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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맛집 가이드북을 찾아서
최고의 맛집 가이드북을 찾아서
  • 이민선 기자
  • 승인 2005.08.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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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한' 맛 확인 거친 책 드물어

 

국내 일부 신문의 맛집 소개를 믿다가는 쓰디쓴 ‘배신감’을 맛보기 쉽다. 신문지상에 화려한 미사여구로 소개된 식당을 찾아가보면, 기사내용과 달리 ‘과연 그 식당이 맞나’라고 의심될 정도의 음식을 내놓거나 전혀 다른 분위기의 식당을 만나게 된다.

교보문고에서 맛집을 소개한 가이드북을 검색해보면 모두 46권으로 양적으로 성황을 이루고 있지만, ‘일부 신문’들의 맛집 소개 기사와 다를 바 없다. 미식가로 소문난 예종석 한양대 교수(경영학)는 “대부분 돈 받고 대가성으로 맛집을 소개하는 데 좋은 가이드북이 되겠느냐”라며 불만이 대단하다. 실제 모 스포츠신문 기자의 경우 식당으로부터 광고성 기사를 써주는 대신 6백만원을 받았다거나, 맛집 가이드북 출판 시 출판사가 식당들에게 맛집 소개 대가로 해당 가이드북을 2백~3백권을 구매할 것을 요구했다는 일은 공공연한 비밀이 됐다.

'제대로 된' 맛 가이드북 없나?

그럼에도 현재 출판된 맛집 가이드북은 맛을 확인하는 꼼꼼한 검증노력과 취재의 범위에 따라 1세대와 2세대로 묶어볼 수 있다. 홍성유와 김순경으로 대표되는 1세대는 성긴 검증을 거치고 식당 자체에 대한 소개에 머문다면, 고형욱·황교익·주용 등의 2세대는 두 차례 이상 음식점을 방문해 맛을 확인하고 재료까지 점검하는 꼼꼼함을 보인다.


소설 ‘장군의 아들’의 저자로 알려진 故 홍성유 씨는 맛 칼럼의 효시다. 1978년 월간문학에 장편 에세이인 ‘맛과 멋을 찾아서’를 게재한 후, 1987년에 ‘한국 맛있는 집 666店’(범양사)라는 가이드북을 냈고, 이후 이를 개정해 ‘한국 맛있는 집 1234店’(문학수첩 刊, 1999)을 출간했다. ‘한국 맛있는 집 1234店’은 각 지방별로 맛으로 소문난 음식점의 음식 종류, 가격, 주차시설 유무 등을 깔끔하게 정리한 책이다. 오산시장 입구에서 40년 가까이 소머리국밥을 만들어온 ‘할머니집’, 충청도식 양념으로 갈비찜을 만드는 온양 ‘황해식당’ 등 각 지방 특유의 먹거리 집을 소개했다. 또 주변 환경이나 분위기 등을 현장감 있게 전달했다.

하지만 홍 씨의 가이드에 대한 미식가와 맛 칼럼니스트들의 평가는 그리 곱지 못하다. 그의 칼럼이 초기에는 ‘진짜’ 숨어 있는 맛집을 소개했다면, 후반기에는 ‘사이비 맛집’이 간간히 보였다는 지적이다. 어느 맛 칼럼니스트에 따르면, 타계 직전 그가 거동을 하지 못하는 와중에서도 맛집 가이드북이 출간됐고 이 과정에서 홍보자료를 받아 짜깁기 했다고 한다.

홍 씨와 더불어 한국 맛 칼럼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김순경 씨에 대한 평가도 짠 편이다. 김 씨는 20년 동안 알려지지 않은 맛집, 궁벽한 시골 지역의 맛집, 토속적인 것을 지키고 있는 식당 등을 많이 발굴해 큰 호응을 얻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별미집 2004’(월간조선사 刊, 2003)는 김 씨의 그러한 노력이 돋보이는 책이라는 평가다. 하지만 이 책 역시 맛집 선정의 엄격함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는다. 맛을 기반으로 식당을 솎아내야 함에도 ‘괜찮은’ 식당이면 모두 맛집으로 올려 변별력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홍성유 씨와 김순경 씨는 국내 맛 칼럼니스트 1세대다. 음식과 맛, 식당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일천한 맛 칼럼 분야를 일군 점은 인정되지만 평론은 ‘본격적’이지 못하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분석을 통해 객관적으로 맛집 선정을 하지 못하고, ‘풍류객’의 입장에서 맛집을 겉핥기로 소개했다는 것이다. 미식가들 사이에서 이들 저자가 선정한 맛집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저자 역시 인정하는 부분이다. 실제로 김순경 씨의 경우 그의 책머리에서 “필자는 아직 음식전문가나 미식가를 자처해본 적이 없는 음식기자다”라고 자신의 한계를 밝혔다.

맛 분석에 기반한 평론 아직 요원

1990년대 등장한 고형욱 씨는 맛 칼럼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인 이다. 고 씨의 경우 몇 번에 걸친 맛에 대한 검증과 조리법과 재료까지 확인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여기서 제일 맛있는 게 뭐지?’(디자인하우스 刊, 2001)는 고 씨의 이러한 노력이 고스란히 반영된 책이다. 예컨대 봄날에 먹을 만한 음식으로 담양의 죽순 요리를 권하면서 단순히 죽순 요리 전문점의 소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죽순의 성장지와 채취방법 그리고 죽순의 종류까지 꼼꼼히 소개한다. 취재의 범위가 식당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음식재료로까지 확장된 것.

황교익 씨의 ‘맛따라 갈까보다’(디자인하우스 刊, 2000)는 한번 쯤 들어봤을 음식의 원조집을 소개함과 동시에, 원조 음식이 창조되기까지의 내력을 역사·사회적인 접근법으로 보여준다. 포천 이동갈비가 갈비뼈를 반으로 가른 조각 갈비인 이유는 배고픈 시절 푸짐하게 보이도록 하려는 전략의 산물이며, 지리산에서 똥돼지를 키울 수밖에 없었던 것은 가난한 이 지역에서 오직 똥을 먹여도 되는 동물은 돼지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들도 분석을 기반으로 하는 객관적인 평론은 아직 본격적으로 시도하지 못했다. 황 씨는 “왜 이 음식이 맛이 있는지를 따지고 해당 맛집에 점수 매기기를 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음식평인데, 사실 굉장히 까다롭다”라고 털어놓는다. 황 씨의 경우 개인적으로 변호사까지 고용하며 식당을 평가해 점수화하는 칼럼을 시도했었지만, 개인적으로 시도되는 평가의 객관성 논란으로 결국 접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일부 미식가들로부터 추천을 받은 주용 씨의 ‘서울에서 최고로 맛있는 집 324’(시공사 刊, 2001)는 맛집의 장단점을 짚어가며, 맛과 서비스를 점수로 표시한 최초의 맛집 평가서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는다. 저자가 욕을 얻어먹을 각오를 하며 식당을 평가한 까닭에 큰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이 역시 ‘최초’라는 수식어를 제외하고는 ‘맛집 솎아내기’의 객관성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맛을 분석하는 평론 단계에 이르지 못해 여전히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맛 칼럼니스트들은 본격적인 고품격 맛집 가이드북이 나오기 위해서는 국내 외식산업이 좀 더 성숙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낸다. 식당을 재테크 수단 정도로 생각해서는 장인정신이 배여 있는 음식이 나오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시각은 ‘직무방기’의 냄새가 짙다. 그들이 과연 ‘글’로 먹고사는 ‘칼럼니스트’인지 아니면 식당의 사랑방을 찾는 반갑잖은 식객인지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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