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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개정 국적법, 무엇이 문제인가
[시각] 개정 국적법, 무엇이 문제인가
  • 이철우 성균관대
  • 승인 2005.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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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 국적선택, 부모가 함부로 결정할 수 없다"

▲이 철 우 / 성균관대학교 법과대학 부교수 chulwoolee@skku.edu ©
5월 4일 국회를 통과하여 24일 발효한 개정 국적법은 허점투성이의 어처구니없는 입법으로서, 합리적 공론을 바탕으로 한 재개정을 요한다.

개정 국적법은 해외에서 출생하여 이중국적을 가지게 된 남성은 출생 당시 부모가 영주 목적으로 해외에 체류한 것이 아닌 한 병역의무가 해제되기 전에 대한민국국적을 이탈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일정한 경우 국적이탈을 금지하는 것 자체만으로 세계인권선언이 규정하는 국적변경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외국에 상주하면서 거주국 사회와 밀접한 유대를 형성한 자의 국적이탈마저 금지하는 것은 병역기피를 막는다는 취지로써 정당화될 수 없다.

참고로, 이중국적 규제를 위한 1963년의 스트라스부르그협약 및 1977년의 개정의정서는 해외에서 상주하는 성인 국민의 국적이탈을 금지하지 못하도록 했고, 1997년 유럽국적협약도 국내 거주 국민의 국적이탈 금지만을 허용한다. 굳이 병역미이행자의 국적이탈을 제한하려면 출생 당시 부모의 체류 목적을 가지고 금지 여부를 결정할 것이 아니라 당사자가 어디에서 상주하고 있는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개정법률은 병역의무 해제 전 국적이탈이 가능한 경우를 축소하는 한편 국적이탈 가능자의 국적선택 시기를 3개월 연장했다. 개정 전에는 제1국민역에 편입되면 그로부터 병역의무 해제시까지 국적을 이탈할 수 없도록 했던 것을 이제는 제1국민역 편입 후 3개월까지 선택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많은 선진국이 미성년자의 국적이탈을 허용하지 않으므로 이중국적자가 관련국의 법에 따라 성년이 된 후 국적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취지라고 한다.

그런데 제1국민역 편입시점을 만18세가 되는 때가 아닌, 만18세가 되는 해의 1월 1일로 하고 있는 병역법이 바뀌지 않는 한 17세의 국적선택이 여전히 강제될 수 있으므로 개정의 취지는 무색해진다. 따지고 보면 3개월의 기간연장 자체가 실익이 없다. 대한민국국적을 선택하려는 한미 이중국적자는 굳이 이른 시기에 미국시민권을 포기함이 없이 병역의무가 해제된 후 선택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조기에 국적을 선택하는 것은 대개 대한민국국적을 이탈하는 경우로서, 미국법상의 성년 도래 여부는 고려할 필요가 없다.

개정 법률은 외국법상의 성년 도래를 우리 국적과 관련해 중요한 기준으로 반영하는 기이한 모습을 보이는 한편, 우리나라 국적은 병역기피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미성년자도 처분할 수 있음을 당연시한다. 그런 태도는 국민들도 공유하고 있어, 개정법률 발효 전 아들의 국적포기를 서두른 사람들을 비난할 때에도 병역기피의 의도만을 질타할 뿐 어린 자식의 국적을 부모가 함부로 결정하는 것은 문제시하지 않는다. 성년에 도달한 후부터 23세가 되기 전까지 국적선택을 요구하는 독일과 같이, 남녀 공히 미성년자의 국적이탈은 허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더 근본적으로는 이중국적에 대한 법의 태도와 국민정서를 돌아보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중국적이 병역기피를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중국적자는 단일국적자와 마찬가지의 국민으로서 모든 의무를 동등하게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다. 미국시민권을 유지하고 싶은데 어차피 국적을 선택해야 한다면 일찌감치 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으로 국적을 포기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기에 앞서, 그들이 국민의 의무를 이행하는 한 두 국적을 모두 보유할 수 있게 해준다면 과연 병역기피를 목적으로 국적을 포기하는 일이 빈발할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즉 이중국적은 병역기피의 수단이 아니라 병역 이행을 고무하는 유인이 되는 것이다.

 미국은 1996년 복지개혁법 이래 시민권을 취득하지 않은 이민의 복지혜택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이러한 동향에 대응하여 여러 이민송출국들은 자국 출신 이민의 거주국내 지위를 향상시키려는 목적으로 이중국적을 허용하고 있다. 이중국적은 이처럼 ‘민족주의적’인 용도로도 사용될 수 있다.

 국적법 개정과 그에 이은 소동은 법제와 국제적 동향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무지, 그리고 그것에 갈채를 보내는 국민정서의 비합리성이 빚어낸 희극이다. 애국은 감정만으로 호들갑을 떤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일러스트:이재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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