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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국의 재벌' 총괄지휘한 김진방 인하대 교수
인터뷰: '한국의 재벌' 총괄지휘한 김진방 인하대 교수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5.09.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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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연구 실증적 기반 갖춰야...자료가 스스로 말한다"

김진방 교수는 자신을 “실증주의자”로 자부한다. 탈모던의 시대에 그것도 경제학 같은 멋쟁이 학문에서 ‘실증’을 메인으로 내세우는 것을 그 자신도 “약간 낙후돼” 보인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한국 재벌연구에서는 무엇보다 “현실을 반영하는 정확한 자료를 통한 연구의 필요성”이 시급하다는 것을 그는 강조한다.

이번 ‘한국의 재벌’ 시리즈 5권 중 ‘재벌의 소유구조’를 집필하고 전체 작업을 총괄하면서 30대 재벌 7백여 계열사의 사업·감사보고서 ,각 기업 1백년사·50년사, 심지어 각 기업 임원진들의 등기부등본도 구해서 재벌에 관한 한 지금까지 어떤 자료보다도 튼튼하고 자세한 자료를 구축한 김 교수는 지난 몇 년을 정신없이 보냈다. 현재 연구년을 맞아 학교와 인천발전연구원을 오가며 후속연구를 위한 구상에 잠겨있는 그를 만나봤다.

“근래에 대안연대 등에서 한국재벌의 경영권이 외국기업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런데 납득할 수 있는 자료는 제시되지 않습니다. 그냥 추정이죠. 현재 한국 30대 재벌의 내부지분은 최소 25%이고 높을 경우 50%에 육박해 매우 높은 수준입니다. 경영권 위협은 근거가 약하죠.”

경영권 위협이 투자축소의 원인이라고 단정하는 주장은 따라서 그 기반을 잃는다는 것. 김 교수는 지난 몇 년간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몇몇 주장들은 “추상적 이론과 일상적 관찰이 합해져서 이루어진 것”이라며 “이런 문제틀로는 거의 모든 결론을 다 끌어낼 수가 있다”라며 재벌연구의 방법론적 문제점을 통렬하게 지적한다. 과학보다 이념을 따르는 연구풍토, 더 나아가서는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비과학적 관행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국사회가 방향을 잡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현실 분석에 기반해서 정책이 짜여질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런 풍토에서는 그게 안 된다는 게 김 교수의 견해다.

특히 ‘평균값’을 사용하는 것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평균값은 대강의 지형은 보여주지만 내용을 사상시킨다. 특히 한국 재벌들은 굉장히 다른 소유구조를 지니기 때문에 평균값은 위험하다. 소유구조는 재벌의 지배구조를 파악하는 데 핵심이며, 재벌이 어떤 지배구조를 갖고 그것이 건강한지, 앞으로도 건강할 수 있을 지를 제대로 예측해내기 위해서는 어렵더라도 재벌로 뭉뚱그리지 말고 개별자들의 현실을 제대로 봐야 한다. 가령 10대 재벌은 총수지분은 적고(5~10%) 계열사지분이 많은데(15~30%) 비해 20~30대 재벌은 그 반대일 경우가 많다. 

“그리고 개념을 정확하게 정의해야 합니다. 가령 신장섭 싱가포르대 교수의 경우 ‘기업집단’이라는 보편화된 용어를 사용하면서 한국의 재벌을 거기에 일치시키는데요, 이는 잘못된 것이죠. 개념을 세계화해놓고 거기에 맞춰서 현실을 보니까 일부 오류가 생기는 것입니다.”

가령 신장섭 교수의 경우 A, B, C 기업이 서로의 지분을 갖는 교차출자, 혹은 순환출자의 구조가 시장비용을 줄이고, 불확실성을 낮추는 안정적인 방법으로 기업집단을 유지시키는 기능을 해왔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해 반대 입장이다.

“사실 1997년 이전 재벌은 순환출자로 커오지 않았어요. 내부를 잘 들여다보면 사실 피라미드식으로 출자가 돼 있고, 계열사마다 줄이 끊어져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됩니다. 한국 재벌이 순환출자 구조로 완전히 전환된 것은 최근이죠.”

이에 따르면 신 교수의 주장은 역사적 범위를 실제보다 많이 넓혀잡은 것인 셈이다. 또한 김 교수에 따르면 터널링(tunneling)의 문제가 간과됐다. 계열사간 거래는 자본투자 말고, 물품거래가 많아, 여기서 각종 편법이 이뤄진다는 것. 시장이 없기 때문에 경쟁도 없고, 정치적으로 또 관계자간 유대의식을 통해서 거래가 이뤄지기 때문에 “시장의 효율성”을 상쇄시킨다는 주장이다.

김 교수는 지금 많은 학자들이 “결론”을 내놓고 해결책을 이행하라는 “요구”에 기울어있다는 점을 계속 지적한다. 재벌과 국가의 연합체를 제안하는 장하준 교수의 입장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차라리 노동과 자본의 상호규율을 강조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론을 펼치는 이병천·최장집 교수 측에 더 우호적이다.

“지금까지의 재벌개혁은 주주의 개혁이었습니다. 내부주주와 외부주주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었죠. 하지만 재벌개혁은 자본과 노동의 틀 위에서 이뤄져야 하고, 노동의 의사가 적극 반영되는 시스템 속에서 생산성의 확대를 꾀해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기업 수준에서 이사회에 노동 대표가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더 바람직한 구조는 노동의 참여가 ‘사회적’ 수준으로 제도화되어서 연금과 교육 같은 각종 복지를 통해 자본과 노동이 상호 합의할 수 있는 틀을 모색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

따라서 현재의 비정상적인 재벌의 지배구조, 그 구조 아래에서의 이익추구 형태를 바로잡기 위한 개별사례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 김 교수의 결론격 주장. 가령 “소유구조를 개선해 현재 5%의 지분으로 40~50%의 의사결정권을 갖는 경영권을 약화·분산시키면 경영권 프리미엄은 다소 낮아지겠지만, 기업투명성이 높아져 주식을 높게 발행할 수 있어 자금조달이 더 용이해질 것”이라고 충고했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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