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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다산학 연구의 현황과 문제점
분석: 다산학 연구의 현황과 문제점
  • 강성민.신정민 기자
  • 승인 2005.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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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그림 못보는 쇄말주의 경향...'비평적 거리'도 부족

다산에 관련된 논문은 벌서 1천편을 넘어선다. 이 가운데 박사논문이 50편이다. 다산에 대한 연구는 양적으로 매우 풍요롭다. 다산학 연구자들은 이제 5세대를 헤아린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다산에 대해서도, 다산을 연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체계적인 종합정리가 이뤄진 적은 없는 듯하다. 따라서 다산연구의 현황을 파악하기에 앞서 연구진들의 진용을 한번 그려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식민지시기 민세 안재홍, 위당 정인보의 연구를 선행연구로 친다면 해방 이후 이을호, 홍이섭, 한우근 교수 등이 1세대인데 이 가운데 이을호 교수가 다산경학에 관한 저술을 펴내며 학회를 이끈 대표적 선구자다. 그 다음 천관우, 최동희, 이우성, 황원구 교수가 선배로, 박병호, 이지형, 김태영, 강만길, 원유한, 윤사순 교수가 후배로 2세대를 이루고 있다. 그 뒤를 이어서 한영우, 정석종, 박성래, 김영호, 정병연, 김상홍, 이남영, 안병직 교수 등이 2.5세대를 이루고 있다.

논문 1천편, 박사논문 50편 넘어서

3세대는 금장태, 조광, 박석무, 송재소, 김시업, 임형택, 송영배, 이영훈, 남명진, 유초하, 김언종 교수 등을 꼽을 수 있으며 4세대는 방인, 조성을, 심경호, 김영호, 한형조, 배병삼, 이유진, 장동우, 김문식, 정해왕, 김지용, 유권종, 장승희, 최대우, 김인철, 장승구 교수 등 40대 초반부터 50대 초반까지의 교수들이 있다. 이렇게 점점 인구수가 늘어서 5세대에서는 그 폭이 더욱 넓어진다.

이런 연령순-세대별 분류와 달리 팀으로 묶어서 그 현재적 지형을 볼 수도 있다. 크게 서울대팀, 실시학사팀, 전남대팀, 태동고전연구소팀, 舊 정신문화연구원팀, 성균관대팀으로 나눠진다. 전남대는 이을호 교수의 제자들이, 서울대는 이남영(철학), 금장태(종교학), 안병직(경제학), 신용하(사회학) 교수와 그 제자들 4개의 지류가 있다. 실시학사는 이우성에서 임형택으로 내려와 김문식, 장동우, 김언종 교수 등이 서로 강독하면서 공부했고, 정신문화연구원은 김형효 교수와 함께 한형조, 방인, 심경호 교수 등이 함께 연구했다.

그 외에 규모가 좀 작게는 고려대 윤사순 교수의 제자로 유초하, 유건종 교수가 있고, 연세대 김용섭 교수의 제자로 조성을, 장동우, 이광호 교수가 다산을 연구했다. 동국대는 송석구 전 총장과 제자인 이유진 교수가 꼽힌다. 전공을 보면 철학, 역사, 문학, 경제학, 법학, 사회학 등 다양하다.

혼란한 조선 후기, 파워엘리트의 길을 밟다가 서학에 데어 강진으로 쫓겨 간 후, 남인 좌파 계열의 끊어질 듯한 숨결을 살리기 위해 經學이라는 정면승부수를 던졌던 다산이, 자신이 뿌린 씨앗이 이렇듯 넓은 밭을 이룬 것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하지만 다산학이 이런 외면의 풍부함만큼 그 내부에서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다산의 학문이 심신일원론과 이원론, 봉건과 근대, 평등과 신분차별, 지주제인정과 토지개혁, 종교와 합리 사이를 끊임없이 오갔듯, 오늘날의 다산 연구자들도 매우 다양한 각개의 입장으로 흩어진 느낌이 더 강하게 든다. 그러나 다산이라는 봉우리에 함께 올라보지도 못한 채, 각각 숲을 헤쳐나가다가 길을 잃은 형국이라는 게 학자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면 학회가 필요한 것일까. 퇴계학회와 율곡학회는 있지만 다산학회는 아직 없다.

1970년대 북한 다산연구의 성과가 국내에 알려지면서 자극받은 일련의 학자들이 다산연구에 팔을 걷어부치고 나섰다. 이우성 선생의 ‘다산독회’는 어렵게 다산연구를 집적해나갔고, 대우재단이 다산 지원을 많이 해서 현대다산학의 토대를 닦았고, 1980년대 광주에 다산학연구원이 문을 열고 학술지를 20호까지 냈으나 90년대 후반 그 맥이 끊어졌다.

그런데 최근 들어 다산과 관련된 단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1998년 설립된 다산학술문화재단(이사장 정해창)이 있고, 지난해 발족한 다산연구소(이사장 박석무)가 있다. 그리고 1991년 결성된 한국실학학회(회장 송재소 성균관대 교수)가 다산연구자들이 집결된 곳이다. 현재 한국의 다산학은 두 부류로 나뉠 듯하다. 여전히 다산이라는 높은 봉우리를 정복하기 위해 읽고 또 읽으며 한 우물을 파는 학자군과, 다산이라는 무형적 가치를 유형적 가치로 환원하기 위하여, 그러기 위해 다산의 실용주의적 사유와 경세론적 논설의 효과를 다양한 방식으로 극대화하는 ‘다산 이데올로그’들의 존재다.

다산 이데올로그의 선두격에 다산학술문화재단이 놓인다. 학술지 ‘다산학’을 발간하고, 매년 2번 학술대회를 개최하며, 매년 2명의 학자에게 다산학술상과 우수상을 수여하는 듯 화려한 학술활동을 펼치고 있다.

생긴지는 얼마 되지 않았어도 내실이 있는 것이다. 몇년 전부터 국내 다산 연구자들과 함께 청화대, 하버드대를 오가며 국제학술대회를 꾸준히 열어왔다. 이런 활동을 가능케 하는 경제적 기반은 초기에는 나주 정씨 문중에서 도움을 받았지만, 현재는 자체 수익사업을 통해서 이뤄내고 있다고 말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여유당전서’ 정본확정사업과 국역작업이다. 아직까지 다산의 저술을 전반적으로 꼼꼼히 읽은 연구자가 드물다는 사실에서 이 작업의 의미가 찾아진다. 국역작업은 지금까지 번역되지 않은 것, 재번역이 필요한 것에서 필요에 따라, 여건에 따라 진행하고 있다. 올 연말에 그 1차 결과물로 '실시학사'와 함께 진행한 다산의 '시경강의'를 국내 처음으로 내놓을 예정이다. 그리고 시문집 번역도 기존 번역서와 다른 새로운 관점에서 번역중인데, 심경호 고려대 교수가 한창 연구중에 있다. '논어고금주'도 총 5권 분량으로 번역중에 있어서 다산학술문화재단의 많은 힘을 이쪽으로 기울이고 있는 중이다.  

정본사업은 '장서각' 국학사업의 지원을 받아서 지난해부터 시작됐다. 지난해에는 소액만 지원받았고 올해부터는 사업의 의의를 인정받아서 실제로 진행을 할 수 있는 지원을 받았다. 2009년을 목표로 작업을 진행중인데,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이주행 박사(중국철학)는 "퇴계학연구원에서도 현재 '퇴계전서'의 정본확정 작업을 하고 있는데, 될 수 있으면 형식적인 통일을 기하기 위해 서로 만나서 워크샵을 하면서 두 전서의 전산화 방향을 논의하고 있다"라고 밝힌다. 이 작업이 향후 동양고전의 정본 작업에 있어서 전범이 되길 바라며 작업을 진행중이다.

이런 다산학술재단에 비해 다산연구소는 다산사상의 대중화를 모토로 내걸었다. 이곳은 박석무 이사장과 대표인 김용정 前 동아일보 편집국장, 그리고 김영호 유한대학장의 ‘마당발’에 기대고 있는데, 다산 연구자들의 네트워킹을 구축해 다양한 문화강좌를 열고, 다산의 팬인 손학규 경기지사와의 친분으로 경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심포지엄도 열고, 실학기행도 떠나는 등 활발하다.

이색적인 것은 세상을 향한 論說이 일품이었던 다산의 정신을 따르는 듯, 매일 2만여명의 識者들에게 메일링 칼럼을 보낸다는 것이다. 일주일에 3번 배달되며, 중진학자들에게 원고를 청탁하는 ‘다산포럼’은 20만원의 원고료를 주는데, 글의 무게감과 진지함이 돋보인다. 그 외에 박석무 이사장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가 다산의 삶과 논설 구절을 인용하는 세태비평으로 주3회 이메일로 배달된다.

관련단체 속속 생겨…폐쇄성, 소수인원 이사겸직 문제

그러나 다산학술재단과 다산연구소, 한국실학학회의 활동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운영주체들이 같아 서로 견제하고 경쟁하는 맛이 없다는 것. 송재소, 김시업, 이영훈, 임형택, 금장태 등 소수의 학자들이 여러 단체를 겸직함으로써 그런 긴장감이 떨어지고, 학술대회를 열 때 발표자, 토론자를 정하는 데 있어서 아무래도 영향이 있다는 것이다. 유초하 교수의 말처럼 “참여자들의 색이 일방적이지만 대체적으로 괜찮은 사람들”이라는 게 이들을 보는 학계의 중평이다.

그리고 다산에 대한 비판적 연구가 이뤄지지 못한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특히 박석무 이사장의 평전류나 에세이, 금장태 교수가 이번 8월에 펴낸 ‘실천적 이론가 정약용’(이끌리오 刊) 등은 다산을 학자적 삶의 최상의 모범으로 상찬할 뿐 비평적 거리를 전혀 유지하지 못한다. 또한 전통적인 ‘한국학’ 연구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향만 성균관대 교수는 “다산은 매우 큰 이야기를 했는데, 그 대강을 짚지 못하고, 부분으로 떼어내서 이런저런 연구들을 하고 있어 한계”라며 다산연구의 큰 문제점을 지적한다.

또 하나는 문중유학의 폐해가 여기서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김영호 영산대 교수는 “영남학파의 후손들이 다산을 주로 연구, 발표하여 다산을 지나치게 과장하는 감이 없지 않다”라고 꼬집는다. 또 한 학자는 다산학술문화재단이 학자들에게 지원하는 연구비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한다. ‘다산학’에 실리는 논문은 매편 3백~5백만원씩 연구비가 나가는데, 문중에서 운영하는 재단에다가 연구비도 지급하니 아무래도 다산에 대한 비판적인 연구보다는 그 반대편의 입장을 고려하게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다산에 대한 논문들이 얼마나 다산에 대한 순수한 관심과 공부의 결과물들인가 하는 점이다. 정일균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모든 걸 떠나서 국내의 다산에 대한 이해가 전반적으로 굉장히 천박하다”라고 강한 비판을 던진다. 통용되는 학계의 설을 최근 김문식, 장승구 등 소장학자 몇몇이 다산의 전모를 이해한 바탕 위에서 비판적 입지를 세워나가고 있는데 비해, 일부는 70년대식 다산 바라보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 안타깝다는 지적도 한다. 즉 내재적 발전론의 최정점에 다산을 세우려는 노력은 이제 지나친 동어반복을 보이고 있으며, 실학연구가 그 현실적·객관적 맥락을 오늘날에 와서 잃어버림으로써 이런 입장의 다산 연구가 더욱 ‘용비어천가’ 같아 보인다는 것이다.

한 우물 파는 다산지기 vs. 다산 이데올로그

장승구 세명대 교수는 “일단 현재까지 이뤄진 다산 경학, 문학, 심학, 정치사상 등에 관한 연구를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서로 비판적 대화를 나눔으로써 교통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 뒤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읽는 데만 10년이 넘게 걸린다는 다산의 방대한 경전학을 ‘완주’하는 일이며, 그 다음은 ‘천주실의’ 외에 다산이 주자학을 논파하는 과정에서 영향을 받았던 제나라 정치가 관자의 저술 ‘管子’, ‘경세유표’에 큰 영향을 준 ‘周禮’ 등을 읽으면서 다산 사상의 형성과정을 그려보는 일이다.
 강성민·신정민 기자 editor@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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