40명에 이르는 역자가 참여한 공동 작업이므로 문체의 불일치나 번역능력 상의 편차가 부득이 존재함은 인정된다. 그러나 까치본 󰡔사기열전󰡕 전체를 백화 역주본의 중역으로 평가하는 것은 편견이다. 중화서국본 원본 󰡔사기󰡕와 日人學者 瀧川龜太郞의 大作 󰡔史記會注考證󰡕을 저본으로 삼아 비교ㆍ대조하고 일본ㆍ중국ㆍ대만과 국내의 번역성과물을 두루 참고한 충실한 번역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사기열전󰡕 번역본 중에는 일역본의 중역은 물론, 심지어는 사기 원문도 제대로 보지 않고 주로 기존의 국역본에 이리저리 윤문만을 가한 듯 하다는 혐의를 받는 것도 존재한다.

이 글의 목적은 공사다망한 중에서도 취재에 응한 추천위원들을 탓하는 데에 있지 않다. 고전번역의 중차대함을 감안했을 때 그에 대한 비평 또한 그만큼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이 점을 간과한 교수신문의 부적절한 취재 방식이 개선되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취재 방식 외에도 기자의 주관에 의해 평가내용이 취사선택되는 짜집기식 글쓰기도 재고되어야 할 점이다. 이러한 글쓰기 방식으로 인해 마땅히 반영되어야 함에도 누락된 평가내용이 있을 수 있으며, 斷章取義에 의해 추천위원의 원의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의혹을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수신문의 고전번역 비평이 본래의 취지와 의미를 극대화하여 국내 서평문화의 모범적 선례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 면에서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정당한 기준에 의해 비평대상을 누락없이 선정하고, 다수의 관련 전공자들에게 추천받은 소수의 전문가에게 충분한 시간과 완벽한 자료 제공 등의 적절한 예우를 해주어야 하며, 그리고 단장취의식 짜집기가 배제된 실명제 서평형식을 취해야 한다. 최소한 이런 후에야 책임성과 전문성을 확보한 가치있는 고전번역 비평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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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록 2005-09-28 13:58:15
이른바 까치본 <<사기열전>> 번역에 참여 하였던 사람이다. 당시 <<교수신문>>에서 까치본 <<사기열전>>에 대한 평가를 읽고, 최소한 나나 내가 알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번역의 과정을 생각하면 이러한 평가는 상당히 억울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었다. 까치본 <<사기열전>>은 많은 번역자들이 참여하여 어투가 일관되지 않긴 하지만, 다른 사람의 번역본을 돌려가며 교정하는 등 최대한의 상호검토 작용도 거쳤던 작품이다. 당시에 <<교수신문>>에 반론을 재기할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현재 한국의 학계가 왠만하면 문제 일으키지 않고 서로 자기 자리 보존하자는 분위기가 문제라고 생각해왔으므로, <<교수신문>>을 비판하여 혹 이러한 기획자체를 폄하하게 될까 싶어 그냥 넘어가려 하였던 바 있다.
하지만 윗 글을 읽고 보니, 이 자리를 빌어 교수신문에 제기할 문제가 두 가지 있다.

첫째, 번역문에 대한 평가를 내릴 대상 선정의 기준 자체는 논하지 않기로 하자. 그래도 이미 번역평가 대상 문헌이 결정되어 있는 상태에서 왜 한 시를 다투는 기사문도 아닌 것을 그렇게 급하게 진행하느냐 하는 점이다. 하다못해 아무리 급박한 학술지 게재 논문에 대한 심사도 일주일 정도 여유는 주는데, 최소 네 종류의 방대한 서적에 대한 평가문을 이틀 사흘 사이에 써 달라고 하는 측이나, 그렇다고 그런 평가문을 써주는 측이나 다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 점에 있어 교수신문은 앞에서 지적한 분의 의견을 수용하여, 앞으로 좀 더 차분하게 진행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둘째. 교수신문이 자신의 기사에 대한 반론문을 게재해 주는 것은 좋은 태도이지만, 문제는 그것을 게재하는 것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여기에서 지적하는 문제 -예컨대, 평가단선정 및 평가단으로부터 평가문을 취합하는 시간여유, 번역자 자신이 번역 평가단에 포함되는 모순의 문제 등-에 대해 교수신문의 관점을 밝히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그렇게 처리하게 된 이유라거나, 이러한 지적을 향후 어떻게 수용할 것이라거나 하는 점들을 교수신문이 밝혀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