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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이 머문 64곳…그곳에서 시·산문이 태어났다
김수영이 머문 64곳…그곳에서 시·산문이 태어났다
  • 김재호
  • 승인 2021.12.10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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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_『길 위의 김수영』 홍기원 지음 | 삼인 | 400쪽

사랑과 시대로부터 겪은 상실·죽음의 두려움이 글쓰기 원동력
역사공간 넘나들며 세밀하게 드러나는 지난한 삶과 자유정신

올해는 김수영(1921~1968)이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그는 1921년 11월 27일 종로2가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1968년 6월 16일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김수영은 8남매 중 셋째 아들이었다. 그의 형 2명은 어릴 때 사망해 실질적으론 장남이었다. 

 

이 책은 길과 장소를 중심으로 김수영을 돌아본다. 저자는 김수영문학관 운영위원장인 홍기원 씨다. 그는 김수영의 시 세계에 대한 연구는 전문가에게 맡기고, 공간을 중심으로 김수영의 삶의 궤적을 추적했다. 만주 길림부터 진명고등학교, 마리서사, 돌체다방, 한청빌딩, 동방문화회관, 예총회관 등 홍기원 저자는 김수영이 들린 64곳을 추적한다. 그 공간에서 잠시 머물렀던 김수영은 사람을 만나고, 몸을 피하고, 방황하며 휴식을 취했다. 그러면서 그는 시와 산문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특히 그 기질에 대해 홍 저자는 “김수영은 자기 실존에 충실한 인간이었고, 자립한 근대인이었고, 영원한 비제도권이었다”라고 적었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하고 기억력이 뛰어났던 김수영. 그는 어의동보통학교(현 효재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몸이 아파 죽을 뻔 했던 적이 있다. 이 때문에 중학교 진학이 늦어졌다. 북한에 의용군으로 끌려갔다가 탈출해 돌아왔을 때도 그는 수없이 죽음과 마주쳤다. 평생 김수영을 괴롭힌 삶과 죽음의 줄다리기는 글쓰기의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자유정신에서 피어난 혁명과 사회참여

김수영은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그래서 한 곳에 머물며 진득하게 공부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김수영은 사랑하는 이를 찾아 떠난 일본에서도, 영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들어간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에서도 졸업을 하지 못했다. 김수영은 공부보단 연극에 더 심취한 바 있다. 이에 대해 홍 저자는 “김수영은 자신의 향상에 도움이 되는 공부, 자기가 흥미를 가지고 할 수 있는 공부가 아니면 하지 않았다”라며 “김수영은 공부에서도 진정한 자유를 추구했다”라고 적었다. 심지어 김수영은 전시상황에서도 자유정신을 추구했다. 이념대립에서도, 본인 스스로 밝혔듯이, 그 어디에도 편향되지 못한 게 바로 김수영이다. 

『길 위의 김수영』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건 호구지책으로 김수영이 참 많은 일들을 했다는 것이다. 사랑과 시대로부터 큰 상실을 겪었던 김수영은 세상과 조우하기 어려웠다. 예를 들어, 김수영은 아내가 자신의 선배와 동거했다는 걸 알면서도 나중에 아내를 다시 받아들였다. 또한 자신의 시와 산문이 다른 이 더 나아가 스스로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걸 괴로워했다. 그래서인지 더욱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는 곳에서는 오래 일하지 못했다. 김수영은 통역관, 영어 강사, 기자 등 다양한 일을 했다. 먹고 살기 위해서다. 물론 나중에는 원고료와 강연만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글쓴이가 됐다. 

『길 위의 김수영』의 5부 ‘온몸으로 온몸을’은 김수영이 참여시인으로 활발한 활동을 한 면모를 들려준다. 특히 정권에 항의하며 혁명적인 시를 쓰기 시작한 김수영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김수영이 펼친 이어령과의 순수·참여논쟁과 통일의식 등은 장소를 옮겨가며 술술 읽힌다. 홍 저자가 마치 탐사보도를 하듯, 끈질기게 역사공간을 천착한 결과가 바로 이 책이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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