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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의 소홀했던 ‘번역’ 문제 살펴… ‘김수영학’으로 가기 위한 숙제 남겼다
논의 소홀했던 ‘번역’ 문제 살펴… ‘김수영학’으로 가기 위한 숙제 남겼다
  • 최익현
  • 승인 2021.12.14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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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연구회 김수영 탄생 100주년 기념학술대회의 의미
김수영은 <파르티잔  리뷰(PARTISAN  REVIEW)>,  <엔카운 터(Encounter)> 등의 잡지를 자주 접했다.
오길영 교수는 이들 잡지가 당대의 주류 마르크스주의(스탈린주의라 통칭할 수 있는)와 는 거리를 둔,
지식인 독자를 대상으로 한 비주류 (좌파) 문예지 범주에 속한다고 지적했다. 

2018년 김수영 50주기(周忌)를 맞아 기념 학술대회가 열렸고, 이 자리에서는 ‘김수영학’에 대한 학계의 공감이 모아졌다. 김수영 탄생 100주년인 올해는 어땠을까? 다양한 기념행사가 이어졌지만, 좀더 들여다볼 논의는 지난 11월 20일 김수영연구회가 개최한 ‘다시, 100년의 시인―김수영학을 위하여’(이하 ‘김수영학을 위하여’)다. 

이날 논의는 3년 전 ‘김수영학’의 제안에서 과연 얼마만큼 나아갔을까? 김수영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오길영 충남대 교수(영문학)의 「번역, 김수영 시론의 비밀」과 고봉준 경희대 교수(국문학)의 「김수영의 ‘번역’과 시(론)의 변화―중앙문화사, 신구문화사, 그리고 이오네스코 번역을 중심으로」가 눈길을 끌었다. 두 발표자의 문제의식은 김수영학을 위한 초석인 ‘정본 전집’의 구성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김수영학이 제대로 가동하려면 정본 전집이 전제돼야 한다. 물론 2018년 『김수영 전집』(민음사)이 나와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호평을 받았다. 이 전집은 1981년 『김수영 전집』과, 2003년 개정판 출간 이후 발굴된 산문 22편, 일기 21편, 편지 1편, 시 4편, 미발표 시 3편, 미완성 초고 시 15편을 추가로 실었다. 전집을 내놓은 출판사측에 따르면, 2018년 3판은 발간 3년여 만에 시 전집이 1만2천부, 산문 전집이 8천부 팔렸다고 한다. 1981년 초판이 2003년 2판 발간 전까지 22년 동안 시 전집 6만5천부, 산문 전집 2만6천부가 팔린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대중적 수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 서지학자는 2018년 전집 역시 연보가 소략한 점, 번역을 제외한 점에서 ‘완결본’으로 보기 어렵다고 신중하게 말했다. 그는 또 『김수영 육필시고 전집』과 게재지, 시집 간 이본 대조를 하지 않은 채 전집을 간행함으로써 김수영 시의 정본화 작업은 여전히 요원한 상태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주장은 2018년 ‘김수영 50주기 기념학술대회’에서 “현존하고 있는 여러 판본의 김수영 시를 대조하고, 정본을 확보해, 김수영의 작품들을 점검해나가야 한다”라고 주장했던 유성호 한양대 교수의 논리와 같은 선상에 놓인다. 

이점에서 이날 학술대회에서 오길영 교수와 고봉준 교수가 김수영이 수행한 번역의 의미망을 짚은 것은 인상적이다. 

김수영의 번역은 능동적 변용

오 교수는 2020년에 출판된 『시인의 거점: 김수영 번역평론집』(박수연 엮음, 민음사)에 주목했다. 이 번역평론집은 김수영 시인이 번역한 평론들을 발표 순서를 따라 모아 놓은 것으로, 실린 글들의 발표 시기는 1957년에서 1966년까지 10여 년에 이른다. 이를 검토한 오 교수는 “시 창작의 경우와는 별개로 김수영 시론에 그가 번역한 다양한 종류의 문헌이 미친 직간접적 영향이 드러난다. 김수영의 뛰어난 점은 그런 문헌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여 이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변용해서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오 교수에 따르면, 김수영의 번역문은 다채롭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시와 시론에 대한 평문이다. 미국 현대시 동향에서부터 토마스 만이 쓴 소설가 앙드레 지드에 관한 글 등의 소설론, 셰익스피어, 테네시 윌리엄즈, 이오네스코 등 극작가에 대한 글도 있다. 뿐만 아니다. 사르트르가 쓴 미국에 관한 사회평론 성격의 글(오 교수는 이를 일본어 중역으로 본다), 신비평과 프랑스 비평의 현황, 실존주의(사르트르와 카뮈)를 논한 글, 정신분석과 현대문학, 문학과 정치의 관계를 다룬 글, 마르크스주의와 문학비평에 대한 글도 목록에 들어간다.

오 교수는 “김수영이 자신의 시론을 세우고 한국 시단의 문제점을 조망하는 데는 그가 번역한 글에서 얻은 시사점이 많다”라고 진단했다. 외국 문헌을 수동적 수용이 아닌 능동적 변용을 통해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고 본 그는 “김수영 자신이 수용한 외국의 시론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한계를 예리하게 인식한다”라고 거듭 읽어냈다. 그가 꼽은 단적인 사례는 김수영의 신비평적 형식주의 수용과 거리두기다. 

오 교수가 살핀 김수영 번역에서 놀라운 점 하나는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에 쏟는 관심이다. “김수영이 ‘metapsychology’를 심령학으로 번역한 것은 오역이지만, 핵심은 그의 문제의식”이라고 말하는 오 교수는, 김수영이 쓴 “이성을 부인하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의 혁명이 우리나라의 시의 경우에 어느 만큼 실감 있게 받아들여졌는가를 검토해 보는 것은 우리의 시사(詩史)의 커다란 하나의 숙제다”라는 구절을 들어 “조심스러운 판단이지만 이 숙제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우리 시대에도 남아 있는 커다란 숙제”라고 강조했다. 

‘과정의 산물’로서 번역과 독서

그렇다면 국문학자인 고봉준 교수는 어떻게 접근했을까? 주지하듯 김수영의 시와 시론은 변화를 거듭하면서 1960년대 후반에 이르렀다. 고 교수는 이 변화를 견인한 중요한 요소는 바로 그의 ‘번역’과 ‘독서’ 경험이었다고 지적한다. 

그는 여기서 두 가지에 주목했다. 1960년대 초반 앨런 테이트와의 만남, 1960년대 후반 이오네스코, 하이데거를 경유한 릴케와의 만남이다. 고 교수 역시 “김수영은 영향을 수용하면서도 그것을 뛰어넘으려고 시도했다”라고 말한다. 즉, 늘 새로운 시의 가능성을 고민했던 김수영은 자신을 자극하는 텍스트를 발견할 때마다 기뻐했으나 일방적인 수용이 아닌 그것과의 싸움의 긴장을 더 좋아했다는 것. 김수영이 ‘번역’을 통해 만난 텍스트들은 “‘빠져나갈 구멍’(「반시론」)을 발견해야 할 극복의 대상”이었으며, ““뚫고 나가고 난 뒤보다는 뚫고 나가기 전이 더 아슬아슬하고 재미있다”라는 표현에서 확인되듯이 김수영은 이 싸움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시’에 이르고자 했다.” 

이런 고 교수의 독법은 두 가지 의미층을 향한다. 그것은 김수영의 전체 작품에서 모종의 의미론적 전환을 시사하는 「풀」에 대한 재해석, 그리고 죽기 직전에 남긴 시와 산문들의 맥락적 의미의 산출이다. 이 둘은 공통적으로 최종적인 도착점이 아니라 과정적 산물이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김수영에게 번역은 ‘생계’라는 현실의 문제에서 시작됐지만 매 순간 예고 없이 침입해 시에 대한 그의 사유를 뒤흔들고 변화를 강제하는 타자였다. 따라서 김수영의 문학은 이 타자와의 관계에서 생산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김수영의 번역은 ‘상수’로 보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번역이란 컨텍스트를 통할 때, 김수영의 문학과 김수영학은 비로소 하나의 독립문을 열어낼 것이다. 오길영 교수와 고봉준 교수의 발제는 번역 문제가 어째서 정본 전집 편집과 김수영학을 위해 중요한지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최익현 편집기획위원 editor@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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