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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은 '意象과 誇張', 두보는 '신축성과 彈性'
이백은 '意象과 誇張', 두보는 '신축성과 彈性'
  • 류성준 한국외대
  • 승인 2005.09.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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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조언: 이백과 두보, 어떻게 읽을 것인가

▲두보 ©
唐代의 대표시인으로 이백과 두보를 꼽는 데는 누구도 이의가 없을 것이다. 송대 嚴羽가 지적한 바, “이백과 두보의 문집으로 가까이 살펴보기를 오늘날 경서를 연구하듯 하고 난 후에야 성당의 유명한 문인을 널리 배우고 마음에 새기어 오래도록 하면 자연히 오묘한 경지에 들게 된다”라고 한 것처럼 둘은 시학의 대표적인 사표로 삼아도 될 것이다.

이들을 살펴봄에 있어 핵심은 자구활용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인데, 이백에서는 意象과 誇張의 양면을, 두보에 있어서는 시어가 지닌 구사상의 신축성 즉 彈性의 묘미, 시의 結構 기법 등을 파악해봐야 할 것이다. 

▲술취한 이태백 ©
시의 표현에 있어서 시만이 지닌 의식의 함축미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은 그 시인의 품격을 되돌아보게 한다. 중국시에서의 의상의 묘법은 다각적인 관념의 테두리 안에서 (이론적으로 체계화되지 않고 흔히 풍격과 혼융되어 다루어졌음) 작시 상에 강구돼 왔다. 시가 속의 의상의 미를 정의하자면, 精微하거나 농축된 언어를 통해 상징과 암시라는 연상작용을 나타내는 것일텐데, 이백 시의 의상적인 면은 거침없는 풍격과 경악케 하는 표현법에서 먼저 살펴볼 수 있다. 즉 이백이 비유한 사물, 경물 자체를 놓고 볼 때,

①활을 당겨 고기를 쏘니/ 긴 고래(長鯨)가 마침 우뚝 솟도다/ 이마와 코는 오악을 닮았는데/ 파도 일으켜서 구름 번개를 뿜도다/ 수염이 하늘을 덮었으니/ 어찌 봉래산을 보리오! //(‘古風’ 其三) ② 큰 고래의 흰 이는 설산 같구나. ③ 푸른 산 하늘에 찌르듯 솟아 푸르러/ 우뚝 고래의 이마 같도다.

여기에서 이백은 鯨魚라는 신화에 나오는 동물을 차입해 경이적인 묘사를 하고 있는데 ①의 경우에 長鯨의 자태와 그 웅대한 기풍을 그리면서 자신의 의식상의 흐름을 환상과 결부시키고 있는 것은 초탈적인 의식과 도가풍적인 仙味라고만 할 것인가.

시의 맥이란 감지할 수 없는 작자만이 갖는 미감을 지녔으려니 독자와 연구자의 분석력으로 어이 다 간파할 수 있으랴마는 이백의 시적 의상만이 갖는 묘법이라고 본다. ②, ③의 경우도 ①과 같은 용례라 할 것이다. 범인의 意界에서 느낄 수 없는 현실 세계에 대한 관조는 엘리어트가 말한 바, 시인의 심중에서는 범인의 혼란한 의식도 완정한 형체의 신경지로 창출시킬 수 있다는 표현과 상통된다 하겠다. 이처럼 시의 의상은 다양하게 경우에 따라서 역설적으로 형상화되어 독자에게 보여 지는 것이니 이백의 시에서 실로 대표적인 맛을 느낄 수 있다.

두보는 詩聖이니 만큼 군더더기 같은 말은 생략하고 언어의 신축성 즉 탄성으로 시어구사의 自在하는 역량을 보여 주는 경우라 할 것이다. 이 구사는 시적 의상을 雅와 俗의 경지로 거침없이 왕래하는 능력을 보여 준다.

그리고 소재에 따라 詩趣가 다르게 표현되기도 한다.  두보의 詩藝를 말하자면, 먼저 그의 練字에 대해 살펴야 한다. 시인의 연자는 문자사용을 고도화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문자와 의경은 일치해야 한다. 문자의 세련이 안 되고서는 만족한 시의를 나타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① 달빛 가느다란 초생달 어이 위에 올라왔나/ 그림자 비스듬히 진 달무리가 편안치 않다.(‘初月’) ② 우물가의 아침 꽁꽁 얼었는데/ 옷 없이 누운 침상이 밤에 춥도다.(‘空囊’) ③ 물빛이 출렁이는 물결 다 머금듯 물들었는데/ 아침빛이 허공에 저며온다.(‘西寒望’)

이들 예구에서 시인과 일상생활의 경험을 읽게 해준다. 시인은 다듬어진 시어들 즉 가느다람(細)·비스듬함(斜)·우물가의 아침(井晨)·머금음(含)·밤의 침상(牀夜)·절실함(切) 등의 쓰임에서 가장 조화된 구성들, 즉 ①의 1구, ②의 1구, ③의 1구 등을 통해서 萬象의 관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니, 이 모든 것이 단순한 즉흥적인 표현이 아니라 오랜 연단의 소산이라 하겠다.

따라서 두보의 연자는 자각에 의한 神遇의 경지를 추구하기 위한 엄숙한 작업인 것이다. 시에서 구체를 귀히 여기고 추상을 기피하고 따라서 허자보다도 실자를 다용하게 되니 형용사나 부사를 기피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겠다. 두보시의 강점은 바로 이 원칙을 철저히 준수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들을 적절히 활용하기를 주저하지 않으면서 시의 묘취를 다 발휘한다.

이백과 두보는 각기 도가풍과 유가풍을 바탕으로 해 서로 비교되는데, 이백은 즉흥적이며 천재적인 맛을 준다면 두보는 부단한 노력형이며 완벽한 율격을 지키는 원칙론적인 맛을 준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두 시인의 시를 읽을 때에는 흥취와 상념을 동시에 생각하면서 가까이 하는 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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