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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고전]<13> 조동일의 『韓國小說의 理論』 (1977)
[우리시대의 고전]<13> 조동일의 『韓國小說의 理論』 (1977)
  • 송성욱 / 가톨릭대
  • 승인 2001.06.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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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6-12 16:45:47
송성욱 / 가톨릭대·국문학
‘한국소설의 이론’이 발간된 지도 이제 20년이 훨씬 지났다. 이 땅에서 소설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지 이 책에 대해 빚을 지고 있다. 그것은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보여준 학문적 자세일 수도 있고 학문적 성과일 수도 있다.
‘한국소설의 이론’은 소설의 이론뿐만 아니라 문학일반의 이론을 수립해 나가고자 하는 저자의 야심이 그대로 들어 있는 저서이다. 연구자라면 누구나 자기만의 세계관과 그것에 기반한 어떤 이론적 세계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보여주는 저자의 이론적 관심은 범상하지 않다. 저자는 우리 문학을 설명하는 중심에 서구의 문학 이론이 자리 잡고 있는 풍토에 대한 반성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 우리에게도 철학이 있었고, 문학이 있었다면 그것에 기반한 우리의 이론을 만들어야 한다는 야심찬 의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서양의 문학 이론을 공부해서 자기의 이론적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 지금까지의 현실이고 보면 이 책이야말로 진정한 이론서임에 분명하다. 서양의 이론에 대한 단순한 반발심이 작용한 경우라면 이러한 저자의 태도를 두고 국수주의적 태도라고 비판을 할지 모른다. 혹은 서양의 것으로도 충분한데, 괜히 우리 것이라고 가져와서 덕될 것이 무엇인지 반문을 할지도 모른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이러한 의문을 불식시킨다. 서양에서 말하는 이러저러한 소설의 개념으로는 우리 소설을 설명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문학사가 이기철학사와 긴밀한 연관이 있음을 입증하고, 이기철학에 기반하여 소설의 본질과 문학일반론 특히 장르론을 수립하고자 하였다. 소설의 본질을 밝히는 자리에서부터 장르론의 세부적 체계에 이르기까지 이기철학에서 얻은 존재론이 깔려 있다. 어떤 사물의 성격은 그것이 다른 사물과 맺고 있는 대립적 관계를 통해서만 밝혀질 수 있다는 인식이 바로 그것이다. 이에 기초하여 저자는 국문학 장르론의 토대를 구축하였고, 신화, 전설, 민담, 소설을 포괄하여 서사라고 하였다. 그리고 다시 서사 속의 하위 갈래들과의 관계 속에서 소설의 본질을 규명하였다. 그 결과 서양의 개념으로는 제대로 볼 수 없거나 보이지 않던 부분들을 재조명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서양의 개념으로는 어떤 것을 가져와야 우리의 소설적 현상들을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을지 모호하기만 하다. 심지어는 이런 작품을, 특히 조선시대의 작품을, 소설이라고 지칭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거나 공연한 가치 폄하의 오류를 범할 위험도 있다. 저자의 이론은 이런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소설 논의의 획기적 전환을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저자의 이론적 작업에 대한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장르론에서부터 소설의 구체적인 해석에 이르기까지 많은 비판들이 제기되었다. 비판들의 골자는 이론의 구성을 위해 구체적인 실증을 무시했다거나 작품에 대한 해석이 작위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 저서는 그러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점은 이론적 추상화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구체와 추상이 완벽하게 만나는 이론이라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지만 그 접점은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 허상일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이 저서에 대한 바람직한 비판은 구체적인 부분에 대한 다른 해석을 바탕으로 새로운 이론을 수립하여 저자의 이론 자체를 비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부분적 오류를 발견했지만 그것이 전체 이론의 틀을 바꿀 수 없다면 이론적 작업에 대한 정당한 비판이라 할 수 없다. 저자 역시 그러한 비판을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 저서에 대해 안고 빚이 바로 이것이다. 이론은 하나만으로 존재할 수 없다. 여러 이론들이 대화하고 대결하면서 더욱 나은 이론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 저자는 최근 ‘한국소설의 이론’을 바탕으로 세계 소설사를 설명하려는 큰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이론적 작업이 나아가야 하는 최대치를 보여주려 함이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임을 잘 안다. 빨리 그 빚을 갚을 날이 왔으면 좋겠다.

조동일(1939~)
조동일 교수(서울대·국문학)는 1939년 경북 영양 출생으로 서울대 불문학과를 졸업한 뒤, 다시 국문학과에 입학해 대학원에서 박사학위까지 마쳤다. 계명대 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문학연구방법’, ‘한국문학통사’, ‘우리 학문의 길’, ‘인문학문의 사명’ 등 다수의 역저를 발표했다. 전통 철학과 사상에서 한국문학의 논리를 개발해온 그는 문학사와 철학사를 넘나드는 포괄적인 이론화 작업을 해왔다. 최근에는 비교문학적 관점에서 세계문학을 한국문학과 관련지어 논의하는 데로 연구의 지평을 확대해 가고 있다. 그동안의 연구업적으로 만해상과 대한민국 학술원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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