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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대학명강의: 원성필 울산대 교수의 ‘냉동기 설계’
우리대학명강의: 원성필 울산대 교수의 ‘냉동기 설계’
  • 오한석
  • 승인 2005.09.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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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냉장고 해부도…학생 이해 높이는 일등공신

 

▲ © 오한석

오한석 (울산대 2학년·정보통신공학과)

인문사회 계열을 전공하는 학생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이공계 학생들 역시 학년이 올라가도 수업은 공포의 대상이다. 복잡한 수학기호가 뒤섞여 있는 물리학 공식들이 영어로 된 용어와 결합해 있으면 금방이라도 책을 덮어버리고픈 심정이다. 그런 이공계 수업에 대한 체질적 거부감은 아무래도 현실 생활과의 괴리라는 인식에서 출발하지 않을까 싶다. 그게 아니면 오답일 것만 같은 꽉 막힌 학문, 이해보다는 암기가 왕도일 것 같은 학문. 우리가 이공계 수업을 두려워하는 이유다. 특히 기계학과 관련된 수업은 먼 나라 이야기같이 들린다. 기계를 만지는 엔지니어가 아니라면 굳이 알 필요가 없을 것 같은 학문이라는 것이 기계학에 대한 인식이다.

내가 가진 기계학에 대한 또 다른 이미지 중 하나는 ‘기계학도’들은 성격이 무뚝뚝하다는 것이다. 그런 기계학도 남학생 60명을 모아놓고 결혼하면 부인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방법을 일러주는 수업이 있다고 한다. 바로 원성필 울산대 교수님(기계자동차공학부)의 ‘냉동기 설계’라는 수업이다.

냉동기와 부인의 사랑이라니. 이 무슨 냉동기 돌아가는 썰렁한 소리냐고? 이 수업을 듣고 난다면 우리 생활과 밀접한 가전제품인 냉장고와 에어컨의 동작원리는 물론 적어도 어디가 고장났는지 볼 수 있을 것이다. 기계학도 출신인 남편의 진단과 실제 고장원인이 일치한다면 부인이 남편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수밖에 없을 거라는 게 원 교수님의 설명이다.

원 교수님의 수업방식은 느리다고 생각될 정도로 차분하다. 중간 중간 넣어주는 악센트는 그 부분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끔 한다. 게다가 실용성에 맞추어 직접 집필한 ‘냉동공조’라는 책은 다양한 예제로 수업을 풍성하게 만든다. 그야말로 ‘친절한 교수님’이다. 학생들도 그런 교수님의 수업에 차분하게 집중하며 따라간다.

복잡한 용어들 속에 익숙한 솜씨로 그려져 있는 그림은 학생들의 이해를 돕는 일등공신이다. 냉동실과 냉장실로 이뤄진 냉장고 모양뿐만 아니라 냉동차, 냉동 컨테이너 같은 그림을 누가 봐도 알 수 있게끔 그려내면 학생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냉장고에서 주로 이용하는 증기압축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마치 해부하듯이 냉장고를 그림 상으로 분해하기 시작한다. 압축기에서 시작해 증발기와 팽창밸브를 거쳐 응축기, 다시 압축기를 냉매가 순환하는 복잡한 과정을 그림과 설명이 어우러져 쉽게 풀어내고 있다.

냉동기는 당장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냉장고, 에어컨을 비롯한 생활용품부터 반도체 생산 공정에까지 빠지지 않고 사용되고 있다. 더불어 기계공학에서 배우는 많은 전공과목 중에 곧바로 실제에 응용 가능한 몇 안 되는 과목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수업이다. 이 수업을 듣는 이원근 학생은 “원성필 교수님은 어려운 수업 내용을 쉽게 이해시켜주는 신기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며 수업에 대한 소감을 말한다. 그러나 원 교수님은 “쉽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냉동기 설계라는 수업은 원래 쉬웠을 뿐”이라며 손사래를 친다. 아무리 쉬운 과목이라지만  냉동기를 만드는 기술은 지금 각광받고 있는 반도체와 유전공학과 같은 첨단기술의 뒷받침 역할을 하고 있는 기술 중의 하나다.

실제 원 교수님은 수업내용 뿐만 아니라 연구 실적에서도 생활과의 밀접한 결합을 시도하고 있다. 자동차 부품 중의 하나인 엔진 냉각기와 에어컨에 있어서 수많은 논문과 더불어 자동차 관련 산업체와의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지금 국제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오존층 파괴의 주범인 프레온 가스와 같은 냉매를 대체할 물질에 대한 연구와 에너지, 환경문제와 같은 광범위한 부분에 원 교수님의 관심이 뻗쳐있다.

그래도 기계학은 역시 기계학이다. 기본적으로 이 수업은 열역학과 열전달 같은 기계학적 기본 이론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쉬워지는 학문인 것이다. 열기관을 반대로 설계하면 냉동기가 된다는 과정을 수업하면서 자연스레 지난 학기에 배운 열역학에 대한 기본 개념들도 되짚고 넘어간다.

그리고 강의 위주의 수업에서 탈피해보고자 딱딱한 이론 수업과 다르게 ‘냉동이 인류에 미친 영향’이라는 주제로 주제세미나를 한다. 또 냉각기 안에 들어가는 냉매량 조절장치라든지 자동차 엔진 냉각시스템이 설치되어 있는 실험실을 둘러보기도 하고 직접 냉동기를 운전해볼 기회를 학생들에게 주기도 한다. 이제까지 90명 가까이 되었던 강의신청자를 이번 학기부터 60명으로 줄인 이유 역시나 효율적인 수업과 실습 위주의 수업을 학생들에게 전해주기 위해서다.

이공계 수업에 있어 명강의라면 어려운 내용을 쉽게 설명해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얼마나 실제 생활에 이용될 수 있는지 이야기해줌으로써 배우는 사람의 관심을 불러일으켜야 할 것이다. 그 두 가지 조건이 바로 ‘냉동기 설계’라는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빼곡하게 강의실을 찾아들게 만드는 이유가 아닐까. 친절한 수업을 하는 원성필 교수님과 진지하면서도 부담없이 수업에 임하는 그들을 보며 이공계의 힘찬 재도약을 그려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강의실 뒤편의 에어컨은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수업 시간의 열기를 오늘도 조용히 식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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