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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二: 읽을만한 세 편의 소설
여름 二: 읽을만한 세 편의 소설
  • 한용환 동국대
  • 승인 2005.08.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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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슬픔 나누기...장려하고 호방한'판게아'



  이 여름에 읽을만한 소설을 세 편만 소개해주기를 부탁하면서 청탁자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가능하면 좀 덜 알려진 걸루요. 나는 청탁자가 정당한 요구를 했다고 생각했고 무엇보다도 그 원칙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 보지요, 뭐. 아마도 그래서 나는 쉽사리 대답했는 지도 모른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천사와 악마> <판게아의 지도>
  이것들이 내가 소개하기로 마음먹은 세 편의 소설이다. 나는 별달리 고심하지 않고서 그 작품들의 제목을 떠올려 낼 수 있었다. 그 작품들을 읽으면서 누렸던 즐거움이 여태도 생생한 실감으로 가슴에 새겨져 있었던 모양이다.

  프랑스의 신예 작가 안나 가발다의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문학세계사)>는 한마디로 여름철 입안을 상쾌하게 해주는 딸기 샤베트처럼 상큼한 소설이다.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은 두 아이의 젊은 엄마 클로에는 시아버지 피에르의 집으로 하루 아이들을 데리고 간다.
  며느리가 한없이 가엽고 무엇보다도 이것이 가족으로서의 며느리와 보내는 마지막 밤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피에르는 클로에의 고통과 상심에 동참할 수 있는 방도를 찾지 못해 안타까워 한다. 그러니까 피에르가 가슴 깊이 묻어두었던 추억 - 사업상의 여행에서 만나게 된 한 젊고 아름다운 여자와의 감미로웠지만 고통스런 추억을 클로에에게 얘기해주는 것은 슬픔과 상심을 그녀와 나누기 위한 방편이다.
  그리고 클로에에게 그랬듯이 이 소설을 읽게 될 독자들 역시, 그 추억담을 듣고 적잖은 위안을 받게 될 것이다.

  제목의 진부함에도 불구하고, <천사와 악마>의 흥미를 보증하는 일은, 내게는 너무나 손쉬워 보인다. 이것은 <다빈치 코드>의 작가 댄 브라운의 또다른 소설이다. 질풍노도처럼 읽는 이를 휘몰았던 <다빈치 코드>의 압도적인 흥미를 기억하는 독자에게 그 한 줄이면 충분하리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두 작품은 사실상 쌍둥이와 같은 소설이다. 따라서 두 작품에서 유사성을 찾아내기란 너무나 쉽다. 서사 유형이 유사하고 사건의 양상과 플롯이 유사하다. 작가가 <천사와 악마>의 주요 작중 인물인 로버트 랭던을 <다빈치 코드>에서 다시 기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두 소설의 근친관계를 좀 더 직접적으로 암시한다.
  <다빈치 코드>에서 하아버드의 종교 기호학 교수인 로버트 랭던은 살해당한 루으브르의 관장 쟈크 쏘니에르의 주검의 기호에 담긴 비밀을 추적한다.
  한편 <천사와 악마>에서 종교 기호학자가 뒤쫓는 것은 CERN의 물리학자인 레오나르드 베트라의 참혹한 시신에 암살자가 새겨둔 암호의 비밀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것의 비밀이 아니다. 비밀의 씨앗에 불과하다. 차츰 드러나는 경악스런 인류사적 비밀들…. 더 이상 부연하지 않겠다. 그렇게 하는 것은 이 소설을 읽으며 누리게 될 독자들의 즐거움을 빼앗는 일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판게아의 지도(민미디어)>를 소개하는 것은 청탁자의 요청에 가장 충실하게 부응하는 일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동국대에서 문학을 강의하는 윤재웅교수가 쓴 이 놀라운 소설은 2002년 민미디어에서 출간됐다. 작품의 제목을 비롯해서 작가의 이름과 출판사 모두가 낯설기만 할 것이다. 요컨대 이 소설은 출간은 되었지만 독자들에 의해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채 여전히 묻혀져 있는 작품인 셈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진가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건 이 작품과 이 작품을 쓰는 데 7년여의 세월을 바친 작가의 불행은 아니다. 그것은 독자의 불행이다.
  이제는 관광명소가 되었지만, 우리의 아름다운 섬 제주도에는, 물리의 법칙을 거스르는 신비한 자연현상으로 관광객을 즐겁게 하는 장소가 여러군데 있다. 대표적인 곳이 도깨비도로이다. 제주시에서 중문단지로 넘어가는 한라산 중턱에 있는 이 도로에서는 빗물이 역류하고 기어를 푼 자동차는 낮은 데서 높은 쪽으로 굴러 오른다. 그야말로 도깨비의 농간이라고나 해야 할 믿기지 않는 자연의 이변이다.
  <판게아의 지도>는 이 경이로운 제주도의 자연 현상을 배경 삼아 펼쳐지는 작중 인물 한이상의 놀라운 모험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서술의 과정은 물리학, 역사학, 광산학, 고고학, 문헌학, 천문학… 등의 해박한 지식이 담대하고 거침없는 문학적 상상력과 눈부시게 결합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소설의 흥미는 줄거리 양상에서만 찾아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이 소설의 문체이다. 장려하고도 호방한 문체야말로 이 소설의 주요한 흥미의 요체이다.
  나의 이 작품과의 사적이지만 특별한 관계에 대해서도 한마디 덧붙이고 싶다. 나는 이 경이롭고 기발한 지적 모험담이 배태되고 성숙해서는 이윽고 완결된 한편의 멋진 문학 작품으로 태어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는 행운을 누렸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아무에게나 흔하게 주어지는 행운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작가의 제주도 현장 탐사 여행에 동행해본 적도 있고 작품의 진전이 시원치 않아 고심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다. 그래서 이 작품에 대한 나의 애정은 좀 더 남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을 소개하는 나의 시각이 애정이 초래시킨 맹목인지 아닌지는 이 작품을 실제로 읽어보는 독자만이 판단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나도 그 판단의 결과가 몹시 궁금하다.

한용환/ 동국대 · 현대소설
필자는 동국대에서 ‘이광수 소설의 비평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소설론의 반성’, ‘소설의 이론’, ‘이야기와 담론’, ‘소설학 사전’ 등의 저서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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