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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 소설 속에서 비판된 '대학'과 '문학'
화제: 소설 속에서 비판된 '대학'과 '문학'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5.09.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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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혹시 벙어리가 아닐까"

‘황해문화’ 가을호에 재미있는 글이 실렸다. 김경수 서강대 교수가 쓴 ‘김원우의 신작 두편이 제기하는 문제’다. 김 교수는 김원우가 ‘작가세계’ 겨울호에 발표한 ‘젊은 천사’와 ‘벙어리의 말’을 교수들에게 읽어보길 적극 권하고 있다. 바로 “우리 사회에서 대학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과 문학의 의미를 심도있게 고찰하고, 대학에서 문예창작학과의 위상에 대해서도 일정한 해석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젊은 천사’는 한 지방대학 교수의 과거 이력과 행방을 중심으로, 대학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태도에 대한 분석을 통해 대학사회를 조명하고 있는 작품이며, ‘벙어리의 말’은 늦깎이로 문예창작학과에 편입한 여학생의 습작과정을 통해 우리 문학계 일반을 비판적으로 진단하고 있다.

김 교수의 읽기에 따르면 ‘벙어리의 말’에서 화자가 주어섬기는 바 관행으로서의 문학 내부의 병폐에는 신춘문예 같은 등단제도의 관성에 개입되는 買名의 욕망, 심사과정에서 인정주의에의 함몰 등 문학을 아마추어의 그것으로 타락시킨 ‘전근대적’ 문학 전통 등이 두루 포함된다.

실제 문예창작학 교수이기도 한 작가 김원우는 자신의 딜레마를 주인공 허영숙의 말을 빌려 털어놓는다.

“무슨 상품이든 모양을 낼라면 죄다 도금을 해야 해요. 오죽했으면 옛날부터 나무에도 옻칠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금물을 들였을까.”

허영숙은 습작소설을 통해 “도금은 생산품의 표피에 표면장력의 민주주의를 구현한다”라는 그럴듯한 해석을 내놓기도 하는데, 김경수 교수는 작가가 겨냥하는 인식의 틀이 바로 이것이라고 풀이한다. 즉, “사실상 글의 내용보다는 외형상의 수식을 가지고 문학적 성취도를 판단하는 문학판의 전근대적 관성과 그걸 알면서도 도금 기법을 교수해야 하는 문창과 교수의 모순적이면서도 기형적 관계”가 그것이다. 그 허탈함을 작가는 아래와 같이 뇌까린다.

“말은 중의를 모아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태어난 합의의 발명품이며, 그것이 요긴하게 쓰임으로써 제도화의 길을 밟아간다. 말이든, 글이든 의미가 또렷하게 드러나는 것일 수록 그 통사체계가 엄격함은 보는 바와 같다.”

김원우에게 허탈한 것은 “의사결정과는 무관한 소모적인 의사소통의 체계가 관성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상황”인 것.

김 교수는 최근 가라타니 고진이 문예창작과의 대학진입을 ‘문학의 종말’과 연결시켜 고찰한 것을 김원우의 소설과 연결시킨다. 김원우 또한 제도권 내에서 문학창작을 교수하는 일이 과연 온당한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는 것. 김 교수는 “전근대적인 풍토가 횡행하는 현실에서 문예창작학과라고 하는 근대적 제도가 옳게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인가”라고 김원우가 묻고 있다고 본다.

이런 해석을 보니 김원우의 작품이 자칫 잘못 읽히면 형식과 내용, 근대성과 반근대성의 논의로 빠지며 본질이 간과될 수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김 교수도 진단하듯 두 소설이 갖는 매력은 “서술자까지도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 형평성과 엄정함”이며 “끝없는 자기반영성”인 듯하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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