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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블린 도깨비 시장
고블린 도깨비 시장
  • 이지원
  • 승인 2021.10.08 1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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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나 로세티 지음 | 정은귀 옮김 | 민음사 | 424쪽

 

시인이 속한 ‘라파엘전파’ 그림들과

함께 펼쳐지는 감각적인 세계! 

크리스티나 로세티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위대한 시인이다. 세련된 시어와 신비로운 분위기의 독창적인 작품으로 주목을 받은 크리스티나는, 같은 해에 태어난 미국의 에밀리 디킨슨과 19세기 영시 문학사에서 양대 산맥을 이루는 거장이다. 첫 시집 『고블린 도깨비 시장』은 시인의 대표작으로서, 전통적이고 종교적이면서 동시에 도발적이고 관능적인 매력과 긴장이 고스란히 담긴 걸작이다. 

시인의 아버지는 이탈리아에서 영국으로 정치 망명을 한 단테 연구자이자 시인이며, 오빠 단테는 영국 미술사에서 19세기를 대표하는 ‘라파엘전파’를 결성한 화가이자 시인이다. 이탈리아와 영어를 모두 쓰며 예술에도 조예가 깊은 부모님 아래서 문화적 자양분을 듬뿍 받으며 자란 크리스티나 역시 ‘라파엘전파’ 일원으로서 시를 발표했다. 이렇게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고전주의적 전통과 오빠들의 재기발랄한 유미주의적인 문학 실험을 모두 경험한 크리스티나는,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영국 시문학사에서 매우 특별한 시인 가운데 한 명이 되었다. 

그래서 『고블린 도깨비 시장』에는 시인이 활발히 지적 교류를 나누었던 라파엘전파 그림들도 함께 실었다. 동생의 재능을 알아보고 시를 쓰도록 독려했던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회화에 문학성을 담아낸 에드워드 번 존스, 고전주의를 추구했던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여성 화가였던 마리 스파르탈리 스틸먼, 크리스티나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한 존 브렛 등이다. 

 

앎을 감각으로 새롭게 일깨우는 ‘특별한 시인’

크리스티나 로세티는 “영어의 아름다운 결을 일상의 감각 안에서 살리는 차원에서 최고의 시인”이다. 대표작 「고블린 도깨비 시장」에서 로라는 아침저녁으로 “도깨비들이 외치는 소리를” 듣는다. “혀에는 달콤하고 눈에는 좋은” 과일을 먹으라는 것이다. “저녁마다/ 개울가 골풀 사이로/ 로라는 고개를 숙이고 그 소리를” 듣는다. 19세기 문단 질서에서 예술적 상상력은 철저하게 남성들의 세계였기에, 여성이 결혼하지 않고 시인이 된다는 것은 위험한 결단이었다.

서양 고전 문학의 전통에서, 금단의 과일은 유혹하는 목소리다. 여성에게 금지된 예술 세계에 들어간다는 위험한 모험,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부할 수 없는 유혹 앞에서 존재론적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는 시인의 자의식이 라파엘전파 특유의 고전주의와 에로티시즘이 결합된 섬세한 감각으로 이야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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