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11:30 (토)
日本 國學의 '한국지부'...'비판적 비교' 관점 취해야
日本 國學의 '한국지부'...'비판적 비교' 관점 취해야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5.07.11 00:0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쟁점: 김태준 동국대 명예교수, 국내 일본학에 일침

일문학에 대한 한국학자들의 연구가 문제많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7월 7일부터 3일간 남서울대에서 대대적으로 치러진 한국일본학연합회에서 김태준 동국대 명예교수(국문학·사진)는 “국내 일문학 연구가 외국문학을 연구한다는 것에 대한 자의식이 없고, 비교문학적 시각을 확보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라고 일문학계 전체를 향해 비판의 포문을 열었다. 그 서두는 이렇게 시작한다.

외국문학 연구자로서의 관점 절실히 필요해
“한국의 일본학은 40년이 넘는 역사에 제2세대가 주역이 되어 있고, 일어일문학회 회원은 국어국문학회 회원과 비슷한 인원이다. 그럼에도 변화는 별무하다. 그것은 한국의 연구자가 일본학을 한다는 것이 어떤 뜻이 있는지 기본적인 물음에 소홀했기 때문이며, 혹은 이런 고민 없이 일본 흉내를 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발상을 전면적으로 바꾸어야 하며, 일본학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학문이 나온다. 일본 사람에게 국문학인 일본문학은 한국 연구자에게는 외국문학이라는 자각이 요구되며, 일문학 연구자는 일본학자이기에 앞서 문학자라는 자각이 필요하다. 이런 자각은 일본을 하나의 문화현상 혹은 지역연구로 바라보게 하고, 일본의 학계와는 다른 연구 시각과 지평을 발견할 수 있게 할 것이다.”

“비판적이어야 학문이 나온다”라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지금까지의 일본학이 ‘학문’에 이르지 못했다는 판단을 함축함과 동시에, 비판적 시각에서야 비로소 학문이 가능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발표문에서 김 교수는 ‘춘향전과 주신구라, 그 미학과 윤리’(정천구)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비판적 일본읽기’를 타진한다.

이 논문은 두 작품의 비교를 통해 韓日의 문화미학과 사유체계로서의 윤리의식을 읽고 있다. 저자는 ‘주신구라’의 윤리체계로서 “忠과 烈”을 거론하지만 김 교수가 볼 때 이것은 기존의 관점을 따라 한국학자로서의 관점이 획득되지 못했다. 여기서 김 교수는 “주신구라의 인기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충의라는 ‘주제’에 있지 않고, 47명의 무사가 주인의 복수를 위해 단체행동을 하는 것에 있다”라고 주장한다. 목적을 묻지 않고 단결하는 일본사회의 구조를 반영하는 작품이 바로 ‘주신구라’인데, 김 교수는 한국의 ‘춘향전’은 행동이 아니라 ‘말’을 통해서 이야기가 이뤄진다는 점을 주목한다. ‘춘향전’에서 춘향의 승리는 그녀의 말의 승리이며, 나아가 이 작품군에 삽입된 민중들의 발언양식과 이도령의 말에 이르기까지, 민중적 크로노토프(시공간), 산문적 寓意를 이룩하고 있다고 본다. 김 교수는 “한일문학을 대표하는 두 작품의 비교는 이 작품들이 가진 문화사적 비교의 가능성으로 열려있다”라고 결론짓는다.

그 다음 비판적 읽기는 ‘문학지리’의 발상에서 가능해진다고 김 교수는 제언한다. 특히 한중일과 근대시기 러시아 문학들의 비교읽기는 문학의 동아시아적 지평을 획득하게 한다고 강조한다. 가령 전형준 서울대 교수(중문학)의 논문 ‘동아시아의 시각으로 본 세편의 ‘고향’론’을 주목할 만한 사례로 거론한다.

1920년대에 한중일 문학은 러시아의 영향권 아래 있었다. 현진건과 루쉰은 러시아 작가 치리코프의 소설 ‘고향’을 각각 자기 나라 잡지에 번역해서 소개했고, 얼마후 각각 자신의 이름으로 ‘고향’이란 소설을 발표했다. 전형준 교수는 “치리코프의 고향에서 마을은 변했지만 고향의 자연은 변하지 않았고, 루쉰의 고향은 자연과 풍경까지 변했고, 현진건의 고향은 고향상실이란 점에선 루쉰과 비슷하지만, 그 외에서는 차이가 더욱 두드러진다”라고 분석한 뒤 “기존의 연구들이 이들 작품의 공통점을 확인하는 데 머물러 문제다. 오히려 상대화하고 차별을 객관화하는 것이 의의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동질화’가 아니라 ‘차별화’야말로 동아시아적 지평을 획득케한다는 것이다.

비교문학은 ‘공통점’보다 ‘차이’ 도출이 중요
김 교수는 이런 예들을 들며 “일본문학자들이 일본작품 번역을 많이 하지만, 한국문학과 비교해서 일문학이 갖는 특징을 잘 소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라고 묻고 있다. “밖에서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자기 연구를 발견할 때 연구자로서 가치 있는 것”이라는 말도 던졌다. 한국의 일본학이 “일본 주도의 일본학의 지부”가 되는 것을 그쳐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마지막으로 동양적 전통이나 자연에서 좋은 것들을 찾으려는 노력의 중요성을 거론한다. “물질과 自己와 민족에 몰두했던 근대적 목표들로부터 벗어나, 자연과 너의 세계, 곧 타자에 대한 관심을 강화하는 것은 대개 사람에 대해서나 자연에 대해서나 윤리적인 사고를 고양하는 일”이라고 부연하면서 말이다.

이 말은 그가 고전문학자라서 가능한 말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문학에서 ‘근대성’을 연구하는 일이 결국 민족과 자기의 형상체를 구함으로써 ‘자연과 너’를 잠시 깜빡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자각이고, ‘탈근대적 동아시아론’을 ‘문학지리학’을 통해서 시도해야 한다는 새로운 지적 프로젝트에 대한 제안이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ㅋㅋ 2005-07-16 19:19:31
뭐 다른 나라학이라고 다르겠어요? 준거할 '자아'가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