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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자리에서 지금을
가장자리에서 지금을
  • 이지원
  • 승인 2021.09.30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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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진 지음 | b | 360쪽

한국문학 연구자 홍승진(34세,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이 첫 문학비평집 『가장자리에서 지금을-하종오 리얼리즘의 서정과 서사』를 펴냈다.

이 책은 두 가지 측면에서 독특한 비평집이다. 첫째로, 저자는 평론가로 ‘정식’ 등단하지 않았다. 그는 일간지 신춘문예나 문예지 신인상 등에 문학평론으로 당선한 바 없다. 둘째로, 이 비평집은 하종오 시인이 2014년부터 올해까지 펴낸 연작시집 14권을 비평 대상으로 삼았다. “현재 활발히 활동하는 시인의 일정 시기 작품을 집중적으로 분석하여 책으로 출판하는 일은 한국문학에서 거의 전례가 없는 드문 일”이다(이숭원 발문). 평론가 ‘면허증’도 없는 학자가 한 시인의 ‘전담 비평가’를 자처하며 그의 시집들만 끈질기게 파고든 까닭은 무엇일까?

저자는 하종오 시편에서 한국 리얼리즘 시의 확장과 갱신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 사건의 의의를 더 정확히 해명하고자, 이 비평집은 ‘하종오 리얼리즘’을 핵심 용어로 쓴다. 임지연, 고명철 등의 평론가는 2011~2년에 하종오의 시집 일부를 두고 ‘하종오식 리얼리즘’이라 일컬었다. 그러나 시인의 작품 세계는 그 이후로도 꾸준히 넓어지고 달라졌기에, 그만큼 시효가 지난 용어 대신 새 용어를 책의 핵심어로 삼았다.

이 비평집에서 밝히는 하종오 리얼리즘의 특징은 백낙청의 평론을 비판하는 지점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저자는 현실을 전망에 끼워 맞추는 방식이 한국 리얼리즘 문학론의 오랜 공식이었다고 지적한다. 그 대표 사례인 백낙청의 평론은 무한히 다양한 현실의 고통을 ‘민족-국가’의 문제라는 단 하나의 관점으로 환원하는 것이 훌륭한 리얼리즘을 낳는다고 주장한다. 이 관점은 남북한 통일 문제와 거리가 먼 농촌 소외의 현실, 한국인이 아닌 이주민의 현실, 인간이 파괴하는 지구의 현실은 덜 중요한 문제로 여길 위험이 적지 않다. 반면 하종오의 시는 굳어버린 관점을 변화하는 삶에 적용하는 ‘하향식’이 아니라 삶 속에서 새로운 진실을 찾는 ‘상향식’ 관점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처럼 한국 리얼리스트 대부분이 외면하는 농촌 소외와 이주민과 인간 아닌 것 등의 현실 속에서 오늘날의 고통에 관한 진실을 구하는 시는 “가장자리에서 지금을” 찾는 언어라 할 수 있다.

홍승진의 비평은 하종오 리얼리즘의 그 특징을 한국과 지구(세계), 사람과 삶을 아래로부터 잇는 언어로 해석한다. 제주 예멘 난민 사건과 한국의 이주노동자 문제를 직시하며 모든 인간이 모든 국가에서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세계시민사회를 희망하는 시는 한국과 세계를 연결하는 언어가 된다. 한국 사회에 퍼진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지구의 언어로 들을 줄 아는 시는 지구가 한국과 무관할 수 없음을 언어화한다. 남북한 분단 문제를 민족-국가의 정치적ㆍ 경제적 논리로 파악하는 대신, 여러 나라의 평범한 주민들이 교류하는 방식으로 남북한의 평범한 주민들이 교류할 때 진정한 탈분단이 가능하다고 상상하는 시적 사유는 하종오 리얼리즘이 고집하는 ‘아래로부터’의 시선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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