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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정본확정작업의 현황과 문제점
진단: 정본확정작업의 현황과 문제점
  • 신정민 기자
  • 승인 2005.09.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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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확대와 긴 안목 있어야

퇴계학연구원(원장 이우성)과 다산학술문화재단(이사장 정해창)이 퇴계와 다산의 저술 정본확정작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퇴계전서’ 정본작업에는 정석태, 이상하, 최병준, 강여진, 신영주 등 5명의 퇴계학 연구인력이 정본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기존의 퇴계문집을 해체하고, 수집된 자료중 17세기말엽의 초본과 18세기 중엽의 목판본, 그리고 19세기의 필사본 등 13종에 한해 철저한 고증을 거쳐 시, 산문 등 분류별로 연월일 순서에 맞게 편집하고 읽기에 용이하게 전문표점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에 검증 내용은 교감기를 첨부하여 진행한다. 1차년도 결과물로 서간집을 두권 검토했지만, 발간까지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인력부족으로 인해 연구 대상자료 한정과 교감기의 40%밖에 활용하지 못했고, 유묵류는 제대로 다루지 못했기 때문.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진행도에 비춰 완결까지는 향후 10년 이상은 소요될 것으로 내다본다. 교육부에서 매년 1억여원을 지원받아왔지만, 2~3천만원정도의 부족분은 연구원에서 충당해 왔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2년차에 접어드는 ‘정본여유당전서’사업도 이런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교육부로부터 작년 3천만원 지원에서 올해 대폭 상향된 1억5천만원의 지원을 받아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 제한점이 많다. 다산은 저작이 방대할 뿐만 아니라, 경학·예학·정치경제·음악·의학·지리 등 폭도 넓어 분야별 전문연구자들 참여가 필수적이다. 현재 심경호 고려대 교수, 이광호 연세대 교수, 이지형 성균관대 명예교수, 김언종 고려대 교수, 김만일 태동고전연구소 교수, 금장태 서울대 교수, 방인 경북대 교수 등 10명의 책임연구원과 10명의 공동연구자를 비롯해 30여명의 연구자가 정본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현재 국내외 자료수집과 저작별 목록 작성, 교감 및 표점작업을 연구팀별로 동시에 진행해 경집 사서부분의 원문입력 1차 교정을 완료했고, 국내 주요 도서관에 소장된 필사본 목록을 작성·연구한 상태. 하지만 무엇보다 국외의 선본자료 수집이 원활하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북한 소장자료,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영인했지만 일부분이 빠져버린 미국 버클리대 소장 ‘사암경집’, 그리고 일본 간사이지방과 동경지방에 상당수 선본의 자료수집이 그것이다. 이는 거리적 요인과 방대한 분량에 따른 열람·복사의 어려움이 따른다. 현재 이를 충당할만한 재정도 충분하게 마련되지 못해 연구자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퇴계와 다산의 정본사업에서 드러나듯, 단기간에 연구 성과를 올려야한다는 점과 열악한 재정환경이 큰 문제로 지적된다.

선진국의 경우 30년에서 1백년에 걸쳐 진행되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이기상 한국외대 교수(서양철학)는 “하이데거의 경우 1975년부터 지금까지 정본연구를 진행해 현재 80여권이 나왔지만, 완간까지 10년 이상이 더 걸릴 것 같다”라고 전한다. 이어 이 교수는 “니체와 헤겔의 경우도 전집발행까지는 30년 이상이 소요됐다”라고 말한다. 충분히 검증하지 못한 채, 단기간의 성과에 집착하면 또 하나의 이본과 다를 바 없다는 것. 이상섭 연세대 명예교수(사전학)는 “영국의 경우, 세익스피어와 관련된 모든 문헌을 자국뿐 아니라 불란서나 독일 등지에서 수백년 동안 광범위하게 수집한다”라고 강조한다. 또 “정부보다는 사설단체에서 기금활동이나 문화사업을 통해 이뤄지고 자산가나 목사, 변호사 등이 개인적으로 많이 한다”라며 EETS(Early English Text Society) 문화를 강조했다.

율곡 저작의 귀중본을 사재를 털어 모으고 있는 김남형 계명대 교수(한문학)는 “그동안 원전비평에 소홀해 수년간 쌓아온 연구업적이 사상누각이 되는 사례를 많이 봤는데, 일본의 경우 원전비평으로 학위를 줄 만큼 중요시하고 한다”라며 기초문헌에 소홀한 국내의 학문풍토를 비판했다. 중국의 경우도 중요문헌의 표점작업으로 학위를 수여할 만큼, 기초문헌과 그에 대한 해독을 중요시한다.

정본연구는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만큼 해당분야의 연구발전은 물론이고, 이후의 유사 정본연구에 범례로 상당한 영향을미칠 것이다. 또한 국학연구의 활성화에 따른 학문후속세대 양성과 원본자료를 보존하고, 전산화를 통한 열람의 편리함은 국학인구의 저변확대까지 이어지는 중요한 사업이다. 따라서 인문학의 특성을 고려한 지원정책과 기관·연구자의 지속적인 열정이 무엇보다 요구된다.
 신정민 기자 jm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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